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家도 떨어졌다' 영훈초등

2일 오전 11시, 서울 미아동 영훈초등학교에 엘가의 '위풍당당행진곡'이 울려퍼졌다. 입학식 시작을 알리는 학생 오케스트라단의 연주. 풍선과 오색 천으로 장식한 강당으로 6학년 학생들이 1학년 아이들의 손을 하나하나 잡고 입장했다. 강당은 신입생 143명의 입학을 축하하러 온 가족과 친인척들로 발디딜 틈 없이 들어찼다. 저출산 여파로 신입생 수가 확 줄었다는 일반 초등학교들과는 대조적인 풍경이다.

최고 사립명문으로 떠오른 영훈초등학교의 2011년 입학식. 축하객으로 강당이 발 디딜 틈 없이 들어찼다.

신입생들은 디자이너 이상봉이 제작한 교복을 입고 단상을 바라보고 있다. 부모들의 표정은 기쁨으로 가득했다. 6대1의 '추첨경쟁'을 뚫고 입학한 학교다. 추첨 현장은 경찰이 입회할 정도로 치열했다. 교장의 축사에도 그 뿌듯함이 담겨 있다. "영훈은 우리나라 최고의 학교입니다. 이렇게 좋은 학교에 다니게 된 것을 고맙게 생각하고, 좋은 전통을 만들어준 언니 오빠를 본받아 생활하시기 바랍니다."

영훈초등학교의 입학식이 명문대 못지않게 '축하'를 받는 이유는, 이 학교가 사실상 최고의 명문 사립으로 자리를 굳혔기 때문이다. 경복, 리라, 경기초등학교가 누렸던 명문 사립의 영광이 영훈으로 넘어온 지 이미 오래.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의 손녀, 두산 기업 손자들, 차인표·신애라 부부 아들 등 정·재계와 연예계의 자녀들이 이 학교에 재학했거나 졸업했다.

2008년 삼성전자 이재용 사장의 아들이 이 학교에 입학한 것은 상징적이다. 현재 이서현 제일모직 부사장의 딸이 이 학교에 재학 중이니 이건희 회장 직계가족에서만 2명의 아이가 다니는 셈. 이재용 사장의 딸도 올해 입학하려 했다가 추첨에서 떨어졌다. 올해는 한나라당 유정현 의원 딸이 영훈에 입학하는 '행운'을 누렸다. 이밖에도 유명 방송인, 중견기업들의 자녀들이 부지기수다. 학교는 강북에 위치해 있지만 16대의 스쿨버스 중 8대가 강남권을 돌 만큼 부유층 자제들이 많다.

미아동, 그야말로 시장골목 한복판에 자리한 이 학교가 '명문'이 된 이유는 1996년부터 시행한 영어몰입교육 덕분이다. 입학식장 단상에 붙은 영문 현수막('moving globally toward a better future')대로 '글로벌 인재'를 키워낸다는 전략이 재벌가도 움직일 만큼 적중한 셈이다. '영훈 가서 돈자랑, 영어자랑하지 말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다.

영어뿐 아니다. 영훈은 '3무(無) 정책'으로도 유명하다. 촌지, 처벌, 왕따를 엄격히 금지한다. 이 학교 6학년 딸을 둔 한 엄마는 "영어실력 이전에 교사들의 열정, 자기개발 노력이 감동적"이라고 전했다. 4학년 자녀를 둔 학부모는 "언니·오빠가 이 학교에 다니면 동생들도 따라 들여보내고 싶을 만큼 교육의 질이 높다"고 자랑했다. 스쿨버스가 가지 않는 한남동에 살지만 "딸아이를 올해 영훈에 입학시켜 너무나 기쁘다"는 한 엄마는 "첫째는 영어, 둘째는 선생님, 셋째는 인맥 때문"이라고 말했다.

