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문화예술계를 대표하는 두 거장의 집이 최근 엇갈린 운명에 처했다. '오감도' '날개' 같은 난해한 작품으로 근대 문학계에 충격을 줬던 천재 작가 이상(李箱·1910~1937)의 집과 1만원권 지폐 속 세종대왕 초상을 그린 운보(雲甫) 김기창 화백(1913~2001)의 집 이야기다. 한쪽에선 번지수 말고는 작가의 흔적이 전혀 없는 땅에 다시 작가의 숨결을 불어넣는 작업이 한창인 반면, 다른 한쪽에선 복잡한 소유 관계와 관리 실패로 멀쩡하던 예술가의 집 일부가 경매로 나왔다.

이상(사진 왼쪽), 운보 김기창.

요즘 서울 종로구 통인동 154-10번지에서는 작가 이상을 추억하는 예술 프로젝트 '이상의 집'이 진행 중이다. 얼마 전까지 수예점과 서당으로 쓰인 다 쓰러져가던 한옥을 2주 전 지붕과 대들보만 남겨둔 상태로 철거했다. 70㎡ 정도의 빈집을 무대로 이달 말부터 문화재단 아름지기의 지원 아래 3개월간 건축가 장영철, 설치미술가 유영호·이주영, 사진가 황우섭 등 예술가들이 작품 활동을 펼친다. 이상의 시구(詩句)가 예술 작품으로 재해석되고, 이상이 금홍과 운영했던 '제비다방'이 예술가와 지역 주민의 모임 장소로 재현된다. 6월 행사가 끝나는 대로 한옥이 완전히 철거되고 이상 기념관이 들어설 예정이다.

이 터는 스물일곱의 나이에 요절한 이상이 3살부터 23살까지 생애 대부분을 보냈던 집이 있던 자리다. 이상의 삶터를 기념관으로 재구성하기 전에 문화 행사를 하면서 이상에 대한 일종의 예술적 진혼제(鎭魂祭)를 지내는 것이다. 아름지기 장영석 사무국장은 "이상이 떠난 뒤 그 자리에 쌓여온 70년 이상의 시간을 예술로 정리하는 차원에서 프로젝트를 기획했다"고 했다.

조만간 예술 설치물이 들어설 서울 종로구 통인동 이상의 집터.

2주 전 헐린 한옥은 이상이 살던 집은 아니다. 1940년 즈음 이상이 살던 한옥이 철거되고 새 한옥이 들어섰다. 이후 1970년대 이상을 추억하던 여류 서예가 박분금씨가 이 집을 매입해 살았지만 개발 압박을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 2003년 마침 동네에 살던 건축가 김원씨가 사연을 알게 돼 자신이 사무국장으로 있던 김수근문화재단에서 집을 매입토록 했다. 이후 2007년 문화유산 보전 단체인 문화유산국민신탁이 다시 사들이면서 기념사업을 본격화하게 됐다. 현재 기념관 건립 계획과 관련된 문화 사업은 아름지기 재단이 맡고 있다. 이상에 대한 건축·예술계와 문화단체의 애정이 흔적조차 사라질 뻔했던 '이상 가옥'의 추억을 되살려낸 것이다.

반면 김기창 화백이 말년을 보냈던 충북 청원군 내수읍 형동리의 '운보의 집'은 소유권을 둘러싼 유족·지인 간의 갈등과 기념사업 실패로 곤경에 처했다. 운보의 집 가운데 도예공방과 편의시설, 주차장 등 일부 토지와 건물(2만5772㎡·약 7800평)이 21일 청주지방법원에서 5차 경매에 들어간다. 김 화백은 1984년 외가가 있던 형동리에 이 집을 짓고 2001년 작고할 때까지 머물렀다.

충북 청원군에 있는 김기창 화백의 집 가운데 경매로 나온 공방.

'운보의 집'은 낮은 산으로 둘러싸인 8만3000㎡(2만5100평)의 대지에 솟을대문을 지나 정원과 2개의 중문을 통과하면 아름다운 한옥 안채가 나오도록 설계됐다. 안채 주변은 미술관과 수석·조각공원, 도자기공방 등으로 꾸며져 있다.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의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이 집은 운보의 별세 직전 화백의 작품과 재산을 관리하던 '㈜운보와 사람들'에게 증여됐으나, 이 회사가 부도나면서 토지와 건물 일부가 2006년 1월 현재 소유자에게 경매로 넘어갔다. 그러나 현 소유자가 은행 대출금 15억원을 갚지 못해 이번에 다시 경매에 나온 것이다. 지난해 10월 이후 네 번 유찰된 경매의 최저 입찰가격은 감정가(25억9694만원)의 41%인 10억6370만원이었다. 거장이 예술을 꽃피웠던 아름다운 '운보의 집'을 남은 사람들이 망쳐버린 셈이다.

● 이상

본명 김해경. 1910년 서울 출생. 실험적이고 파격적인 작품을 쓴 '일세의 귀재(鬼才)'로 불리는 천재 작가. 1931년 처녀시 '이상한 가역반응'으로 등단, '오감도', '날개', '건축무한육면각체' 등 대표작을 남겼다. 1933년 기생 금홍과 '제비다방'을 운영하다 폐병에 걸린다. 1936년 변동림과 결혼해 도쿄로 건너갔다가 폐병이 악화해 27세의 나이로 요절했다.

● 운보 김기창

1913년 서울 출생. 한국화가. 7세에 장티푸스로 청력을 잃었다. 김은호 화백에게 그림을 배운 지 6개월 만에 조선미술전람회에 처음 입선한 뒤 5회 연속 입선과 4회 연속 특선을 기록했다. 호방하고 동적인 화풍으로 한국화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는 평. 민화의 해학과 색채 감각을 응용한 바보산수로도 유명하다. 1981년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