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비아 교민 탈출기

리비아 사태가 반(反)카다피 세력과 카다피 친위세력의 내전 상황으로 치닫는 가운데 리비아에 있는 우리 교민들의 목숨을 건 탈출 행렬도 이어지고 있다. 리비아의 상황은 뉴스를 통해 알려진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

글로벌웹진 '뉴스로(www.newsroh.com)'가 2일 리비아에서 탈출한 교민의 생생한 탈출기를 게재했다. 이 교민은 뉴스로에 ‘새벽강의 리비아 스토리’를 연재하는 J씨로 리비아의 한국 상사 주재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가족들과 함께 공포와 불안에 떨다 천신만고의 노력 끝에 리비아를 탈출한 그는 "탈출 과정에서 몇 번이나 허탕을 치고 반카다피 세력과 친카다피 세력의 위협을 번갈아 당했다. 경찰 군인들로부터 여러 차례 검문을 당하며 간신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고 전했다. 그는 “집과 차 등 아무것도 정리하지 못하고 급하게 몸만 빠져나왔는데 언제 다시 들어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답답해 했다.

트리폴리 공항엔 수많은 이집트 노동자들이 탈출을 위해 몰려와 며칠씩 밤을 지새는 바람에 청사 안에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인산인해이고 청사 밖은 난민촌을 방불케할 만큼 난장판인 상황이다. 리비아 당국은 현지의 혼란상이 보도되는 것을 막기 위해 출국하는 외국인들의 카메라를 압수하거나 휴대폰의 정보가 저장된 심(SIM) 카드를 훼손시키는 것으로 알려졌다. J씨는 은밀하게 공항 청사의 풍경을 촬영할 수 있었다.

다음은 J씨가 전하는 생생한 나흘 간의 리비아의 탈출기.

▲2월21일 월요일

퇴근 후 리비아 사태에 관한 대책회의를 했다. 쿰스 현장, 자위야 현장, 트리폴리 설계팀, 리비아지사 등지에서 직원들이 모여서 최근 리비아 벵가지를 비롯한 서쪽지역 정세변화를 알려주고 대책을 알려주고자 모였다.

회의에서 현재 벵가지가 시위로 인해 사상자가 발생하고 주변 현황이 좋지 않으니 조심하라고 했다. 또한 밤이 되면 집에서 나오지 말고 자동차도 현지인이 운전하는 차가 아니면 타지 않는 게 좋겠다고 했다. 가스, 물, 쌀, 등 생필품을 미리 준비하는 게 좋겠다고 결론을 내리고 집으로 현장으로 돌아갔다.

집에 돌아와서 바로 물을 사러 갔다. 리비아는 식용물은 사서 먹기 때문에 1.5ℓ, 1ℓ, 500㎖, 20ℓ 물통을 수퍼에서 살 수가 있다. 100여 개 물통을 사서 집에 들여 놓고 가스는 내일 사러 가기로 집사람과 얘기하고 자리에 누웠다.

▲2월22일 화요일

출근해서 리비아 현지 직원이 하는 이야기가 벵가지에서 200여명이 죽었다고 하면서 근심을 많이 하고 있었다. 특히 총기를 난사하는 군인은 아프리카 용병들이라고 하면서 심한 분노를 터뜨렸다. 오후 점심을 먹고 나자 모두들 빨리 집에 돌아가는 게 좋겠다고 하면서 귀가를 종용했다.

4시께 동료의 차를 타고 집에 귀가했다. 아내와 함께 가스를 사러 가스집으로 갔다. 가스는 우리나라 LPG통 모양으로 생긴 것 2종류가 있는데 우리 집에서는 작은 통으로 하나를 구입하면 한 달은 사용할 수 있다고 하길래 작은 통을 구입하러 갔다. 내가 사는 잔주루는 트리폴리에서 외국인들이 많이 사는 동네지만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가스집을 찾았으나 한결같이 문이 닫혀 있었다. 할 수없이 내일 다시 사러 오자며 집으로 왔다.

저녁 친하게 지내는 한국인 가정에서 저녁을 함께 먹자고 해서 아이들과 함께 갔다. 식사 후 리비아 사태를 걱정하면서 내일이라도 한국으로 돌아가는 게 좋겠다고 해서 비행기표만 있으면 돌아가자고 말들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새벽 2시, 한국시각으로 아침 9시 회사 지정 여행사에 전화를 해서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표를 알아보았으나 오늘은 없고 가장 빠른 것이 수요일 3시45분 에미리트 항공으로 예매했다.

아침에 출근을 할지 말지 고민하다가 출근하지 말고 대기하는 게 좋겠다는 지사 연락을 받고 집에서 대기했다. 그런데 리비아 현지 직원이 같이 출근하자며 집에 왔길래 차량을 타고 사무실로 가서 상황을 점검하러 갔다.