부유층이 많다 보니 지난해 입학식에서는 '소매치기를 조심하라'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입학식날 학교 인근 백화점 주차장은 고급 승용차들로 들어찼다. 올해 영훈에 입학하는 신입생들은 입학금과 일사분기 수업료를 포함한 등록금을 280만원 지불했다.

"그래도 행복하다" 삼흥학교 

같은 날 같은 시각, 서울 구로구 삼흥(三興)학교에서도 '특별한' 입학식이 열렸다. 탈북 어린이들을 위해 개교한 국내 최초의 학교에 1학년 신입생이 들어온 것. 신입생 숫자가 4명뿐이라 입학식은 아주 소박하게 이뤄졌다. 식이 끝나는 데 채 5분이 걸리지 않았다. 어머니의 손을 잡고 학교에 들어선 4명의 아이들에게 1학년 담당 교사는 "우리 함께 즐거운 학교생활을 하자"는 짧은 '훈화 말씀'을 던졌다. 그리고는 무료로 제공한 아이들 책가방과, 그 안에 든 공책을 꺼내 하나하나 아이들의 이름을 써줬다.

삼흥학교 1학년 담당 교사가 4명의 신입생들에게‘즐거운 학교생활을 하자’는 당부로 입학식을 대신하고 있다.

입학식을 마친 아이들은 불과 200m 떨어진 서울 신구로초등학교로 이동했다. 거기서 일반 아이들과 통합 입학식을 치른다. 4명의 꼬마들은 어머니의 손을 잡고 학교를 나섰다. 어머니가 아이들의 손을 잡고 등교하는 것은 오늘이 마지막이다. 앞으로는 부모와 떨어져 삼흥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해야 한다.

삼흥학교는 일반 학교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탈북 어린이들을 위해 'NK지식인연대'라는 탈북자단체가 설립했다. 지난달 25일 개교한 이 학교에는 현재 30여명의 탈북 초등학생들이 국어, 영어, 음악, 미술, 컴퓨터, 태권도 등의 교육을 받고 있다. 삼흥학교는 학력이 인정되는 정규 교육과정은 아니다. 따라서 근처 신구로초등학교에서 정규수업을 들은 뒤 다시 삼흥학교로 와서 '방과후 학습'을 한 뒤 기숙사에서 생활한다. 한 달 수업료와 기숙사비로 아이들은 10만원을 내야 한다.

북한 출신 어린이들이 2개 학교를 다니는 이유는 학력 결손 때문이다. 완전히 붕괴된 북한의 공교육 탓에 북한에서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한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중국 공안의 눈을 피해 숨어 지내야 하는 탈북 과정에서 아이들을 위한 교육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삼흥학교 채경희(40) 교장은 "탈북 어린이의 50%는 어린 시절 탈북과정에서 중국에 체류한 기간이 길어 한국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한다"며 "한글·한국어 교육을 우선적으로 실시해 남한 아이들에게 뒤처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아직 어머니의 손길이 필요한 어린 나이지만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입학생 어머니들 대부분이 인천과 경기도 일대에서 구직 중이거나 공장에 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삼흥초교 학생 대부분이 편부모 슬하에 있다. 게다가 밤늦게까지 일하는 3D 업종에 종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탈북 부모들은 아이들을 돌볼 여력이 없다. 채 교장은 "탈북 가정의 아이들 대부분이 빈집과 놀이터, PC방에 방치돼 있다"며 "삼흥학교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것이 탈북자 사회의 한국 적응과 자립을 돕는 길"이라고 말했다.

삼흥학교는 교사 4명, 영양사와 사관 2명의 인력으로 운영된다. 교사들 또한 북한 출신이다. 조만간 교사를 더 충원해 최대 80명까지 학생들을 받아 돌볼 계획이다.

입학식이 끝나자 어머니들은 아이들을 두고 일터로 떠났다. 학부모 하성희(가명·41)씨는 "아이들을 두고 직장을 나갈 생각을 하니 마음이 아프지만 같은 북한 출신 교사들이 아이를 돌보고 가르친다 생각하니 마음이 놓인다"며 느리게 발걸음을 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