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0일 오후 경기도 부천, 학원 차에서 내리던 한모(9)양이 승합차 뒷바퀴에 깔려 사망했다. 이 학원 차는 어린이 통학버스로 등록돼 있지 않았고, 아이들이 차에 타고 내리는 것을 돕는 인솔자도 없었다. 한양이 숨진 지 한 달이 지났지만 부모는 어떠한 보상도 받지 못했다. 학원 버스 운전자 과실로 결론이 났지만 학원 버스가 특약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아 보험사로부터 보상을 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양의 고모부는 "학원과 운전자 모두 어떠한 대책도 내놓지 않았다"며 "변호사를 선임해 민사소송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학원 버스 천국, 대한민국. 대형 학원은 물론 소규모 보습학원에서도 '셔틀'을 운행한다. 15인승부터 25, 45인승 등 크기도 다양하다. 어린이집, 유치원, 학원 등 13세 미만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시설에서 운행 중인 어린이 통학버스는 약 10만대로 추정된다. 그러나 경찰청에 등록된 어린이 통학버스는 이 중 단 5%인 5000여대. 현행 도로교통법에는 어린이 통학버스의 특별보호규정이 마련돼 있지만, 통학버스를 운행하는 학원이 자기 차량을 '어린이 통학버스'라고 신고할 의무는 없다. 실효성 없는 규정인 셈이다.
■어린이 통학버스 대부분은 미등록 운행 중
도로교통법 제51조(어린이 통학버스의 특별보호)에 따르면 어린이 통학버스로 인정받으려면 관할경찰서에 신고하고 신고필증을 받아야 한다. 충족 요건은 까다롭다. 차량의 색상을 황색으로 칠하고, 내부엔 어린이용 좌석과 안전띠를 설치하고, 외부엔 어린이 보호표지를 붙여야 한다. 차량의 앞뒤에 각각 2개의 적색표시등과 황색표시등도 설치해야 한다. 교통사고에 대비, 피해를 전액 보상받을 수 있는 유상운송특약 보험에도 가입해야 한다. 문제는 비용. 차량을 개·보수하는 데 200만~300만원이 들고, 보험료는 일반보험에 비해 2~3배 비싸다. 경기도 성남에서 어린이집과 초등 보습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박모(28)씨는 "어린이 보호차량으로 등록하려면 목돈이 많이 들어, 신고를 한 학원장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처럼 미등록 어린이 통학버스가 버젓이 운행을 하고 있지만 학부모들은 사정을 잘 모르고 있다. 초등생 두 명을 둔 최모(38)씨는 "아이들 학원 버스에 '어린이 보호 차량'이라고 쓰여 있어서 안전에 대해선 걱정하지 않았다"며 "신고제도가 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안전성 담보되지 않은 어린이 통학버스
실제로 운행되는 학원 차량의 절반가량이 일명, '지입' 차량. 개인 차주가 학원과 계약을 맺고 아이들을 실어 나른다. 학원 이름을 달고 달리지만 실제 버스를 소유한 사람도, 운행에 책임을 지는 사람도 개인업자인 셈이다. 경기도 안양의 보습학원을 운영 중인 정모(44)씨는 "지입차와 계약하면 버스를 구입할 필요도, 신경 쓰며 관리비를 들일 필요도 없다"며 "영세한 학원 입장에선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지입차량 차주들은 학원으로부터 한 달에 160만~200만원을 받고, 이 돈으로 차량수리비, 연료비, 세금, 보험료 등을 낸다. 경기도 안양에서 14년째 학원 버스를 운전하고 있는 정모(49)씨는 "15인승 버스를 운전하며 학원으로부터 160만원을 받는다"며 "기름값과 보험료 등을 내고 나면 실제로 얻는 수입은 100만원이 채 되지 않아, 아침 7시부터 새벽 1시까지 중·고생 아침 통학, 어린이집, 보습학원 등에서 버스 운행을 한다"고 했다. 정씨는 또 "벌이가 적어 주말엔 교회와 결혼식장에서도 운행해 늘 피곤한 상태"라며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너도나도 학원 버스 운행에 뛰어들고, 기름값까지 올라 10년 전보다 사정이 좋지 않다"고 했다. 국회입법조사처가 한나라당 이한성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약 74.9%의 자가용 버스 차주가 2곳 이상의 기관에서 운행을 하고 있다. 운전자 피로에 따른 사고 위험이 커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차량에 탄 아이에게 사고가 났을 경우 보상해주는 '유상운송특약'에 가입한 통학버스 비율은 약 4.3%. 사망한 한양처럼 누구로부터도 보상받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통학버스 운전자 대부분이 통학버스 안전교육을 거의 받지 않는 데다 신원이 검증되지 않은 경우도 많다.
■어린이 통학버스 신고 의무화해야
전문가들은 어린이 통학버스 신고를 의무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교통안전공단 박선영 박사는 "어린이 보호 차량의 원래 취지를 되살리기 위해 학원이 운행 중인 통학버스에 대해 신고 의무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했다. 한나라당 이한성 의원은 지난 8월 어린이 통학버스 신고를 의무화하고 비용을 국가에서 지원하는 도로교통법 개정 법률안을 발의해 현재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회부돼 있다.
서울시 송파구는 이미 지난 2009년부터 어린이 통학버스 인증제를 시행 중이다. 어린이 보호장치는 물론 성범죄 등에 대한 운전자 신원조회 및 정밀운전 적성검사, 교통사고 피해 전액 배상이 가능한 보험 또는 공제조합 가입 등 조건을 충족시켜야 비로소 인증을 받을 수 있다. 또 운전자는 의무적으로 6시간 이상의 안전보호교육과 매년 4시간의 보수교육을 받아야 한다. 2010년 상반기까지 69개 시설 70대의 어린이 통학버스가 인증을 받아 차량에 인증 스티커를 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