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잡을 쓴 이슬람 여인, 요란한 머리를 하고 있는 아프리카 남성, 동남아의 어느 시장터에 간 듯한 착각을 주는 필리핀 거리, 중동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이슬람 사원, 감미로운 샹송이 흐르는 서래마을….
2011년 서울은 더 이상 한국인 만의 도시가 아니다. 166개국 25만명5000명이 서울 구석구석에서 다양한 문화의 꽃을 피우고 있다. 한국과 외국 문화가 만나 서울의 색깔은 한층 다양하고 역동적으로 변화되고 있다.
유럽, 아프리카, 중남미, 중동, 동남아까지 세계의 색깔이 고루 합쳐진 서울의 색깔은 어떨까? 20여개의 타운까지 이뤄 살고 있는 그들의 생활 속에 들어가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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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키스칸 타운
서울 중구 광희동 뉴금호타워. 지하 1층, 지상 10층짜리 이 빌딩은 ‘
[몽골]
타워’로 불린다. 11개 층의 가게 26개 중 24개가 몽골인이 자국인을 상대로 영업하는 곳이다. 유학상담원부터 택배 대리점, 사진관, 식당, 미용실, 몽골 식료품 판매점, 금은방까지 업종도 다양하다.
지난 13일 찾은 이곳의 비좁은 복도는 지저분했고, 조명이 어두워 혼자 다니자니 겁이 났다. 2009년까지만 해도 주말이면 발 디딜 틈 없을 정도로 붐볐지만, 일자리를 찾지 못한 몽골인이 대거 귀국하는 바람에 지금은 그 때 분위기를 찾을 수 없었다. 불법체류자를 합해 한 때 7000여명에 달했던 몽골인은 4000여명으로 줄었다.
몽골어로 '하막 몽골'이라는 간판을 단 택배 사무실에서 콧소리로 한국 노래를 부르던 가나(26·여)씨는 "한국 드라마를 좋아해 유학을 결심했다"는 한류 팬이다. 한림대를 졸업한 그는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인을 포함, 불법 체류자가 많았을 때는 우범지대처럼 여겨졌지만, 지금은 유학생들의 향수병을 달래줄 제2의 고향"이라고 했다.
◆네팔 동사무소
서울 종로구 창신동. 소규모 봉제 공장에 취직해 '코리안 드림'을 꿈꿨던 네팔인들이 모이는 곳이다. 서너명씩 짝을 이뤄 이곳에 살던 네팔인들은 봉제공장 일거리가 줄면서 각자 노동일을 찾아 뿔뿔이 흩어졌지만, 주말이면 어김 없이 이곳에 몰려 든다.
7개의 네팔 식당에서 잎담배를 씹거나, 얇고 쫀득한 빵 '난'을 찢어 카레에 찍어 먹으며 수다를 떤다. 라이(35·남)씨는 "친구들과 정보도 나누고 어려움도 하소연 하는 이곳은 네팔 동사무소"라며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가 싹 풀린다"고 말했다.
◆검은 이태원
늘 외국인이 북적거리는 용산구 이태원에는 '나이지리아 거리'가 있다. 이태원 소방서 뒤쪽 이화시장길 구석구석에서 아프리카 흔적을 찾을 수 있다. 꼬불꼬불 머리를 땋은 레게머리 사진 간판, 독특한 향신료 냄새가 흘러나오는 아프리카 음식점, 삼삼오오 모여 떠드는 흑인들….
하지만 여성 혼자 분위기를 즐기겠다고 나서기엔 험악한 분위기였다. 나이지리아인을 상대로 전화카드를 판매하는 가게에서 일하는 김세라(27)씨는 "나이지리아인이 이름과 번호를 물어보길래 거절했더니 욕을 퍼붓고 씩씩댔다"고 전했다. 강도 같은 봉변을 당하지 않기 위해 방범 장치는 필수라는 것이다. 거리를 지나던 나이지리아인들에게 말을 걸었더니, 모두 경계의 눈초리로 "Business(일 때문에 바쁘다는 의미)"라고 한마디 툭 던지곤 사라졌다.
