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수환 추기경

“천주님께서 잠시 맡겨 두신 눈을 너무 혹사해 죄스럽습니다.”

고(故) 김수환 추기경은 선종을 하기 몇년 전 안과 검사를 받고 나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선종 후 고인의 안구적출 수술을 집도했던 주천기 카톨릭대 교수(서울성모병원 안(眼)센터장)가 전한 내용이다.

‘세상을 보여줄게’라는 책을 출간할 예정인 주 교수는 28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추기경의 생전 소탈했던 모습과 선종 후 있었던 안구기증을 둘러싼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주교수에 따르면 김 추기경의 눈을 진찰한 뒤 “눈을 너무 혹사하셨습니다. 소중하신 분이니 건강에 더 조심하셔야죠”라고 말하자, 추기경은 “죄스럽습니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그에 따르면 김 추기경은 병원에 올 때 다른 환자들과 똑같이 예약하고, 차례를 기다렸다. 모자를 눌러쓰고 순서를 기다리다가 다른 환자들이 “추기경님과 닮았다”고 말하면 본인이 아닌 척 대화를 나눌 정도로 유머가 많았다고 주 교수는 전했다.

주 교수는 “김 추기경의 선종이 임박했을 때 가톨릭계 내부에서 안구 기증에 대해 찬반이 나뉘었다”고 전했다. 김 추기경은 1990년 1월 5일 안구 기증 동의서에 서명했는데, 동의서를 찾지 못해 논란이 일었던 것. 결국 기증서에 서명하는 추기경의 사진이 발견되면서 논란이 진화됐다.

안구 적출수술 당시에 대해 주 교수는 “안구 적출 과정에선 출혈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은데 추기경님의 안구는 전혀 출혈 없이 깨끗한 상태로 적출됐다”고 이 신문에 말했다. 그는 “미리 준비한 의안을 넣고 나서 경건한 마음으로 추기경님의 눈을 다시 감겨드렸다”고 회고했다.

안구적출을 끝낸 김 추기경의 시신을 서울 명동성당에 안치한 첫날 주 교수는 가톨릭 교구에서 연락을 받았다. 안구가 움푹 들어가 생전 모습과 차이가 있으니 보완해 줄 수 없겠느냐는 요청이었다. 주 교수는 보형물을 의안 아래 넣을까 고려했지만 포기했다.

보형물을 넣었다가 눈꺼풀이 조금이라도 벌어진다면 큰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주 교수는 “만일 추모객이 추기경님이 눈을 뜨신 것으로 오해해 ‘추기경님이 부활했다’고 소문이라도 낸다면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주 교수는 서울성모병원 안센터의 로비에 걸린 ‘눈은 마음의 등불’이라는 김 추기경의 휘호에 얽힌 이야기를 전했다. 1990년경 당시 안과 과장이던 김재호 교수가 방배성당 건립 바자회에 내놓을 목적으로 휘호를 부탁하자 김 추기경은 ‘붓글씨를 써본 적 없다’며 거절하다 결국 한 장을 썼다.

이 휘호는 사겠다는 사람이 없어 김 교수가 구입했다. 주 교수는 김 추기경 안구 적출 이후 이 휘호를 기억했고, 김 교수로부터 휘호를 받아 안센터 로비에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