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일본에 투항하면 일본 치하에서 지위가 높아지고 부귀(富貴)가 8역적(逆賊)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음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국권을 빼앗기고 국민이 도탄에 빠져 있는 때에 나의 뜻은 나라를 찾는 데 있으므로 왜(倭)와 싸워서 설혹 이기지 못해 흙 속에 묻히지 못하고 영혼이 망망대해를 떠돌게 될지라도 조금도 후회하지 않는다."

▶일제의 강제합방 직전 의병장 민긍호(閔肯鎬) 선생은 강원도 관찰사가 귀순을 권유하자 거부하며 이렇게 말했다. 민 선생은 고종 때 설치된 근대적 지방 군대인 진위대(鎭衛隊) 군인이었다. 일제가 1907년 군대해산령을 내리자 "나라에 병사가 없으면 무엇으로써 나라라고 할 수 있겠는가. 해산 명령에 순종할 수 없다"며 300명 병사를 이끌고 강원도 원주에서 궐기했다.

▶민 선생은 강원도·충청도·경상도를 오가며 일본군과 100여회 전투를 벌였다. 그는 1908년 2월 일본군에 사로잡혀 치악산 자락인 원주시 강림면으로 호송됐다. 그날 밤 의병 60여명은 대장을 구출하려고 일본군을 급습했고, 선생은 이 기회를 이용해 탈출하는 과정에서 일본군 총을 맞아 운명(殞命)했다. 정부는 1962년 민 선생에게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강림면에는 주민들이 세운 '의병대장 민긍호 전적비'가 있다.

▶4일 카자흐스탄 동계 아시안게임 피겨스케이팅 남자 싱글 경기에서 데니스 텐(18)이 카자흐스탄 선수로는 이 종목에서 처음으로 금메달을 땄다. 이 선수의 할머니가 민 선생의 외손녀다. 민 선생의 부인은 민 선생이 순국한 뒤 어린 남매를 데리고 북만주로 갔다. 거기서 안중근 의사의 도움을 받았으나 안 의사가 체포되자 러시아 땅인 연해주로 피신했다. 소련이 1937년 연해주 한인(韓人)들을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같은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키는 바람에 민 선생 가족도 카자흐스탄으로 떠밀려 갔다.

▶한국도 몇 번 방문했던 텐 선수는 "나는 반은 한국인이고 반은 카자흐스탄인입니다. 할아버지의 조국 팬들이 보내주신 뜨거운 성원을 늘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했다. 그는 대회에 나가면 선수 소개를 할 때마다 "텐 선수의 고조부는 한국의 유명한 장군인 민긍호입니다"라는 말을 꼭 넣어달라고 한다고 한다. 망국의 설움 속에 유랑을 거듭해야 했던 의병장 후손이 시상대에 오르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뭉클하고 먹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