◆무슬림의 성지
이태원 언덕배기 위에는 이슬람사원 모스크가 있다. 이 지역의 랜드마크다. '주마(합동예배)'가 있는 금요일마다 이곳에는 1000여명의 무슬림이 모인다. 하얀 수염에 흰 터번을 두른 아랍인, 검은 히잡을 착용한 말레이시아 여인, 인도인, 네팔인, 아프리카 흑인들도 있다. 드문 드문 한국인까지 눈에 띤다. 외교관 번호판을 단 승용차의 행렬도 기념촬영을 하는 관광객들에겐 이색적이다.
예배를 마친 무슬림은 삼삼오오 짝을 이뤄 사원 주변의 전통 식당으로 향한다. 짙은 향신료 맛을 내는 시리아식 양고기 꼬치부터 빵 껍질이 부드러운 터키식 바게뜨, 간편하게 요기할 수 있는 치킨 케밥까지 다양한 나라의 음식을 이곳에서 즐길 수 있다.
◆혜화동 필리핀 장터
종로구 혜화동로터리에서는 일요일마다 필리핀 장터가 열린다. 휴대전화, 전화카드는 기본이고 양동이 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생선도 거래된다. 꼬치구이와 카사바(나무 고구마) 요리 필리핀 전통 음식은 즉석에서 맛볼 수 있다. 혜화동 성당에서 타갈로그어로 집전되는 미사에 참석하는 필리핀 사람들이 늘면서 10여년 전 형성된 장터에는 매주 600~1000여명이 다녀간다.
장터 말고도 이들을 상대로 한 카페, 음식점이 여럿 생겼고, 우리은행은 이들의 환전,송금을 돕기 위해 일요일에도 문을 연다. 설 연휴였던 지난 6일 고국 음식을 먹고 싶어 강원도 원주에서 왔다는 마르소이씨(27·여)는 "똑같은 생선이지만, 필리핀 것은 맛이 다르다"고 환하게 웃었다.
◆가리봉 '연변 거리'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 지하철 남구로역 부근 구로동길~우마길 200m 길은 '연변거리'로 불린다. 10여년전 조선족들이 쪽방을 찾아 몰려들기 시작하면서 형성된 조선족 타운이다. 가리봉동 등록 외국인 7700명 대부분이 조선족(7400명)과 중국 한족(240명)이다.
붉은 바탕에 흰색의 중국 간자체 간판을 단 '중국전화국','두만강식당'은 중국의 어느 거리에 온 듯한 착각을 들게 했다. 식당 직원 대부분은 중국인이다. 양꼬치부터 된장찌개까지 100개가 넘는 음식 이름이 10여쪽이 넘는 메뉴판에 빼곡한 것도 중국식이다.
식당 종업원, 간병인, 일용직 등으로 생활하고 있는 조선족들의 스트레스 해소 공간인 노래방에 가봤다. 오후 3시인데도 이방 저방에서 노랫소리가 흘러나왔다. 손님의 절반은 조선족이다. 그들은 소녀시대, 카라 등 아이돌 그룹의 노래도 유창하게 불러댔다.
◆대림동의 차이나타운
영등포구 대림동 대림역 12번 출구를 빠져 나오면 거리는 온통 붉은 색의 중국 간자체 간판이다. 가리봉동에 살던 조선족 일부가 신길동, 독산동과 함께 이곳으로 옮겨와 커다란 타운을 이뤘다. 조선족·중국인 타운 중에서 가장 크다. 중국식품점, 빵집, 여행사, 음식점 등이 2차선 도로 좌우를 가득 메웠다. 가게 주인도 손님도 중국어로 의사 소통을 해 중국의 어느 거리를 온 듯한 느낌이었다.
◆외국인 자녀 교육 1번지 서래마을
서초구 반포 4동, 서래마을로 알려진 이곳은 프랑스학교 학교를 중심으로 프랑스 타운이 형성돼 '쁘띠 프랑스(작은 프랑스)'로도 불린다. 400여명의 프랑스인(2010년 기준)의 한국 생활을 도와주는 '서래글로벌 빌리지 센터'도 있다.
