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생활 2년을 마치고 친정팀 두산에 복귀한 이혜천은 국내에서 뛸 때 '혜천 도사'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삭발하고 던졌던 시절이다. 오직 야구에만 집중하고, 마운드에서 강인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이혜천과의 10대1 인터뷰를 위해 지난 14일 잠실구장을 찾았다. 훈련을 끝낸 이혜천은 기자를 보더니 마치 기다렸다는 듯 "(김)선우형도 10대1 인터뷰하셨다는데, 어떤 질문들인가요?"라며 흥미를 보였다. 이혜천은 두산 사무실내 인터뷰실로 들어가면서 "올해도 머리를 빡빡 밀까 생각중이에요"라고 했다. 이유를 물었더니 "V4 올인입니다. 무조건 올인입니다. 정신 바짝차리고 던져야죠"라고 답했다. 내심 설렐 수도 있는 2년만의 국내 복귀. 그러나 우승을 위해 '한 몸' 다받칠 것이라는 뜻이었다. 잠실=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
-일본에 처음갔을 때 재미있었거나 당황스러웠던 에피소드 있으면 얘기좀 해주라.(두산 임재철)
▶일본어가 안되는데도 하려고 하다보니 실수가 제법 있었어요. 연습시간을 물었는데 잘못 알아듣고 다른 시간에 나간 적도 있고 그래요. 다 그런 종류였어요. 2년차 때는 아예 모르면 말을 안했지요.
-일본서 생각대로 잘 안된 이유가 뭐니? 일본 진출하려는 후배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또 올해 기본적인 목표는.(두산 김선우, 롯데 홍성흔)
▶캠프 때부터 너무 급하게 페이스를 올리려다 무너졌어요. 대우도 많이 받았고 해서 부담도 있었고요. 마인드컨트롤이 안된 것이죠. 첫 해는 잘되니까 타자들을 가볍게 보기도 했어요. 보직 변경이 제일 힘들었던 것 같아요. 캠프때 감독은 선발시킨다고 했는데, 나중에 자기들끼리 웅성웅성하더니 갑자기 중간으로 바뀌면서 안좋게 되고, 그것에 불평불만하고 자포자기했어요. 일본에 진출하고 싶다면 새 출발한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비우고 가야 해요. 한국에서 했던대로 그대로 가면 힘들어요. 다시 배운다는 자세로 한다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올해는 무조건 올인이 목표입니다. 아프지 않는 이상 다 던지고 매경기 퀄리티스타트할 수 있도록 해야죠. 그리고 두산이 우승할 때가 됐어요.
-용인 우리집 옆동으로 이사했는데 타이밍이 그렇게 됐는지 몰라도 집값이 상당히 폭락했잖아. 어떤 기분이 드냐?(두산 김선우)
▶(크게 웃은 후)글쎄 저같은 경우 뭐 큰 상관없어요. 선우형도 살러 들어간거지 돈 벌려고 들어간거는 아니잖아요. 본전 생각만 하면 될 것 같아요. 원래 서울 송파에 살았는데 아기도 있고 하니 공기가 좋은 곳에서 살고 싶었어요. 돈 있으면 자꾸 쓰니까 주택 같은데 박아놓는 것이 나을 것 같아서 아파트도 장만하고 그런겁니다.
-일본 진출전 국내에서 가장 까다롭다고 느꼈던 타자는 누구였나요.(넥센 강정호)
▶이대호(롯데)처럼 힘있는 거포가 겁났어. 김태균도 일본 가기 전 따지고 보면 홈런타자인데, 오른손잡이 거포가 힘들었지. 왼손으로는 (김)재현이형(은퇴)이 까다로웠지.
-한국 야구도 이제 많이 달라졌어요. 이 선수는 정말 쉽지 않겠구나하는 타자가 누가 있을까요.(넥센 강정호)
▶역시 이대호가 아니겠나. 이대호에게 집중될 것 같아. 대호와는 많이 친한데 야구장 나가서는 승부의 세계니까 봐주고 그런거는 없지. 대호를 타깃으로 많은 고민을 해야할 것 같아.
-저는 신인인데요. 감히 질문드립니다. 선배님처럼 톱클래스 선수들이 생각하기에 빠른 공과 제구력 중에서 하나만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어떤 것을 택하시겠나요.(넥센 신인 윤지웅)
▶(단호한 목소리로)제구력!
