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훈 논설위원

경찰이 엊그제 전국 16개 지방경찰청 소속 '신참' 전·의경 4581명의 소원수리(訴願受理)를 받았다. 소원수리란 억울하게 당하고도 말 못한 게 있으면 하라는 것이다. 지난 23일 강원경찰청 307전경대(전투경찰대) 소속 전경 6명이 구타와 가혹행위를 이유로 부대를 이탈한 사건이 터지자 실태 조사를 위해 내린 처방이다. 조사대상의 7.9%인 365명이 구타나 가혹행위를 당했다고 했다. 신고 내용은 놀랍다. "잠잘 때 코를 곤다고 뺨을 때렸다" "자기 발 냄새를 맡게 했다" "가운뎃손가락을 빨아보라고 했다"….

307전경대가 가혹행위 논란에 휩싸인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6년 6월 인터넷에 망측한 사진이 퍼졌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전경 6명이 차렷 자세로 서 있고, 옆에선 고참들이 웃고 있는 사진이었다. 바로 307전경대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사태 수습에 나선 경찰은 "소대별 진급신고식 때 벌칙으로 옷을 하나씩 벗게 한 것"이라며 "1년 전 일이고 이제는 사라졌다"고 했다. 사진 속 '나체 전경'들은 기자회견까지 갖고 "인권유린 행위는 없었다"고 해명했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석 달도 지나지 않아 307전경대 전경 3명이 가혹행위 때문에 잇따라 탈영하는 사건이 터졌다. 그러자 국가인권위원회가 나서서 전국의 전·의경 134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였다. 절반 가까운 45.2%가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육체적 가혹행위를 당한다고 답했다. 169명(12.6%)이 구타를 당한 경험이 있다고 했고, 이 중 21.9%는 "거의 매일 맞는다"고 했다.

이를 계기로 인권위는 경찰청에 전·의경의 인권을 보호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라고 권고했고, 경찰청은 이를 받아들인다고 밝혔다. 그런데 6년 만에 또 같은 부대에서 집단 탈영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터진 것이다.

전·의경 가혹행위가 근절되지 않는 가장 큰 원인은 관리방식에 있다. 경찰 관리자들은 '내가 편하려면 아랫사람을 더 굴려야 한다'는 생각에 전·의경 고참들에게 전권(全權)을 준다. 자연스럽게 '신(神)'처럼 군림하는 '열외 고참', 세탁과 구두닦이를 담당하는 '평짱', 신병들을 관리하는 '챙' 따위의 비공식 직책이 생겼다. 일종의 전·의경 '카스트'다. 이경·일경·상경·수경 같은 원래 계급은 의미가 없어진 지 오래다.

사고가 날 때마다 경찰이 내놓은 '해결 방안'도 임시변통이나 꼼수에 그쳤다. "구타사고 발생 시 대원들이 디지털카메라나 휴대폰으로 찍어 인터넷에 올리고 언론이 이를 보도해 문제가 커지니 내무실에서 디카·휴대폰 사용을 원천 금지하라"는 식이다. 해마다 사건이 끊이지 않았는데도 전·의경 담당 경찰 간부 대상 교육은 1년에 한 번 얼굴 보는 걸로 때웠다.

조현오 경찰청장은 이번에 부대 해체라는 강수(强手)를 들고 나왔다. "전경들이 하던 업무는 해당 지방청 경찰들에 시키겠다"고 했다. 그 바람에 28년 전통의 307전경대는 "직업 경찰이 해도 될 일을 대신했던 부대"라는 불명예 속에 사라지게 됐다.

조 청장은 일선 경찰서 경비과장부터 경찰청 경비국장까지 두루 지낸 '경비통'이다. 누구 못지않은 전·의경 전문가인 조 청장이 이번에 반드시 근본적인 해결책을 내놓아야 한다. 307전경대 해체로 끝낼 생각은 말기 바란다. 숱한 가혹행위를 참고 견딘 수많은 예비역 전·의경들, 지금도 복무 중인 현역 전·의경과 그 부모들이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