그런데 1년 전 영국사립학교 덜위치칼리지(Dulwich College)가 반포에 개교한 뒤 다른 외국인 거주자들도 늘기 시작했다.독일인 스테파니(39)와 이탈리아인 운디네(35)는 "자녀들이 다닐 만한 학교가 가까워서 서래마을에 거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서울 프랑스학교 뿐 아니라 서울국제학교(SIS), 서울용산국제학교(YISS) 등 서울시내 주요 외국인학교 통학버스 경유지가 됐다.
하지만 최근 들어 서래마을 특유의 차분한 분위기가 사라지고 카페, 레스토랑이 우후죽순처럼 늘면서 국적불명의 상업타운으로 바뀌고 있는 것 같다는 우려의 눈길도 있다.
◆한국과 닮은 꼴 일본 교육열
서울 용산구 이촌동 지하철 이촌역 부근. 이른바 '리틀 도쿄'라 불리는 이 거리는 평일 오후 3시면 학교에서 돌아오는 아이를 마중하러 나오는 일본 엄마들로 인해 북적거린다. 외모도 비슷한데다 교육열까지 닮은꼴이라 일본 타운의 특색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거리 곳곳에 숨어 있는 일본 전문 식당, 수퍼에서 그나마 일본 문화의 일단을 엿볼 수 있다. 일본인이 직접 운영해 정통 일본식 우동과 덮밥을 제공하는 미타니야, 일본에서 수입된 과자와 라면 등 식료품을 파는 모노 마트도 눈길을 끈다.
◆베트남 사랑방
서울 성동구 왕십리역 2번 출구로 나와 3분만 걸으면 베트남인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는 '아시안 마트'가 나온다. 이곳 사장은 "왕십리에 베트남인들이 모이는 것은 왕십리에서 모든 게 해결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근처의 봉제 공장에서 일하는 베트남 여성들은 시간이 날 때마다 이곳에 몰려 온다. 베트남 노래를 부를 수 있는 노래방, 베트남 음식을 파는 식당, 수퍼, 그리고 한국어 교육과 의료, 법률 지원을 하는 외국인근로자센터가 이 지역에 있기 때문이다.
점심 시간을 이용해 아시안 마트에 들른 테이(25)씨는 "매일 이곳에 와서 친구들과 수다도 떨고 음식도 사 먹는다"고 말했다. 고향 음식이 먹고 싶어 거여동에서 왔다는 임산부도 있었다.
◆해방촌 거리 힌두사원
인도 힌두교 사원은 용산구 용산2동 해방촌 거리에 있다. 조그만 주황색 간판에는 'Bedic cultural center 스리 라다 샤마순더르 사원, 서울'이라고 쓰여 있다. 대문을 열자마자 인도 특유의 톡 쏘는 향내가 촛농 냄새와 뒤섞여 코끝을 자극했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입구에는 코끼리 코에 네 개의 팔이 달린 지혜와 행운의 신 가내쉬(Ganech)의 그림이 방문객을 굽어보고 있다.
이곳은 ‘하레 크리슈나’ 신도들을 위한 사원이다. 하레 크리슈나란 인도에 존재하는 수많은 신들 가운데 가장 높은 신인 크리슈나를 믿는 인도의 한 종파다. 평일에는 20~50명의 신도들이 종교 축제가 열릴 때는 500명이 넘는 신도들이 사원을 찾는다. 종교 행사 중에는 신나는 음악을 들으며 색색의 헤나 가루를 서로에게 뿌리며 노는 의례도 있다. 카말라(43) 씨는 “문화나 언어가 달라도 같은 색을 뒤집어쓰며 노는 동안 성별, 인종, 나이에 관계없이 우리는 하나가 된다”고 말했다. 그녀는 “딱딱한 분위기보다는 즐겁게 노래하고 춤추면서 삶 속의 스트레스를 날려버릴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