-팬들은 모르시겠지만 형은 저와 비슷해요. 덤벙대고 산만하고 말많으시고 능글능글해요. 저는 팬들이 새가슴이라고 하시는데 어떻게 하면 형처럼 포커페이스를 유지할수 있나요.(롯데 송승준)
▶나는 포커페이스가 아니야. 표정관리 때문에 힘들 때가 많아. 정말 위기때는 묵묵해지지. 그러다 보니 칠테면 치라는 식으로, 설마 이공을 치겠나하는 생각으로 던지는거지. 그 다음 타자한테도 그렇고. 배짱이라고 해야 하나?
-형은 고교시절 공스피드가 그렇게 좋지 않았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150㎞를 펑펑 찍으시잖아요. 비결좀 가르쳐주세요.(롯데 김사율)
▶(한참 생각한 뒤)비결은 특별히 없었어. 선천적이라기보다 나도 모르게 볼스피드가 올라간거 같아. 98년 입단했을 때 2군 생활을 했는데 그때 독기를 품으면서 야구에 눈뜬거 같아. 1군선수처럼 품고 했는데 한 두달 사이에 갑자기 공이 빨라졌어. 잠자는 것까지 포기하면서 니가 죽나 내가 죽나하는 식으로 던졌지.
-너 고등학교때는 운동 참 못했는데. 친구들은 네가 이렇게까지 잘 나갈지 아무도 몰랐거든. 솔직히 너도 네 자신이 대견하고 신기하지 않니.(LG 박용택·동기)
▶천운이라고 봐야지. 너도 나와 시합해봤잖아. 청룡기때 휘문이 우승후보였는데 결승에서 내가 정재훈(두산) 상대로 끝내기 홈런쳐서 우리가 이겼었지. 내 방망이 실력은 부산상고 내에서만 알아줬을걸 아마?(크게 웃음). 그때 난 133㎞ 밖에 안나왔고 이름도 없던 투수였지.(박용택과 정재훈은 휘문고 출신)
-일본과 한국 타자의 가장 큰 차이점은 뭐니. 또 일본에서 배운 것중 가장 인상적인게 있다면 말해주라.(LG 이병규)
▶딱 한가지만 꼽는다면 일본 타자들은 투수의 공을 잘 빼앗아요. 공을 많이 던지게 한다는 것이죠. 모든 공을 커트해낼줄 알아요. 안타를 치러 타석에 들어오는 타자는 없어요. 투구수를 빼앗아 놓고 3구부터 치고 나와요. 저는 중간으로 뛰었는데 투구수 15개가 맥심인데도 그것까지 다 빼앗으려 달라붙어요. 우리로 치면 이용규같은 타자가 많아요.
-한국 야구가 일본 야구보다 어떤 부분에서 더 낫다고 생각하시나요.(삼성 윤성환)
▶우리 타자들은 파워배팅이고, 피처들같은 경우 예전에는 스피드가 없고 그랬는데 그쪽 방면에서는 이제 우리 투수들이 더 좋은 것 같아. 김광현 류현진 양현종같은 투수는 일본에도 없어. 일본은 제구력 하나는 알아주지만, 스피드와 제구력을 모두 갖춘 투수가 없다는거지.
-주니치전에서 모리노와 빈볼시비로 험악한 분위기가 연출됐었는데요. 그때 상황좀 말해주세요.(삼성 박석민)
▶(쑥스러운 듯 미소지은 뒤)그때 불펜에서 몸을 6번이나 풀었어. 난 이기는 상황서 나가는 승리조였어. 그런데 나가야 되는 때가 안오고 계속 애매한 상황이 이어진거야. 결국 타순이 한 바퀴 돌고 모리노를 만났는데, 초구에 생각없이 던진게 몸을 맞힌거야. 모리노가 일본말로 뭐라고 했는데 욕을 하는 느낌이었어. 그래서 나도 맞받아치고 붙은거지. 그런데 그것으로 끝이야. 다음에 부딪힐 일이 없었어. 걔네들은 뒤끝은 없는 것 같더라. 화해하고 뭐 그런거는 필요하지도 않았어.
