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한국시각) 미국 켄터키주 KFC센터에서 벌어진 이종격투기 UFC 미들급(84㎏ 이하) 경기. 양동이(27·코리안탑팀)가 상대 랍 키몬스(30·미국) 위에 올라탄 채 주먹 세례를 퍼부었다. 심판은 2라운드 종료 3초를 남기고 경기를 중지시켰다. 경기장을 가득 메운 1만 관중은 양동이의 별명인 '옥스(ox·황소)'를 외쳤다.

경기 소식이 전해지자 국내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양동이'는 검색어 1위에 올랐다. '양동이 동영상', '양동이 UFC'…. 수많은 연관 검색어가 뒤따랐다. 궁금증은 하나였다. "도대체 양동이가 누구야?"

UFC 종합격투기 선수 양동이는 사진촬영이 어색한 듯 한동안 머뭇거렸다. 그러나“바로 앞에 챔피언(앤더슨 실바)이 있다고 생각하라”는 말에 곧바로 있는 힘껏 주먹을 내질렀다.

뒤로 물러서지 않는 '코리안 황소'

7일 서울 광진구의 코리안탑팀 체육관에서 양동이를 만났다. 우락부락한 첫인상과 달리 쑥스러운 듯 미소 짓는 모습이 순박해보였다. 양동이라는 이름도 '예전에는 양동이 안에 맑은 물만 담았다. 깨끗하게 자라라'는 뜻에서 그의 아버지가 지어준 순 우리말 이름이라고 했다.

이틀 전 귀국했다는 양동이의 얼굴에서는 격투의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온몸을 뒤져봐도 멍자국 하나 없이 멀쩡했다. 양동이는 "지난해 10월 카모지와 벌인 데뷔전(판정패) 때보다 일이 순조롭게 잘 풀렸다"고 했다.

"작년엔 미국에 처음 간 거라 시차 적응도 제대로 못 했어요. 긴장해서인지 경기 전날에도 2~3시간밖에 못 잤어요. 이번에는 잘 먹고 푹 잤습니다."

신예끼리 맞붙었던 카모지전은 양동이로서는 아쉽지만 자신의 이름을 알린 한판이었다. 별명(황소)처럼 물러서지 않는 저돌적인 인파이팅 공격에 많은 국내 격투기 팬들이 열광했다. 팬이 많이 생겼느냐고 묻자 양동이는 머리를 긁적이며 "격투기 마니아나 10대 청소년들이 알아본다"고 했다.

고교 때 처음 본 UFC, 양동이의 꿈이 되다

용인대 동양무예학과 2학년을 마치고 2005년 1월 현역으로 입대한 양동이는 군에서 자신의 인생을 설계했다. "고교 시절부터 뭐든 세계 최고가 돼야겠다는 생각을 혼자 했었어요. 공부는 어렵겠고, 격투기밖에 없겠더라고요."

말년 휴가 때 코리안탑팀을 찾아가 9박10일간 훈련에 참가한 양동이는 2007년 1월 제대하자마자 본격적인 격투기 수업을 시작했다. 코리안탑팀의 하동진 감독은 "처음 본 순간 '물건'이라고 생각했다"며 "몸이 야성 그 자체였다"고 말했다.

국내 종합 격투기 무대 데뷔전에서 KO승을 거둔 것을 시작으로 양동이는 연승 퍼레이드를 펼쳤다. 국내에서도, 일본에서도, 사이판에서도 양동이의 상대는 없었다. 앉은 자리에서 비빔밥 일곱 그릇을 해치우는 양동이는 타고난 힘과 지칠 줄 모르는 체력이 강점이었다.

UFC 진출 전까지 9전 전승(8KO, 1기권승)을 기록했지만 생활은 빠듯했다. 집안이 넉넉한 편은 아니었고 파이트머니는 떼어먹히기 일쑤였다. 양동이는 "국내 격투기 단체에서 세 차례나 돈을 못 받았다. 700만원쯤 된다"고 했다.

양동이는 주중에는 야간 철거공사에서 막노동을 하고 주말에는 경마장이나 축구장에서 경호 아르바이트로 밥벌이를 해야 했다. 그나마 일감이 자주 없어 한 달 수입은 50만원이 채 안됐다.

팍팍하던 삶은 지난해 후원자가 나타나면서 조금씩 나아졌다. 김동현(30)에 이어 한국인으로는 두 번째로 UFC에도 진출하게 됐다. "격투기를 반대하던 어머님께 이제 경기가 끝나면 용돈을 드리게 됐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께서 한 푼도 안 쓰고 그대로 갖고 계시더군요. 아들이 맞아가면서 번 돈인데 어떻게 쓰냐고…."

나의 꿈은 앤더슨 실바를 이기는 것

UFC에 진출한 지금도 양동이는 서울 논현동의 월세 40만원짜리 투룸에서 동료 세 명과 함께 동고동락하고 있다.

"챔피언이 될 겁니다. 살면서 다른 거 다 못 해봐도 상관없어요. 챔피언과 싸워서 이길 수만 있다면."

UFC 미들급은 전 세계 강호들이 모이는 곳이다. 추성훈(36)도 1승2패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그렇지만 5일 양동이의 경기를 본 미국 격투기 매체들은 "날 것 그대로의, 거칠지만 인상적인 파워였다. UFC 미들급은 더욱 흥미진진해질 것"이라며 가능성을 높이 평가했다.

양동이 앞에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그 중 마지막 벽은 '미들급의 독재자' 앤더슨 실바(36·브라질)다. 실바는 지난 2006년 UFC 미들급 챔피언 벨트를 따낸 뒤 5년간 무려 8차례에 걸쳐 타이틀 방어에 성공했다. 양동이는 "실바는 약점이라고는 찾아보기 어려운 무결점 선수"라고 했다.

"그렇다고 겁나는 건 없습니다. 2~3년 안에 실바와 싸울 자격을 얻는 게 급선무라고 할 수 있죠. 최고를 꺾어야 진정한 세계 최고가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