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가 제정한 계율인 율장(律藏)이라는 것이 있다. 약 2600년 전 초기 불교에서 죄를 짓거나 문제를 일으킬 때 부처가 일종의 재판관이 되어서 시시비비를 가린 것이다. 초기 불교 생활상이 드러나지만 굳이 알리고 싶지 않은 부분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불교계에서는 외부 사람이 이 율장을 알아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일종의 금기다.
하지만 원영(圓映·36) 스님은 그 계율이란 것이 자기 삶의 문제로 다가와서 궁금해 견딜 수가 없었다. "2000년 운문사 승가대학을 졸업하고 비구니가 될 때였어요. 지켜야 할 348개 계율을 하나하나 읽을 때마다 '능지(能持·지키겠습니다)~' 하고 대답하거든요. 근데 자꾸 '왜 못 지킬 계율을 지키겠다고 답해야 하나'라는 의문이 드는 거예요." '혼자 마을을 다니지 말라'거나 '돈을 몸에 지니지 말라' 같은 2600여년 전 인도의 계율들이 여전히 살아 있었다. 어른 스님들에게도 물어봤지만 다들 '지켜야 할 훌륭한 전통'이라고만 했다. 원영 스님은 "그 계율을 어기면 나는 만날 죄짓는 건데…. 왜 이런 계율을 지킨다고 다짐하며, 왜 지금도 지켜야 하는지, 그런 게 굉장히 현실적인 문제로 느껴져 계율학을 공부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런데 모두가 반대했다. "법 공부하는 율사 스님이라면 좀 근엄해야지. 원영 스님은 문화 포교나 그런 게 더 맞는다"거나 "계율도 안 지키게 생겨 갖고선 뭔 계율학 공부를 한다는 거냐" 같은 반응들이 나왔다. 더 오기가 났다. 일본 임제종(臨濟宗·중국 선종 불교 5대 종파 중 하나) 종립대학인 교토 하나조노(花園)대학에서 공부할 기회가 생기자 은사인 종묵(宗默·대구 화성사 주지) 스님을 조르고 또 졸랐다. 스승은 처음엔 "3년 더 안거(安居) 수행하라"며 요지부동이었다. 하지만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었다. 2002년 초 스승은 결국 울고불고 매달린 상좌의 일본 유학길을 공항까지 마중하며 300만원이 든 통장을 쥐여줬다.
고교 1학년에 절에 들어갔고, 일본어까지 먹통인 스님에게 일본 생활은 난관의 연속이었다. 하숙집도 못 찾아 길을 잃기 일쑤였다. 하지만 스님은 석·박사를 속성으로 마치고 2008년 박사 과정 수료와 동시에 학위도 받았다. 지금은 조계종 교육원 불학연구소 상임연구원으로 일한다.
원영 스님은 어렵게 마친 공부의 첫 결과물로 '부처님과 제자들은 어떻게 살았을까'(불광출판사)라는 책을 2일 펴냈다. 계율 안에 드러나는 부처님 살아계실 때의 여러 생활상을 현대를 살아가는 수행자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책이다. 출가, 수행, 생활, 사찰, 행사, 계율의 6가지 장에 요즘 사는 얘기와 스님의 경험담을 적절히 섞었다. 재가 수행자뿐 아니라 불교 초심자들에게도 여러모로 유용하다. 2600년전 인도의 승원에 '찜질방'이 있었다는 것도 재미있다. 원영 스님은 "다음 책은 우리 시대에 맞는 계율의 모습은 어떠해야 하는가에 관한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