-형은 두산과 야쿠르트에서 선발과 중간을 오가셨잖아요. 저도 팀내에서 그런 역할인데, 선발일 때와 중간일 때 중점을 두는 부분이 무엇인지 얘기해 주세요.(SK 이승호)
▶선발은 별로 안했는데 난.(웃음) 중간으로 많이 나갔는데 땅볼로 유도하려는 마음을 갖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볼카운트가 2-0으로 유리해도 삼진 잡으려고 하면 안돼. 어떻게든 맞혀서 땅볼로 처리해야 해.
-한국에서도 노히트노런하는 투수에게 안타맞지 말라고 언급하는게 금기사항인데, 일본에서는 특이한 금기사항이 뭐 없을까.(SK 이호준)
▶특이한 것은 없어요. 우리랑 같아요. 상대투수가 완봉을 하고 있으면 이를 악물고 완봉을 깨려고 하죠. 일본의 경우 눈에 보이게 깨려고 하는게 개인적인 야구가 강해요. 우리나라는 단체야구가 강하잖아요.
-투구폼이 상당히 역동적이신데요.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건지 아니면 타자들에게 위협을 주기 위해 의식적으로 그렇게 던지는지요.(KIA 양현종)
▶지금은 그런 폼이 아닌데. 정교하고 조용한 폼이라고 할까. 일본 가기전에는 팔이 내려왔는데 타자를 위협하고 겁을 주고 하려는 마음은 있었지. 메이저리그 랜디 존슨처럼 말이야. 일부러 타자 몸을 보고 던져보기도 했지. 타자가 피하면 좋은거고, 안피하면 데드볼이 되는거고. 이제 다시 지저분하게 폼을 바꿔볼까?(웃음) 공을 놓는 포인트를 이제는 아니까 제구가 흔들릴 일은 없겠지. 한 두개정도 몸쪽으로 빠지게 던지면 타자들이 (내가 무서운지)알겠지. 대호도 그걸 알아야될 걸?(크게 웃음)
-지금까지 운동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인가요.(KIA 곽정철)
▶예전에 내가 9회초까지 완봉을 하고 있었는데 스코어는 0-0이었어. 그런데 9회말 손시헌이 끝내기 안타쳐서 내가 완봉승을 거뒀지. 연장 들어갔다면 내가 바뀌는 상황이었어. 제일 안좋았던거는 박정태 선배의 연속안타를 저지했을 때야. 우리나라 선수가 아시아기록 깨주기를 바랬는데, 하필 나랑 붙은거야. 박정태 선배가 직선타를 치셨는데 내 글러브에 빨려들어갔어.
-일본어는 어느정도 수준이냐. 우리 딸이 이제 일본어 배우려 하는데 둘이 대화가 되겠냐.(롯데 홍성흔)
▶'너 밥먹었냐', '어디가냐' 정도는 할 수 있어요. 시장가서도 가격 깎을 줄도 알고요. 길게 얘기하는 것은 힘들지만. 일본서는 일본어 빨리 배우려고 일부러 통역을 안데리고 다닌 적이 많아요. 상황을 캐치해서 많이 배웠어요.
-네가 일본에 간 후 한국 타자들, 특히 내가 많이 좋아졌는데, 올해 어떻게 준비할거니.(롯데 홍성흔)
▶형하고는 한 팀에 있다가 이제 처음으로 상대할텐데 어색하겠지요. 몸쪽공 많이 던질거니까 형 무릎이 피곤할거에요. 승부는 냉정한거니까요.(웃음) 그런데 형 상대할 때 특별히 준비할게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다른 타자와 똑같이 신중하게 대할 겁니다. 형 한 명 보낸다고 끝난게 아니고, 다음 타자도 있는 것이니까요.
-성흔씨가 포수볼 때 혜천씨가 제구가 잘 안돼서 원바운드로 허벅지를 많이 맞았는데, 지금은 제구력이 얼마나 좋아졌나요.(홍성흔 부인 김정임씨)
▶이제는 원바운드 때리는 것도 원해서 때릴 정도로 제구가 좋아졌어요. 예전에는 그게 잘 안돼서 성흔이형이 많이 맞았는데, 허벅지보다는 가슴에 많이 갔어요. 이제는 그 정도 제구력은 충분히 갖췄습다. 그때 성흔이형이 고생이 많았지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