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으로 신분과 생활이 보장되는 것은 공무원이지 시민들의 대표가 아니다. 지방의원들은 자원봉사 개념으로 가야 한다."
지난 6일 인구 230만명의 일본 나고야(名古屋)시에서, 일본 최초의 지방의회 강제해산이라는 '작은 혁명'이 일어났다. 시의원들의 급여 삭감과 시민세 감세(減稅)를 내건 이 혁명의 전 과정을 선두에서 이끈 사람은 고물수집상 출신의 가와무라 다카시(河村たかし·62) 시장.
지난 16일 나고야 외곽 선거사무소에서 만난 가와무라 시장은 전형적인 '근육질 남성'이었다. 나고야 사투리가 투박했고 말의 내용도 직선적이었다. 그는 "일본 정치는 가업(家業) 정치, 직업(職業) 정치가 돼버렸다. 기득권자들의 집합소가 됐다"고 했다.
그가 나고야 시의회와의 투쟁에 들어간 것은 2009년 4월 시장 당선 때부터였다. 중의원 의원 5선을 거쳐 시장선거에 출마하면서 내세운 공약이 시민세 10%의 항구적 감세와 시의원들의 연봉 삭감이었다. 이를 관철하기 위해 자신의 연봉도 2750만엔에서 800만엔으로 줄였고 4년 후 받을 수 있는 4000여만엔의 퇴직금도 포기했다.
그러면서 시의원들에게도 연봉을 1630만엔에서 800만엔으로 똑같이 낮출 것을 요구했다. 800만엔으로 하자는 것은 "일본의 60세 관리직 남성의 평균 연봉이 758만엔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시의원들은 시민세 항구감세가 시 재정을 악화시킬 게 뻔하다고 저항했다. 시의원들의 연봉을 800만엔으로 낮출 경우 세금과 각종 정당 갹출금을 제외할 경우 한 달에 8만엔밖에 남지 않는다는 반론도 나왔다. 그러나 시민들은 6일 해산선거에서 가와무라 시장을 전면 지지했다. 무려 73%의 찬성. 시의회 리콜과 함께 물러난 가와무라 시장도 69%의 지지율로 재신임했다.
그는 자신을 "잡초처럼 살아온 사람"이라고 했다. 도쿄(東京)의 명문 히토쓰바시대학을 졸업한 뒤 나고야로 돌아가 부친이 하던 고물수집회사를 32년간 경영했다. 말이 경영이지 직접 트럭을 몰고 고물을 수거하러 다녔다. 그 중간에 검사가 되려고 사법시험에 9번이나 도전했다가 실패한 후 정치에 도전하기로 했다. 몇번 낙선한 뒤 현 민주당의 뿌리 중 하나인 일본신당 후보로 1993년 중의원 의원이 됐다. 처음 한 일이 지방출신 의원들을 위해 국가가 도쿄에 마련해놓은 국회의원 숙소 입주를 특권이라고 거부한 것이었다.
그는 감세(減稅)를 정치적 목표로 삼았다. 세금으로 사는 공무원과 의원들은 무엇보다 세금 줄이는 일에 관심을 둬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그래서 작년 '감세일본'당이란 동네정당도 만들었고 유권자들의 열띤 호응을 받았다.
그는 오는 3월 13일 치러질 새 시의회선거에 '감세일본'당의 이름으로 40명을 내보낸다. 시의회 정원 75명의 과반인 38명을 당선시키는 게 목표다. 이기면 의원 정수를 75명에서 38명으로 줄이는 법안, 시민세 10% 감세를 항구화하는 법안, 의원 급여를 줄이는 법안을 통과시키는 일부터 하겠다고 했다.
현재 일본에서는 지방의회 구조조정을 목표로 하는 동네정당들이 지역마다 우후죽순으로 생기고 있다. 가와무라 시장은 앞으로 이런 지역들과 연대해 감세와 지방의회 축소를 거스를 수 없는 흐름으로 만들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하지만 가와무라 시장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다. 기존 정치권에 대한 '증오 부추기기'를 통해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려 한다든가, 시 재정에 대한 종합적 검증 없이 무조건 감세부터 하려는 포퓰리스트라는 비판이다. 가와무라 시장은 "제 월급 깎아가면서 일하는 포퓰리스트도 봤느냐"면서 "목표를 향해 돌진할 것"이라고 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시민들에게 물었다. 나고야역으로 가는 길에 탄 택시의 운전사는 "정치가 재미있어졌다"고 했다. 그는 "단돈 1엔이라도 세금을 줄여주면 그것으로 좋다"고 했다. 나고야역 근처에서 만난 20대 청년은 "이번만은 가와무라 시장이 가자는 방향으로 가고 문제가 생기면 바로잡으면 된다는 분위기"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