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시즌 독일 분데스리가 전반기 최우수 신인, FIFA 선정 세계 10대(代) 유망주, 한국 대표팀 역대 두 번째 최연소 골…. 2011 아시안컵 이후 한국 축구의 '아이돌 스타'로 떠오른 손흥민(19)을 함부르크 현지에서 동행 취재했다.

5일 독일 함부르크공항.

손흥민(함부르크 SV)이 초조한 표정으로 아버지 손웅정(49)씨를 기다리고 있었다. 비행기가 착륙하고 한참이 지났지만 입국장엔 아버지가 보이지 않았다.

이윽고 걸려온 전화 한 통. 아버지는 비자 문제로 오해가 생겨 입국 심사대에 발이 묶여 있었다. 손흥민이 유창한 독일어로 공항 직원과 통화하고 몇 분 후 손웅정씨가 모습을 드러냈다. "야, 네가 얘기하니까 다들 엄지손가락 치켜들고 난리 나던데." 아들이 쿨하게 답했다. "뭘, 그 정도를 가지고 그러세요."

손웅정(오른쪽)씨는 손흥민에게 자상한 아빠이면서 엄격한 스승이다.

손흥민과 손웅정(춘천FC감독)씨는 평소엔 이렇게 격의 없는 부자(父子)간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누구보다 엄격한 지도자이기도 하다. 둘째 아들이 분데스리가 선수가 된 지금도 상상 이상의 훈련을 시키고 있었다.

둘은 오전 9시부터 함부르크 SV의 체력단련장에서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가슴과 팔, 어깨, 허벅지를 단련하고 제자리뛰기와 줄넘기로 넘어간다. 이때쯤 손흥민의 온몸이 땀에 흠뻑 젖어든다. 이후 부자는 옆의 구단 훈련장으로 자리를 옮겨 슈팅 연습을 시작한다. 다양한 각도와 위치에서 왼발, 오른발, 헤딩슛 훈련이 300여 차례 계속된다. 팀 훈련은 그 이후에 합류한다. 경기 스케줄에 따라 개인 훈련 스케줄도 강약을 조절한다.

"흥민이는 제가 생각하는 슈팅 수준의 20%도 안 됐어요. 80%가 되면 분데스리가 득점왕이 될 겁니다."

사실 이런 훈련은 어릴 적부터 계속됐다.

공과 익숙해져야 한다고 4시간 동안 트래핑만 시킨 적도 있었다. 손흥민은 "그땐 공이 아니라 땅이 튀어오르는 것 같았다"고 했다. 아버지는 "어릴 적 훈련시킬 때는 애 등짝에 '내 아들'이라 붙여 놓고 싶었다. 너무 호통을 치니까 지나가던 사람들이 '선수 학대하는 것 아니냐'고 말릴 때도 있었다"고 했다.

충남 서산에서 태어난 아버지 손씨는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축구도 중·고교 진학을 위해 선택했다. 167㎝의 작은 키에도 발재간이 좋았던 손씨는 현대와 일화 등을 거치며 프로축구 37경기 7골을 기록했다. 87년엔 국가대표에도 잠깐 이름을 올렸지만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28세 때 은퇴했다.

이후 막노동판을 전전하며 가족을 부양했다. 이런 배경에서 성장한 선수가 바로 한국 축구의 희망으로 불리는 손흥민이다. 아버지 손씨는 아들이 8살 때 소질을 발견했다고 한다. 이후 그의 삶은 '사커 대디'로 바뀌었다.

"저는 현역 시절 기술이 부족했습니다. 그것이 가슴에 한으로 남았어요. 내가 가르치는 아이만큼은 기본기에서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게 하고 싶었습니다. 어릴 땐 당장 이기고 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니까요."

손씨는 기본기에 충실해야 한다는 철학을 자신이 감독을 맡고 있는 유소년팀 춘천FC에도 똑같이 적용하고 있다. 지금도 춘천FC의 아이들은 공을 떨어뜨리지 않고 튕기는 동작만 1시간씩 반복하는 식으로 훈련한다. 거의 모든 훈련이 기본기 중심이다. 그럼에도 춘천FC는 지난해 4개의 전국 풋살대회를 싹쓸이했다. 지금까지 120경기 무패를 달리고 있다.

"저의 축구 인생은 시행착오가 참 많았어요. 흥민이나 지금 자라는 어린 세대는 우리 때와 달라야죠. 아이들이 바른길로 갈 수 있다면 어떤 일이라도 할 겁니다."

그는 보양식 한 번 안 먹고도 훌쩍 자란 아들이 너무나 대견스럽다고 했다. 함부르크 훈련장으로 가는 길. 운전대를 잡은 손웅정씨 옆에 탄 손흥민이 노래를 흥얼거렸다. 차에선 남성 5인조 그룹 빅뱅의 신곡 '투나잇'이 흘러나왔다. "아빠, 누구 노래인지 알아요?" "카라 아니냐?" 아빠의 대답에 아들이 폭소를 터뜨렸다. "남자 노랜데 카라가 왜 나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