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오후 7시, 흰 눈이 펑펑 쏟아지던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국회 본관 정면에서 180m 떨어진 지점에 망루(8m)가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곧 스피커에서 안내멘트가 흘러나왔다. "이제 출격합니다!" 모여 있던 100여명의 시민이 다 같이 "삼, 이, 일!"을 외치자, 망루에서 빛줄기가 뿜어져 나갔다.

긴박한 배경음악은 만화 '로보트 태권브이' 주제곡. 국회 건물은 도화지가 됐다. 망루 속 고해상도 빔 프로젝터가 쏘아낸 영상은 국회를 비밀기지로 삼은 로보트 태권브이가 출동하는 모습이었다. 예전부터 떠돌던 우스갯소리가 현실이 된 순간이다. '국가가 혼란스러울 때 국회 돔이 열리고 로보트 태권브이가 출동한다'는 얘기 말이다.

이번 일을 벌린 주동자는 신철(53). 영화제작사 신씨네 대표이자 ㈜로보트 태권브이 대표다. 서울대 미학과 2학년이던 1978년 영화판에 뛰어든 이후 한국 영화계에서 늘 '최초'라는 수식어를 몰고 다닌 사람. 충무로에 기업 자본을 끌어오고 PPL 광고를 넣은 것도, CG 영상 기술, 금요일 개봉을 도입한 것도 그가 최초였다. 1990년대에 로맨틱 코미디('결혼이야기' 등) 열풍을 몰고 왔고, 2000년에는 예술과 외설의 경계에 대한 사회적 물음('거짓말')을 던졌으며, 2001년에는 인터넷 소설을 영화('엽기적인 그녀')로 만들어 대박을 터뜨린 제작자다. 간혹 실패('구미호')도 맛봤지만, 그는 성공한 제작자였다.

그런 그가 지난 10년간 뚜렷한 흥행작을 내놓지 않고 있다. 초반 4년은 '이소룡 부활 프로젝트'로 미국에서 3D 기법을 배우다가 제작을 포기했고, 2007년부터는 로보트 태권브이 실사판 영화제작을 준비 중이다. 주특기인 로맨틱 코미디는 그만두고, 왜 그는 로보트 태권브이와 씨름하는 걸까.

12일 오전 경기 일산 신 대표 사무실. 벽면에는 '가슴으로 상상하라', '상상하라! 대한민국' 같은 문구가 잔뜩 쓰여 있었다. 신씨는 "국회 행사에 쓰인 '희망강국', '영화강국'이란 슬로건을 떠올리다 쓴 것"이라고 했다.

신철 대표가 로보트 태권브이 피규어(모형)들을 꺼내 왔다.“ 시중에 내놓은 로보트 태권브이 피규어 한정판은 1만개가 팔렸다”고 했다. 신 대표가 가장 조심히 다룬 것은 ‘초합금 피규어’(오른쪽에서 세 번째)였다.

"새로운 실험을 해보고 싶어 4개월 전부터 준비했어요. 사용 허가에서부터 신경 쓸 게 많더라고요. 슬로건을 정할 때에도 여·야 특정 정치인이 자주 쓰는 문구는 피해야 했어요. 정장 차림만 오가는 곳에 요란한 복장의 젊은 예술가들이 오가니까 경비 아저씨들은 참 좋아하셨죠."

신씨는 "이번 이벤트는 '국회가 태권브이의 비밀기지'라는 떠도는 소문으로 출발했지만, '태권'의 전통과 '로봇'이란 미래지향적 기술이 융합된 캐릭터로 영화 발전을 보여준다는 명분이 있었다"고 했다. 미디어아티스트 룸펜스와 DJ 소울스케이프가 나섰고, 민주당 최문순 의원, 한나라당 이군현 의원, 권오을 국회 사무총장이 장소 섭외를 도왔다.

그런데 행삿날 눈이 내렸다. '3D 레이저 빔'은 펑펑 내린 '눈 장막'을 투과하지 못했고, 영상효과가 리허설 때보다 희미했다. 신씨가 웃었다. "예전 '구미호'(1994) 시사회 땐 어설픈 CG 때문에 부끄러워 도망가고 싶었죠. 이제는 나이가 들었는지, 괜찮았어요. 준비는 완벽했고, 하늘에 화를 낼 수는 없잖아요."

신씨는 "그동안 뭐 했냐"는 물음에 "'한국 영화산업의 제2기'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그의 요즘 관심사는 3D 애니메이션과 '월트 디즈니'같은 캐릭터 산업이다. "1980년대 말부터 애플 매킨토시를 쓸 정도로 컴퓨터에 관심이 많고, 만화가였던 아버지 영향도 있어서 애니메이션, CG, 3D 기술을 제대로 해보고 싶었어요. '구미호'는 '여우가 사람이 되는 과정'도 제대로 못 보여줬지만, 이 경험을 바탕으로 '은행나무침대'(1996)가 크게 성공했죠."

10일 국회에서 진행된 미디어 아트 리허설 장면. 국회의사당 돔이 열리고 태권브이가 모습을 드러낸 순간이다.

신씨는 2001년 '이소룡'을 디지털 캐릭터로 부활시키려고 했다. '픽사'처럼 화려한 3D애니메이션을 선보이겠다는 포부였지만 4년 만에 무산됐다. 그는 "'이소룡은 총은 쓰지 않는다', '무술 스타일을 벗어나선 안 된다'는 식의 저작권 제약이 참 많았다"고 했다.

이후 신씨는 아예 로보트 태권브이의 독점사업권, 저작권을 사들였다. "태권브이는 1976년 만들어진 이래 지금까지 살아남았어요. 어릴 적 TV가 없어서 로보트 태권브이를 보지 못해 사무쳤다는 옛 세대부터 요즘 애들까지 친근함을 느끼는 매력적인 캐릭터예요."

그는 "이걸 '원소스 멀티유즈(하나의 컨텐츠로 여러 상품을 만들어 내는 것)' 산업으로 키워보려고 하는 데 성공한 전례가 없어서 녹록지 않다"고 했다. 2010년 개봉 예정이던 '태권브이 실사판 영화'는 시나리오 작업이 지연됐다. 인천 청라지구 '로봇랜드'에 세울 태권브이 타워는 2014년 완공 계획이었지만, 부동산 경기 침체로 고전 중이다.

"이젠 주변 사람들 설득하는 것에도 도가 트는 것 같아요. 어떤 사람은 '갑자기 웬 로보트 태권브이냐. 변태 아니냐'고도 해요. 저는 그럼 '내가 좀 그런가 보다' 하지요."

신씨는 "요즘 초등학생 아들은 닌텐도 게임에만 푹 빠져 있다"고 했다. "아들은 태권브이가 맘에 들 때까지는 좀 더 기다려봐야 알 것 같대요. 앞으로 태권브이로 승부를 꼭 볼 겁니다. 떠오르는 다른 아이디어들은 이후에 차근차근 또 실험해 봐야죠." 로보트 태권브이 실사판 영화는 내년 개봉이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