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화가 안창홍(58)은 사실적이고 노골적인 알몸을 화폭에 담는다. 가공시키지 않은 건강한 육체의 정직성과 존재감에 경의를 표한 결과물이 바로 알몸이다.
저돌적인 모델의 포즈와 시선은 누드화의 전통적 코드를 거부하는 듯하다. 관람자에게 불편하고 당혹스러운 풍경을 안겨주지만 포르노적이지는 않다.
화폭의 주인공은 농부나 문신가게 사장, 이웃 부부, 백화점 직원, 중소기업 사장 등 별나지 않은 남녀들이다. 모델 섭외는 쉽지 않지만 눈에 띄면 끈질기게 설득해 옷을 벗긴다.
"그리기로 마음먹으면 긴 시간을 투자해서라도 일을 성사시킨다"고 밝혔다. 작업실인 경기 양평 인근에 사는 칠순 농부의 옷을 벗기는 데는 1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관찰자로서의 눈에 비친 이 노농부의 육체는 "가혹하고 변덕 많은 대지의 담금질에 생애를 바쳐 맞선 전사로서의 숭고함과 연륜의 권위가 어우러져 아름다웠다"며 "오랜 세월 개간과 수확을 위한 밤낮 없는 노동으로 단백질이 빠져나간 근육과 주름과 굵은 관절들이 마치 숱한 격랑을 겪으며 노년기에 접어든 자연의 장엄함을 보는 듯했다"고 평했다.
전문모델이 아니다보니 이들은 낯선 분위기에서 옷을 벗는 것이 어색하다. 이럴 때는 마음이 안정될 때까지 기다려 주는 것이 상책이다. "모델 설 자리를 정해주고 작업할 준비를 하며 느긋이 기다린다."
전문 모델을 쓰지 않는 이유는 "만들어진 몸이 아닌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몸을 통해 아름다움의 본질과 존재의 꿋꿋함을 표현하기 위해서"다. "직업적 모델은 얼마든지 구할 수 있지만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담지 못한다. 영화배우처럼 익숙한 포즈를 취하는 모델들과는 다르다"는 판단이다.
알몸 위의 파리는 "시간의 무한성"이라며 "무엇이든지 소멸할 수밖에 없는 존재의 의미"라고 강조했다.
작품은 작가와 모델 사이의 정서적 연대감을 기반으로 완성된다. 물감자국으로 얼룩진 작업실을 배경으로 도전적인 포즈를 취한 모델들의 표정에서 소시민적 삶의 불안과 공포로부터 해방된 당당함이 엿보인다. 특히 정면을 응시하는 이들은 '보이는 대상'으로서가 아닌 '보는 주체'로서 존재한다.
안씨는 서울 평창동 가나갤러리에서 '불편한 진실'을 주제로 사회 주변인들의 신체에 집중한 누드회화와 드로잉 등 40여점을 건다. 과거 의도적으로 인물의 개별적 특성을 지워버리고 익명성을 부각시키던 '49인의 명상'과 '봄날은 간다' 시리즈와는 다른 작품들이다.
관객들에게 보이기를 기다리는 수동적 형태가 아니라 관객과 시선을 마주하는 주체로서의 당당함을 그렸다. 작가의 일관된 주제인 시대가 낳은 절망, 권력의 부조리가 위선적인 교양과 허위허식으로 미화된 것에 대한 폭로이자 냉소의 표현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2008년 '베드 카우치' 시리즈 가운데 6점을 함께 선보인다. 흑백 모노 톤이 주는 장중함이 등신대를 훌쩍 뛰어 넘는 크기로 인해 관능적 아름다움보다는 엄숙함으로 다가온다. 사회의 모순에 대한 내면적 갈등이 관능적이면서도 퇴폐적인 정서와 착잡하게, 절묘하게 뒤섞여 있다.
부부 누드작품도 있다. 문신 전문가 부부다. "문신전문가가 한번 옷을 벗은 후 나한테 빠져서 부인까지 끌어들였다"며 "다음 전시에서는 이들 가족 누드작품을 선보일 것"이라고 귀띔했다.
11일부터 3월6일까지 볼 수 있다. 02-3217-10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