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광지역지원특별법에 의해 광부들의 검은 눈물로 세워진 강원랜드에 도박중독의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다.
지난 설 연휴 마지막 날인 6일 강원 정선 강원랜드 카지노장은 인산인해를 이뤘다.
980대의 슬롯머신은 대박을 기대하는 사람들 앞에서 쉴 새 없이 숫자와 그림을 나열하고, 바카라, 재팟, 빅휠 등 700~800여 석의 테이블 게임장 주변은 남녀노소로 2중3중 둘러싸인 채 참가자들의 배팅으로 분주한 모습이다.
카지노에서 만난 천모씨(53)는 “이 가운데는 소위 말하는 앵벌이를 위해 자리를 차지한 사람도 있다”고 귀띔했다. 카지노앵벌이는 도박으로 전 재산을 탕진하고 게임테이블 자리에 대신 앉아주고 시간당 10만 원의 보수를 받는 사람을 말한다. 이는 강원랜드 규정상 2시간 이상 자리를 비우면 기존 좌석권이 박탈되기 때문이다.
10년간 카지노를 출입했다는 천씨는 “도박중독으로 재산을 모두 잃고 가정을 파탄내고 강원랜드 주변을 떠돌며 앵벌이를 하는 사람이 하루 800여 명은 된다”며 “이들은 강원랜드가 제한하고 있는 15일 범위에서 출입 자릿값을 받아 찜질방 등지에서 생활한다”고 전했다.
그래도 찜질방에서 생활하는 사람은 그나마 호화로운 삶이라고 한다.
그는 “이마저도 여의치 않으면 호텔로비나 지하 의자에서 쪽잠을 청하는가 하면 끼니도 거른 채 하루를 근근이 버틴다”고 말했다.
전 공기업 간부였던 김모씨(58)는 “2003년 해돋이를 보러 친구들과 동해바다에 왔다가 잠깐 들른 카지노에서 600만 원을 딴 것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버렸다”고 밝혔다.
김씨는 “집과 퇴직금, 직장생활 30여 년간 모은 예금 등 10여억 원을 3년 만에 날리고 부인과 이별한 채 홀로 살아오고 있다”며 “아들, 딸과도 연락이 끊긴 지 6년이나 됐다”고 신세를 한탄했다. “도박을 하면서 온갖 거짓말로 돈을 안 빌린 지인이 없게 되면서 대인 관계가 피폐해졌고 빚을 갚을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덧붙였다.
여기에서 끝내지 않고 김씨는 “도박자금 구하기가 여의치 않자 사채를 얻어 쓰면서 매일 협박과 언어폭행으로 시달리며 지옥 같은 날을 보냈다”고 회상했다.
가슴 아픈 일은 “도박중독으로 가사를 탕진하고 아흔의 노모를 찾았을 때 차라리 자신이 목매 죽어야 정신을 차릴 것 같다”며 “가슴을 쥐어뜯으며 눈물짓던 어머니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며 지금의 상황을 후회했다.
그는 초점 잃은 눈빛으로 “죽어야만 이 어둠의 늪에서 빠져 나올 것 같다. 도박중독센터 교육과 1년 출입제한 등 도박의 구렁텅이에서 벗어나려고 온갖 노력을 다 해 봤지만 결국은 이곳으로 향하고 만다”고 말했다.
김씨는 “예전의 단란했던 가정을 찾아 건강하고 건전한 삶을 살고 싶은 것이 소원”이라는 말을 남기고 다시 게임장으로 향했다.
오전 6시 강원랜드가 폐장하는 시간이 되자 썰물처럼 카지노를 빠져나온 사람들은 정문 앞에 대기 중인 숙박업소 셔틀버스에 올랐다.
이들은 형편에 따라 호텔과 모텔, 찜질방 등 숙박시설에서 잠을 자거나 혹은 ARS 입장예약접수에 성공하면 잠깐 눈을 붙인 후 개장시간인 오전 10시에 맞춰 다시 카지노로 향한다.
고한읍의 한 찜질방에서 만난 정모씨(51)는 “9년째 카지노 주변에서 대리운전을 하는데 고한·사북지역 5개 찜질방에는 한 곳당 평균 80여 명의 도박중독자가 20여만 원의 월정액을 내고 살아가고 있다”고 전했다.
찜질방 한쪽에 마련된 토굴 같은 방에는 그의 설명을 뒤받쳐 주듯 개인용품들이 잘 정리돼 있다.
고한에서 10여 분 떨어진 한 찜질방도 모습은 그다지 다르지 않았다.
흡연실과 식당에는 게임을 마치고 돌아온 이와 ARS 예약에서 떨어진 사람들이 친숙한 모습으로 삼삼오오 모여 앉아 하루의 근황을 묻느라 여념이 없다.
이들의 주된 대화 내용은 대부분이 게임에 대한 것이다.
새벽 3시쯤 게임을 마치고 피곤한 모습으로 찜질방 흡연실에 들어선 조모씨(38)는 “역시 올인을 했다”며 “보통은 아침 6시 넘어서 들어오는 데 오늘은 유난히 부모님 생각이 나서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일찍 들어왔다”고 침울하게 말했다.
비교적 젊은 나이임에도 이곳을 떠나지 않는 이유를 묻자 그는 “여러 가지 직업을 구해서 일을 해 봤지만 대부분 일주일을 넘기지 못하고 다시 카지노로 돌아오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에 살던 유모씨(61)는 “수억 원의 재산을 잃고도 도박의 사슬에 얽혀 10년째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이 서글프다”며 “본전은 고사하고 반이라도 건져 새 생활을 하고 싶다”고 혼잣말처럼 읊조렸다.
특히 그는 “강원랜드가 운영하고 있는 도박중독센터를 찾아 상담도 해 봤으나 1년 출입제한 서명 후 차비 3만 원을 준 것이 전부여서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한편 도박중독은 마약중독이나 알코올의존증과 같은 질병으로 반드시 병원이나 도박치유센터를 찾아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종합된 의견이다.
전문가들은 “도박중독자가 도박을 할 때 호르몬의 일종인 도파민이 분비되는데 도박을 중단하면 이 호르몬의 분비가 줄어 불안감, 손 떨림 같은 금단현상이 나타나 반드시 의사의 진단을 받고 심하면 약물 치료를 병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러한 실정에서 도박중독자들은 대부분 강원랜드 도박중독예방센터에 대해 “도움이 된다기보다는 그저 보여주기 용 실적을 위한 형식적인 제도인 것 같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강원랜드의 화려한 모습 이면에 인생을 송두리째 앗아가는 도박중독이라는 심각한 질병이 만연하고 있어 특단의 대책 마련이 요구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