‘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이 소설 제목으로 가당키나 한가. 실제로 이건 물리학 용어다.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의 ‘양자전기역학:빛과 물질에 관한 이상한 이론’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낮에 램프를 켜놓고 보면 빛이 유리창의 표면에서 부분적으로 반사된다고. 가령 빛의 입자 100개가 있다면 96개는 투과하지만 4개는 부딪혀 돌아온다고. 문제는 어떤 녀석이 투과하고 어떤 녀석이 돌아올지 알 수 없다는 것.
물리학자의 용어를 소설 제목으로 가져 온 앤드류 포터(Porter·39)의 소설을 읽다 보면 그 빛의 입자 4개를 사랑하고 싶어진다. 사람의 감정과 기억이 그렇지 않은가. 주인의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는, 제멋대로 되돌아오는 감정과 기억들.
‘나는 그날 로버트에게 저녁 강의가 있다는 것과 9시 무렵이면 돌아오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용기를 내기 위해 와인을 좀 마셨고 그런 다음 옷을 벗고 그의 침대 속으로 들어가 누웠다. (중략) 잠시 후 방은 차차 어두워졌고 나는 그가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중략) 로버트의 와인을 마시면서 거기 어둠 속에 앉아, 결국, 어쩌면 몇시간 동안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결국에 나는 떠나야 하리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130~131쪽)
표제작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에서 과학의 언어는 단 하나도 나오지 않는다. 등장인물은 노(老)교수 로버트와 여대생 헤더. 물리학자로서 한계를 느끼고 있는 로버트와 수영선수 출신 남자 친구를 가진 헤더의 비공식적 감정이 유리창에 부딪혀 되돌아온다. 아버지보다 나이 많은 스승인데도 헤더가 품은 감정과 기억의 몇몇 입자들은 통제가 불가능할 따름이다. 당연히 과학적인 설명은 불가능한 삶의 비의다.
포터 단편의 매력은 감정의 격랑을 유연하게 헤치는 절제된 문장. 로버트와 헤더 감정의 파도는 심연에서 소용돌이치는데, 포터의 목소리는 참으로 낮다. 10개의 단편을 모았다. 처음에는 조지아대학 출판부에서 조용히 출간했는데, 그 낮은 목소리의 힘을 알아본 랜덤하우스 빈티지 출판사가 지난해 재출간했다. 건조한데, 육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