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는 신장(height)이 아니라 심장(heart)으로 하는 것이다". 미 프로농구에서 네 번 득점왕을 했던 앨런 아이버슨(36)의 명언이다. 그는 183㎝이라는 작은 키에도 'The Answer(해답)'라는 별명으로 통할 정도로 득점력이 강했다.
하지만 역시 농구는 '높이'의 운동이다. 키가 클수록 유리하다는 게 상식이다. 국내 여자 프로농구 사상 첫 4시즌 연속 리바운드 1위를 눈앞에 둔 신정자(KDB생명)는 얼마 전 통산 3000리바운드를 돌파한 뒤 "자리 싸움을 하는 요령이 생겼다"고 비결을 설명하면서 "팔이 다른 사람들보다 긴 덕을 본다"고 했다. 팔 길이는 얼마나 중요할까. 또 키와 팔의 상관관계는 어떨까.
◆리그 주름잡는 '고릴라'들
보통사람은 '윙스팬(wings pan)', 즉 양팔을 옆으로 펼친 길이가 키와 비슷하다. 남자 프로농구 전자랜드의 서장훈(207㎝)도 키와 윙스팬의 비율이 일대일이다. 그러나 그는 농구 선수치곤 팔이 짧은 편이다. 서장훈과 현주엽(은퇴)은 예전에 "우리 팔이 조금만 더 길었어도 한국 농구의 역사가 바뀌었을 것"이라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2010~2011시즌 득점 2위인 LG의 문태영은 팔을 내리면 무릎 근처까지 내려오는 듯한 느낌이 든다. 키(194㎝)보다 윙스팬(215㎝)이 훨씬 긴 '고릴라 스타일'이다. 팔이 길면 공격·수비 모두 편리하다. 문태영은 "장신 수비수가 붙어도 가로막기를 당할 걱정 없이 자신 있게 슛을 던진다"고 말했다. 가로채기 2위인 KCC의 전태풍은 "팔이 길면 상대가 예상하지 못한 기습적인 스틸을 할 수 있다. 드리블을 할 때도 공을 컨트롤하기가 더 쉽다"고 말했다. 수트는 물론 셔츠까지 무조건 맞춰 입어야 한다는 작은 불편함이 있을 뿐이다.
◆'고릴라 DNA'는 따로 있나?
스포츠 의과학 박사인 송홍선 한국체육과학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신체형태적 특징(somatotype)에 따라 어울리는 운동이 있다. 농구는 어렸을 때부터 몸이 날씬하고 팔이 긴 선수들이 성공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미 프로농구의 수퍼스타들, 특히 흑인 선수들은 청소년기까지 몸이 가늘고 긴 세장형(細長型)이었다가 근육이 울퉁불퉁한 투사형으로 바뀌는 경우가 많다. 올랜도 매직의 드와이트 하워드는 키가 211㎝인데 윙스팬은 233㎝이나 된다. 꾸준한 상체 운동으로 어깨를 쭉 펴주면 자연스럽게 윙스팬을 약간 더 넓히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국내 선수 중 '고릴라' 계열로는 모비스의 김효범이나 동부의 윤호영이 있다. 차세대 스타로 꼽히는 경복고의 센터 이종현(204㎝)도 윙스팬이 220㎝이다. 체격이라는 '하드웨어'로만 따지면 한국의 어린 선수들도 국제 표준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윙스팬' 살리는 건 다리
윙스팬이 넓은 선수라도 이점을 충분히 살리려면 점프력이나 스피드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덩크슛을 하려면 골대 높이인 305㎝보다 최소한 15㎝는 더 뛰어올라야 한다. 아이버슨은 제자리뛰기 높이가 1m가 넘었다. 제자리 점프로도 가볍게 덩크를 꽂았다. '에어(Air) 덩크'로 이름난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198㎝)은 전성기 때 제자리 점프가 120㎝ 안팎이었다. 자유투 라인에서 날아올라 림에 공을 찍는 그의 유명한 덩크는 점프력 덕분이었다. 그의 윙스팬은 211㎝로 동부 윤호영과 비슷한 수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