시공사인 중국인들도 우왕좌왕하며 근심어린 목소리로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상의를 한다. 간밤에 중국 다른 캠프에 시위세력이 침입하여 차량과 컴퓨터 등을 빼앗겼다고 하면서 걱정했다. 어제 우리 회사 본부사무실에도 시위대가 들이닥쳐 현금과 컴퓨터, 차량을 털어갔다는 것이다.

현장은 튀니지 국경에서 써트까지 620㎞가 넘는 대규모 철도건설현장이라 캠프가 7군데가 나누어져 있다. 서둘러 현장에서 빠져나와 집으로 향했다. 내일 아침에 비상회의를 게스트하우스에서 열기로 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2월23일 수요일

아침 9시 게스트하우스에서 비상회의를 했다. 어제 벵가지 자위야 현장에 있던 직원이 시위대의 습격으로 중국 캠프에서 차량과 컴퓨터를 탈취당하고 숙소에서 몸만 빠져나와 현지인 집으로 가서 숨어 있다가 게스트하우스로 왔다고 했다. 숙소에 개인용품을 모조리 남겨두고 와서 옷가지도 챙기지 못했다고 했다.

본사의 방침이 정해졌다. 신속히 트리폴리를 빠져나와 귀국하라는 것이다. 문제는 언제 어떻게 귀국하느냐는 것이다. 일단 비행기 표를 예약했다. 전원이 토요일, 일요일 비행기로 나누어 일단 인근 국가로라도 나가자고 결론내리고 여행사에 요청했다. 비행기표는 예약됐다고 했다.

예약일에 공항에 가면 되는데 변수가 생겼다. 아침에 BBC, 알자지라 등 방송에서 트리폴리 공항이 폐쇄됐다고 나왔기 때문이다. 그래도 비행기 표만 있다면 공항에서 기다리자고 했다. 실제로 이날 비행기표를 예매한 3명의 직원이 공항에 갔다. 우리 가족도 점심 먹고 공항으로 향했다. 리비아 운전기사가 운전하면서 공항으로 갔다. 도중에 군경이 검문을 했으나 리비아 직원이 설명을 잘 해서 별 탈 없이 공항에 도착했다.

그 때가 오후 3시께. 공항 주변이 넘쳐나는 사람들로 길을 찾을 수 없을 정도였다. 수천 명의 이집트인들이 공항으로 몰린 것이다. 리비아에는 주로 힘든 일을 하는 150만명 정도의 이집트인이 있다. 이들은 평소에는 트리폴리에서 차량으로 며칠을 달려 이집트로 돌아갔으나 벵가지 동쪽 국경이 막혀 달리 갈 곳이 없어지니 공항으로 온 것이다.

이고 진 보따리와 함께 몇 개의 담요, 살림살이 등 모든 짐을 가지고 공항에 몰리는 바람에 공항청사 내부가 다 차버렸고 한데 밖에 나와서 담요를 몇 개를 감싸고 며칠 째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거기서 자고 먹고 버리고 했으니 쓰레기가 얼마나 많은지 바퀴벌레가 돌아다니고 있었다.

정작 공항에 도착했지만 엄청난 인파 때문에 청사 내부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돌아왔다. 내가 예매한 에미리트 항공은 3월1일까지 운항을 중지했다고 한다. 할 수 없이 집으로 돌아와서 TV를 보면서 사태를 지켜봤다. 그날 밤 카다피는 TV에 나와서 젊은이들이 거리로 나와서 시위대가 점령한 도시를 탈환하라고 소리 질렀다.

연설이 끝나기 무섭게 집 앞 도로에는 많은 차량이 경적을 울리고 사람들은 소리를 질렀다. 총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지금까지 살아 오면서 총소리를 그렇게 많이 들어본 것은 처음이었다. 아이들과 집사람이 무척 놀라고 힘들어했다. 시위대가 경적소리를 울리는 것을 시작으로 낮시간까지 되던 인터넷과 전화가 끊어졌다.

점점 불안해졌다. 사실 이웃 튀니지와 이집트에서 시위가 벌어질 때만 해도 이곳 리비아는 괜찮을 거라고 다들 말들 했다. 리비아는 다른 나라들과 달리 석유와 천연가스등이 많이 생산되는 부유한 나라이고 빵과 집, 기름은 거의 공짜 수준으로 국민들에게 제공되기 때문에 먹고사는 문제는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42년째 통치자가 바뀌지 않았다고들 했다.

