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월 29일 (토) 날씨-맑고 약간 추움>
추위가 여전히 기승을 부리던 1월 마지막 주 토요일 오후, 대전행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여성태권도경기지도자모임’의 행사가 대전 유성에서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성태권도경기지도자모임’은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초, 중, 고, 대학, 일반을 포함해 현재 국내 태권도팀에서 코치나 감독을 맡고 있는 여성 태권도지도자들의 모임입니다.
모임이 발족한 것은 지난해 1월. 이제 만 1년이 되었습니다. 이번 대전 모임은 여성태권도경기지도자모임의 2011년 전반기 정기 총회의 자리였습니다.
행사는 오후 2시부터 시작되었으나, 저는 서울에서 중요한 결혼식이 있어 결혼식을 마친 후 강남고속버스터미널을 거쳐 대전 유성에 도착했습니다. 도착해 보니 저녁 7시가 다 됐습니다. 오후 2시부터 있었던 행사에는 참석을 하지 못했습니다.
낮에 있었던 행사는 모임의 운영방안에 관한 회의와 여성태권도의 발전방향에 대한 강연, 경기력 향상을 위한 웨이트 트레이닝 세미나 등이 이어졌더군요.
행사도 의미가 있었겠지만 어차피 늦은 거, 모르는 얼굴이 더 많은 여성 지도자들과 이 참에 좀 더 가까워진다면, 기자로서 적지 않은 수확이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행사가 끝난 숙소를 찾았습니다. 숙소에는 먼저 도착한 두 명의 동료 기자들이 있었습니다. 태권라인의 서성원 기자와 TK24의 김영걸 기자.
기다리느라 배고팠다는 동료 기자들과 식당을 찾았습니다. 여기까지는 기자 3명만의 자리. 우리 기자들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저녁을 먹었습니다. 식사 중에 김영걸 기자에게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원래는 저녁식사를 같이 하기로 예약을 해두었는데, 늦게온 저와 같이 저녁을 먹으려고 동료 기자들이 마련된 저녁식사에 불참했더군요. 어쨌거나, 저녁을 먹고 났으니 여기까지 내려온 김에 술 한잔 하자는 여성지도자모임 회장 박은선 코치의 요청이었습니다.
흔쾌히 받아들이고 맥주집에서 여성지도자들을 기다렸습니다. 우리 기자들 생각으로는 한 서너명 정도만 오면 되지 않겠느냐 했지만, 10명 이상의 여성 지도자들이 함께 왔습니다.
기자로서 태권도계를 취재하면서 술을 피한다면 말이 안되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이제 술 좀 자제하라는 가족의 권유와, 스스로의 몸에서도 절제해야한다는 메시지가 조금씩 나타나고 있는 상황이라 술자리를 가능한 한 피하자고 마음먹고 있던 터였습니다. 물론 이날 자리에서는 이러한 각오가 무용지물이 되었지만 말입니다.
술자리에서는 여성 태권도 지도자들의 현실적인 고민들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고, 그들의 노력에 대해서도 더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어쨌거나 술자리는 무난하게 끝이 났고, 우리 기자들은 무사히 숙소로 돌아와 쓰러졌습니다.
다음날 아침. 바깥의 약간 소란한 소리에 눈을 뜬 시간은 대략 9시20여 분쯤? 이날 오전 일정은 체육대회입니다. 실내 축구를 하기로 했더군요. 지난 밤에 저는 '나도 꼭 끼워달라'고 요청을 해 둔 터 였습니다. 허언이 아니었음을 증명하기 위해 주섬 주섬 옷을 갈아입고, 숙소를 나섰습니다. 체육대회 장소인 대전체육고등학교 태권도장에 도착하자 이제 막 축구를 시작하려 하고 있었습니다.
“잠깐! 나도 같이 합시다.”
여성 지도자들은 축구를 하겠다는 제 말이 안 믿겼던지, 심판을 하겠느냐, 아니면 골키퍼를 하겠느냐고 묻습니다.
“무슨 소리! 미드필더로 뛰겠다!”
미덥지 못한 표정을 지으며 저를 한쪽 팀에 끼워줍니다. 제가 낀 팀은 장소를 제공한 대전체고의 우연정 감독이 골키퍼를 맡고 있는 팀. 상대편은 여성지도자모임의 회장을 맡고 있는 박은선 수원시청 코치의 팀이었습니다.
축구 경기가 시작됐습니다. 지난 밤에 마신 술이 덜 깨어서 다리가 후들거리기도 했지만, 나름대로는 열심히 뛰었습니다. 하, 그런데 여성 지도자들 몸싸움이 장난이 아니더군요. 특히 성서중학교 정진영 코치. 이건 뭐 근처에 갔다간 큰일 나겠습니다. 몸을 붕, 날려서 상대 선수를 제압하더군요. 탱크가 따로 없더군요.
그렇지만 경기 결과는 우리 팀의 승리였습니다. 우리 팀의 스트라이커는 경서중학교의 신현선 코치. 모임의 막내라더군요. 하지만 축구 실력만큼은 최고. 승리의 견인차 역할을 했습니다. 이제 곧 대전체고를 떠나 충남고등학교 체육선생님으로 자리를 옮기는 골키퍼 우연정 감독의 선방도 승리의 요인이 되었습니다.
상대 선수 중 인상적이었던 것은 김제시청 장정은 코치였습니다. 특히 헤딩슛으로 득점한 장면은 최고였습니다. 박은선 코치는 회장답게 강력한 포스를 풍기며 경기장을 누볐습니다만, 득점과 연결되지 못한 것이 아쉽더군요.
사실 우리팀 승리의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저였습니다. 하핫. 미드필드를 장악하며 공수의 전환을 주도했고, 날카로운 어시스트로 우리 팀 스트라이커 신현선 코치에게 공을 배분했으며, 때때로 허허실실, 상대편의 웃음을 자아내는 몸 개그까지 선보이며, 상대 선수들의 긴장을 풀어버렸으니까요. 경기 후 상대 선수들에게 나 때문에 이겨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습니다만, 상대 선수들,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냐는 표정을 짓더군요. 헐.
경기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사우나로 들어가면서 헤어졌습니다. 나중에 태권도 대회장에서 만나면 반갑게 인사하자는 말을 나누면서 말입니다.
모임을 이끌고 있는 박은선 코치는 “숫적으로 절대 열세인 여성 태권도지도자들이 서로 친목을 도모하면서 경기력 향상을 위해 서로 돕고 태권도 발전에 작게나마 기여하는 여성태권도경기지도자모임이 되겠다”고 각오를 밝혔습니다.
여성 태권도인의 전체 수에 비한다면 극히 적은 여성 지도자의 수입니다. 그러나 힘내시기 바랍니다. 한국 여성태권도를 이끌어가는 중심에 여러분이 있습니다. 여성태권도경기지도자 여러분 화이팅!
박성진 태권도조선 기자 kaku616@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