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상인 서울대 교수·사회학

2010년도 서울특별시 건축상 공공건축 부문 최우수상은 안중근 의사 기념관이 차지했다. 국민의 세금과 성금으로 남산공원 옆에 세워진 이 건물은 그곳이 일제 식민 지배의 상징인 조선신궁(朝鮮神宮) 터라는 점만으로도 의미가 깊다. 그러기에 작년 10월 말에 열린 준공 및 개관식은 각계 인사 600여 명이 참가하는 등 큰 성황을 이루었다. 그 가운데는 기념관 설계공모에 당선되어 4년여 세월 동안 이 작업에 헌신했던 젊은 건축가 부부도 있었다.

하지만 그날 정작 이들은 대다수 정·관계 참석자들에게 밀려 앉을 자리조차 얻지 못한 채 발길을 돌렸다고 한다. 실은 이런 사태가 예외라기보다 관행이라는 것이 최근 건축계의 분통이다. 생각해보면 각종 행사장에서 전문가들이 정치인이나 관료, 혹은 연예인들의 뒷전으로 밀려나는 일은 건축 분야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 전반적으로 만연한 현상일지 모른다.

우리 주변에는 아직까지도 정치 만능과 행정편의를 특징으로 하는 권위주의적 형식문화의 잔재가 적잖이 남아 있다. 현재 우리들의 솔직한 자화상 가운데 하나는 수십 년 전 시골 '국민학교' 운동회를 연상케 하는 사열형(査閱型) 사회 내지 집체형(集體型) 문화가 아닐까 싶다. 교장·군수·면장·장학사·기성회장·동창회장 등이 차례로 단상에 올라가 위세를 부리는 나머지 막상 그날의 당사자이자 주인공인 학생들의 노력과 수고는 외면되기 쉬웠던 그런 형국 말이다.

가령 국회 같은 곳에서 자주 열리는 공청회 행사에 나가봐도 그렇다. 원래 취지는 외부 전문가들을 불러 법안이나 정책에 관련된 자문을 하는 것일 텐데, 실제로는 목적이 도치(倒置)되는 경우가 잦다. 초청자인 국회의원들은 회의가 시작할 무렵에 사진이나 찍고 의례적인 인사말만 던질 뿐, 바쁜 국사(國事)를 핑계로 자리를 금방 비우기 일쑤다. 심지어 그처럼 무례한 행태를 통해 자신의 파워를 과시하려는 심보도 엿보인다. 그러다 보니 최고 전문가들이 모인 자리라고 해서 내실 있는 행사로 귀결되는 경우는 결코 많지 않다.

아마 오늘 하루만 해도 국가적 과제나 사회적 현안을 놓고 무수히 많은 학술대회가 경향(京鄕) 각지에서 열릴 것이다. 초청장이 수백 혹은 수천 장 뿌려졌을 것이고 고급 호텔을 행사장으로 사용할 가능성도 클 것이다. 회의장 로비 또한 축하 화환으로 그득할 법하다. 문제는 명색이 세미나임에도 불구하고 주최측의 신경은 주제발표나 토론 내용보다는 내외 귀빈을 챙기는 데 더 집중되어 있을지 모른다는 점이다. '공사다망(公私多忙)함에도 불구하고 자리를 빛내주기 위해' 찾아온 분들 말이다.

한국식 심포지엄의 주요 특징 가운데 하나는 유난히 식전(式前) 연설 순서가 많고 길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개회사, 환영사, 축사, 격려사 등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행여 식사라도 함께하는 경우, 건배사 역시 장난이 아니다. 언젠가 어떤 공기업이 주관한 세미나에 참석한 적이 있었는데, 사장의 축사 다음 차례는 노조위원장의 환영사였다. 그런데 본격적인 학술대회가 시작되기 직전, 이들은 썰물처럼 빠져나가기 일쑤다. 회의 내용을 누구보다 가장 경청해야 할 이들이 바로 그들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각종 행사 때마다 넘쳐나는 정치적 허세와 관료적 과잉은 변명의 여지 없는 후진국 징표다. 그런 행사의 권위와 성공이란 결코 고만고만한 유력자(有力者)들의 환영과 축하 혹은 격려 말씀에 의해 좌우되는 것도 아니고 또 그래서도 안 되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는 행사의 진행을 방해하거나 원래 목적을 흐릴 수 있고 궁극적으로는 사회적 다양성과 영역별 자율성, 그리고 자발적 창의성을 해칠 위험까지 있다.

이런 점에서 새해 벽두에 대한불교 조계종이 연등 법회나 봉축 법요식 같은 불교 행사에 정치인의 참석을 원천적으로 배제한다는 종무행정 지침을 내린 것은 세간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다. 다만 불교계가 기왕 종교집회 고유의 순수성을 지키고자 했다면 '특히 정부 및 한나라당 관계자의 참석은 단호히 거부한다'는 말은 보태지 않는 편이 더 종교적일 뻔했다. 2011년이 우리나라 행사문화의 일대 전기(轉機)가 되기를 바라는 발원 때문에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