그러나 상황은 다르게 전개되고 있었다. 교민들과 현지인들 말로는 교도소 문을 개방하고 죄수들까지 풀어주었다고 했다. 그래서 밤만 되면 두려움이 몰려왔다. 죄수들까지 풀려났으니 언제 집으로 쳐들어올지 모른다는 생각이 우리를 불안하게 했다. 또한 시위대를 진압하라고 민간인 지지세력들에게 총기를 나눠주었다는 소리까지 들었다. 그야말로 내전(內戰), 전쟁 속으로 들어 온 것이었다.

어떻게든 리비아만 나가자는 아이들과 아내의 말이 너무도 절박하게 들려왔다. 한가지 단비와 같은 소식이 들렸다. 정부에서 전세기를 보낸다고 원하는 사람들은 신청하라는 연락이 왔단다. 가족과 연장자 우선에 따라 우리 가족이 선정되었다. 함께 갈 회사 직원 포함 20명이 명단에 올랐다. 내일 아침 7시반까지 공항에 도착해야하니 6시반까지 게스트하우스로 오라고 했다.

▲2월24일 목요일

5시 반에 일어나서 아침을 먹고 간단하게 꾸린 짐을 들고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했다. 20명이 4대의 차량에 나누어 타고 이젠 리비아를 떠날 수 있다는 기대감에 약간은 들 뜬 기분으로 공항으로 향했다.

7시반이 가까워지자 여기저기서 한국인 가족들과 기술자들이 공항 입구에 모여들었다. 모두들 함께 갈 수 있다고 믿으면서. 어렵게 공항 내부에 진입했다. 다행히 리비아 공항 경찰과 경비들이 한국인은 우호적인 분위기로 맞아주었다.

대사관에서 이집트에서 전세기가 출발해서 트리폴리로 오는데 트리폴리 공항에서 착륙 허가를 내어줄지 출발은 했는지는 모르겠다고 하면서 기다리자고 했다. 그렇게 하염없이 기다리는데 오후 1시가 넘어가자 대사관 직원이 다들 밖으로 나오라고 했다.

비행기가 오지 않았다고 하면서 밤 10시반께에 다시 온다고 하면서 공항에서 기다리든지 다시 숙소로 돌아가서 7시에 공항 입구에서 다시 만나자는 것이다. 허탈하게 집으로 돌아오면서 택시를 탔다. 공항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알고 있기에 내가 몇 대의 택시의 선두에 서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마을 입구에 들어오면서 군인들이 검문하는 검문소 입구에서 택시기사가 차를 돌려서 반대편으로 섰다. 순간 총을 찬 군인들이 와서 어디에서 오느냐, 어디로 가느냐 등을 물어보고 나서 대뜸 ‘랩탑’을 내어놓으라고 했다. “없다”라고 하자 정말이냐고 몇 번 묻더니 그냥 가라고 했다. 외국인들이 이렇게 빼앗긴 컴퓨터와 휴대폰이 많다고 알고 있었기에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뒷자리에 앉아 있는 아내는 사색(死色)이 되었다.

무사히 숙소에 돌아와서 점심을 먹고 잠시 자리에 누웠다. 또 돌아갈 방법을 모색한다고 모이라고 했다. 회의 후 6시에 소형버스가 도착하니 기다리라고 했다. 그러나 약속한 6시에 버스는 오지 않았다. 리비아에서 시간 약속은 거의 무의미하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으나 피가 마르는 것 같았다.

차는 역시 6시40분이 되어서야 도착했다. 참으로 리비아를 빠져나가기가 힘들었다 문제는 우리 가족을 포함한 20명이 가야 하는데 자리가 모자랐다. 할 수 없이 2사람이 내려서 리비아 운전기사를 태우러 회사차를 타고 운전기사 집으로 먼저 가고 나머지 사람만 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출발했다.

버스가 내가 알고 있는 길로 가지 않길래 좀 이상하다 생각했지만 다른 길로 가는가 보다 하고 잠시 눈을 붙였다. 며칠 째 뜬눈으로 밤을 지 새 극도의 피곤이 몰려왔다. 잠시 후 아내가 공항 가는 길이 아닌 것 같다고 하면서 나를 깨운다. 눈을 뜨고 보니 역시 모르는 길이라 동료 직원에게 물어보니 다른 길로 갈 것이라고 하면서 “괜찮겠지요” 라고 했다.

공항가는 길은 남쪽인데 서쪽으로 계속 가던 버스는 갑자기 유턴을 했다. 유턴을 하자마자 총과 막대기 등으로 무장하고 녹색천으로 머리를 동여맨 카다피 지지 세력들이 버스를 가로 막으면서 몰려들었다. 아찔했다.

버스가 서자 이들은 타고 있는 사람들에게 가진 것을 다 내놓으라고 하는 게 아닌가. 걱정이 태산같았다. 가방에는 여권, 컴퓨터, 돈 등이 있어서 다 빼앗기면 집에도 못가는 게 아닌가 하면서 잔뜩 긴장했다. 다행히 이들은 버스에 올라타지 않고 카다피만 연호하다가 길을 열어줬다.

