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 또 다이옥신 소동이 벌어졌다. 독일의 축산 사료에서 다이옥신이 검출된 후 가축농장 4700곳이 일시 폐쇄됐다. 한국은 독일산 돼지고기·닭고기의 수입을 금지시켰다. 독일은 일부 사육돼지에 대한 살처분에 나섰다. 이 소식을 접하면서 ‘빅토르 유셴코’가 생각났다. 유셴코라는 이름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하지만 2004년 12월 우크라이나에서 야당 대선(大選) 후보가 “정보국에 의해 독살될 뻔했다”고 주장했던 일은 어렴풋하게라도 기억하는 독자들이 있을 것이다. 그가 유셴코다. 유셴코는 대통령에 당선돼 2009년까지 5년 임기를 마쳤다. 그는 원래 훤칠한 미남형이다. 그랬는데 선거운동을 치르면서 얼굴에 우툴두툴한 종기가 나고 낯빛도 거무튀튀하게 변했다. 유셴코의 원래 얼굴과 변한 얼굴을 대조시킨 사진이 당시 세계 언론을 탔다. 유셴코는 그 해 9월 우크라이나 정보국장과 저녁을 먹었다. 그 며칠 후부터 얼굴이 상하기 시작했다. 11월 얼굴 사진을 본 영국 의사가 “다이옥신 중독 같다”고 했고, 12월 정밀검진을 한 오스트리아 병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했다. 유셴코는 대통령 당선 후 스위스 병원에서 정기적인 검진을 받았다. 스위스 의료진은 2009년 8월 3년 넘게 추적해온 유셴코의 몸속 다이옥신 농도를 영국 의학전문지 ‘랜싯’에 발표했다. 대통령 진료 자료가 의학저널에 실린 것이다. 랜싯 논문을 얻어 읽고 나서 유셴코의 음식에 들어 있던 다이옥신의 양이 얼마일지 계산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위스 의료진의 첫 검진 때 유셴코의 몸속 다이옥신 농도는 ‘지방 1g당 10만피코g(피코g=1조분의 1g)’이었다. 일반인 평균농도(10피코g)의 1만배 수준이었다. 다이옥신은 거의 지방 속으로 녹아든다. 사람 체중의 15% 정도가 지방성분이다. 유셴코의 몸무게를 80㎏으로 잡았을 때 몸속 다이옥신 양은 ‘10만피코g(지방 속 다이옥신 농도)×1만2000g(체지방량)=1.2㎎'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그런데 사람 입으로 들어간 다이옥신 가운데 위나 장에서 흡수되는 건 절반 정도다. 누군가 유셴코의 음식에 몰래 집어넣은 다이옥신은 2.4㎎ 정도였을 것이다. 다이옥신은 지연(遲延) 독성이다. 서서히 독성이 나타난다. 음식에 몰래 집어넣어 1~2달 후 죽게 할 수 있다면 완전범죄가 될 수도 있다.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다이옥신이 생각만큼 독성이 강한 물질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우리 식약청은 다이옥신의 하루 허용섭취량을 체중 1㎏당 4피코g으로 정해놓고 있다. 80㎏ 체중이면 하루 320피코g이다. 그런데 유셴코 입에 들어간 2.4㎎의 다이옥신은 매일 320피코g씩 750만일 동안 계속 먹어야 도달하는 양이다. 유셴코는 섭취허용치의 2만547년분을 한꺼번에 먹고도 얼굴이 곰보처럼 되긴 했지만 5년 임기를 무사히 마쳤다. 다이옥신은 소각로에서 나오는 극독성 물질로 알려져 있다. 이런 환경 독성물질이 사람에게 실제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는 정확하게 가려내기 힘들다. 동물들한테 고(高)농도로 먹인 후 그 결과를 갖고 추정할 뿐이다. 유셴코 경우는 사람 몸으로 독성실험을 한 극히 드문 케이스다. 아주 신뢰할 만한 실험이라고 할 수가 있다. 그 결과는 다이옥신의 독성이 별것 아니라는 것이다. 유럽의 축산물 다이옥신 오염 사건은 무시해도 좋은 소동(騷動)으로 보면 된다.
입력 2011.01.14.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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