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본지에 가구 디자이너 배세화씨의 기사가 나간 뒤 문의 전화가 쇄도했다. 구매 경로를 묻는 이부터 작가의 공방을 보고 싶다는 사람까지 다양한 연령대로부터 여러 질문이 쏟아졌다. 작가의 홈페이지는 방문자 폭주로 한때 다운됐다. 디자인 가구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심이 소수의 상류층에 국한된 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까지 퍼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한국에서 생활용품의 일부로 생각되던 가구가 컬렉션용 예술 작품으로 인식되게 된 최초 발원지(發源地)는 '이건희 삼성 회장가(家)'라는 게 디자인계에서 암묵적으로 통용되는 이야기이다. 이 회장가에서 상류층 '사모님'들 쪽으로 가구 컬렉션 유행이 퍼져 갔다는 말이다.
이 회장측은 1991~92년 서미갤러리(관장 홍송원)의 디자인 가구 전시회에서 처음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이 갤러리는 당시 조지 나카시마, 장 프루베 같은 유명 해외 작가의 빈티지 가구를 국내에 처음으로 선보였다. 이 회장가는 이 전시회에 나온 작품 가운데 일부를 사들인 것으로 전해졌다. 서미갤러리는 2007년 삼성 비자금 사태 때 이 회장의 부인 홍라희씨에게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작품 '행복한 눈물'을 팔았는지가 논란이 됐을 정도로 삼성가와 인연이 깊다.
이 회장이 조지 나카시마의 가구를 구매한 사실이 가구업계와 재벌가를 중심으로 퍼지면서 조지 나카시마를 찾는 상류층 사모님들의 발길이 급증했다고 한다. 그전만 해도 상류층의 컬렉션 품목은 회화나 조각 같은 순수 예술 작품들에 한정됐었다. 조지 나카시마(1905~1990)는 일본계 미국 가구 디자이너로 애플의 스티브 잡스 회장이 거실에 두는 유일한 가구가 그의 작품인 것으로도 유명하다. 조지 나카시마는 며느리가 한국인이다. 그 한국인 며느리와 친분이 있다는 한 디자이너는 "2000년대 중반 갑자기 한국에서 집중적으로 그의 작품이 알려지고 구매 문의가 이어지자 나카시마측에서도 '신기한 현상'이라는 반응이었다"고 했다.
건축가 미스 반 덴 로에(1886~1969)가 디자인한 바르셀로나 소파(데이베드용)도 비슷한 경우다. 이건희 회장이 이탈리아에 직접 주문해 이 제품을 산 뒤에 국내에서 상류층을 중심으로 비슷한 물건을 찾는 사람들이 늘기 시작했다는 전언이다. 가죽 소재가 무엇이냐에 따라 가격이 다른 이 제품은 가장 싼 것이 우리 돈으로 1500만원 정도다. 이탈리아제 최고급 소파 브랜드 '몰테니(Molteni)'도 이 회장이 관심 있어 한다는 소문이 난 뒤 상류층에서 '필수 소장품' 중 하나로 자리 매김하고 있다.
관련 업계 관계자들에게선 디자인 가구 애호가로 재작년 서거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이름도 들을 수 있다. 한 가구회사 직원에 따르면 노 전 대통령은 재임 중 유럽 순방 길에 디자인 가구로 감각 있게 꾸민 여러 나라 정상의 집무실을 보면서 디자인 가구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주로 사무실용 디자인 의자였다. 노 전 대통령측은 귀국한 뒤 한 인테리어 회사를 통해 몇몇 고급 사무용 의자의 샘플을 본 뒤 독일의 명품 사무용 가구인 세두스(SEDUS)의 '오픈업 체어'를 샀다. 한 개에 200만~300만원 정도다. 노 전 대통령은 처음에는 한 개만 구입해 썼지만 마음에 들었는지 나중에 하나를 더 사 썼다는 후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