너무 어이없어 운전사에게 소리를 질렀다. “왜 이리로 왔느냐”고 했더니 버스기사가 “공항가는 길을 모른다”는 것이다. 기가 막혔다. 할 수 없이 내가 공항으로 가는 길을 알려주면서 길을 재촉했다. 공항으로 갈수록 밤이 다가왔다. 가는 길 중간에서 이번에는 또 시위대가 멈춰 세웠다. “한국인이 공항 가는 길이다”라고 하니 다행히 쉽게 비켜주었다.

10분을 더 가자 이번에는 경찰이 멈춰 세웠다. 다들 내리라고 했다. 여권을 모두 지참해서 내려서 일렬로 서라고 했다. 여자와 아이들은 내려오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모든 여권을 가져가서는 조사를 하고 다시 돌려주었다. 비행기가 언제 올지 모르는데 한시라도 빨리 공항에 가야하는데 시간은 계속 지체되고 있었다.

다시 버스에 올라타고 마을길을 빠져 나갈 즈음 이번엔 군인들이 막아섰다. 내리지는 않았지만 다시 여권을 다 달라고 해서 부대 안으로 여권을 가져갔다. 참으로 답답했다. 여권을 돌려받고 긴장과 초조 속에 달렸다. 마침내 공항이다. 도착하니 청사 밖 한곳에 일단의 한국인들이 이미 도착해서 줄을 서있었다.

한 대사관 직원이 종이를 돌려서 이름과 주민번호를 써라고 했다. 226명 정원 비행기인데 우리가 거의 끝 번호였다. 대사관 직원이 내민 그 종이는 전세기 비행기 값을 탑승하는 본인이 내겠다는 서명이었다. 전세기가 이런 것인가, 그제서야 깨닫고 쓴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공항청사 바깥에서 기다리기 시작했다. 밤이 되자 얼마나 쌀쌀한 바람이 부는지 여셩들과 아이들이 추위에 힘들어서 안으로 들어가자고 했으나 대사관 직원은 공항청사 안에도 사람들로 꽉 차서 11시나 되어야 들어갈 수 있다고 했다.

그렇게 추위에 떨다가 공항에 들어갔다. 역시나 이집트인을 포함한 각 국의 사람들로 인산인해였다. 어렵게 공항 안으로 들어와서 바닥에 앉아 기다리는데 기다리던 비행기는 다시 새벽 4시30분에 올 예정이라고 대사관 직원이 말을 한다.

“참으로 힘들구나. 리비아 나가기가 이렇게 힘들구나” 저절로 탄식이 나왔다. 새벽 3시30분께 수속을 시작한다고 짐을 부치는 카운터로 몰렸다. 이제는 가는가 보다 속으로 외치며 카운터 앞에 다시 앉아 기다렸다.

웬걸, 카운터 수속을 할 직원이 오지를 않는 것이다. 또 리비아 직원이 오기까지 마냥 기다렸다. 언제 올지 기약이 없었다. 청사 내부는 수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고 잠을 못 잔 상태라 다들 신경이 날카로웠다.

청사에서는 금연이라고 표지판이 붙어 있는데도 여기저기서 담배를 피워대니 주변의 아이들과 어른들이 기침을 하고 불편해 했다. 불쾌하기 짝이 없었지만 어쩌랴 피난길이 고난길인데…. 6시쯤 되자 리비아 직원이 나와서 짐을 부치고 이미그레이션(출국심사대)를 통과해서 비행기 탑승 대합실에 올라왔다.

7시30분께 비행기 탑승을 위해 공항버스를 탔다. 이제 정말 비행기를 타는구나 안도하면서 버스에서 내렸다. 정말 억세게 힘든 탈출이었더. 버스에서 내려 비행기 트랩을 오르는데 비행기 안에서 직원이 내려오더니 청천벽력같은 한 마디, 이 비행기가 아니란다…. 오 마이 갓!!!

공항버스기사가 정확히 어느 비행기인지 몰랐던 거다. 이게 리비아다. 이런 게 탈출이라는건가? 다시 버스에 올라탔다. 어디론가 이리저리 헤매던 버스는 간신히 이집트항공 비행기를 찾았다. 이번엔 진짜겠지 하면서 계단을 올랐다.

자리에 앉아서도 쉽게 가슴이 진정되지 않았다. 우리를 태운 비행기는 활주로를 서서히 질주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기우뚱하면서 대지를 박차고 상승한다. 정말 이제 탈출인가? 다시 돌아오라는 것은 아니겠지? 마지막까지 불안감을 지우지 못하는데 눈꺼풀이 점점 무거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