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넘지 않으면 내일은 두 배로 넘어야 한다.'

이 문구를 가훈으로 여기며 산다. 생업과 연루하니 일견 명문(名文)이다. 줄넘기 만드는 김수열(46)씨다.

초등생 자녀 둔 엄마치고 '김수열 줄넘기' 모르는 사람, 드물다. 문방구에 가서 '줄넘기 주세요' 하면 주인장 열의 아홉은 김수열 줄넘기를 내민다. 줄넘기 시장의 70%를 김수열 줄넘기가 점유했다는 게 업계 얘기다. 최근엔 TV 광고도 한다. 줄넘기 CF라니, 성장일로의 방증이다.

줄넘기의 달인이기도 하다. 1997년 세계줄넘기선수권대회 3중뛰기 우승자이고, 줄넘기 오래 뛰기 한국기록 보유자이며, 음악 줄넘기의 대부다. 전국 1만5000명 음악 줄넘기 강사들이 김수열 제자이고, 전국 초등교사 중 줄넘기 좀 한다 하는 사람은 김수열에게 연수를 받았다. 한라산을 줄넘기로 등반했고, 줄넘기하며 마라톤 42.195㎞를 완주했으며, 부산~서울을 줄넘기 뛰며 종단했다. 줄넘기가 뭐기에?

김수열을 만났다. 새해 첫 질문치고는 옹색하지만, 그 '비싼' 줄넘기 가격부터 물었다. 줄넘기 하나에 1만원이라니? 김수열은 줄넘기 명품론으로 맞섰다.

줄넘기 외줄 인생을 즐겁게 달려가고 있는 김수열씨. 그는 일 때문에 바빠 운동할 시간이 없으면 눈을 감은 채 줄넘기하는 상상을 한다고 했다.“ 마인드 컨트롤도 운동 효과가 있습니다.”

줄넘기에도 '명품'이 있다

―줄넘기 한 개에 500원인 줄 아는 사람도 있다. 만원은 너무 비싼 거 아닌가.

"2009년 출시한 '명품 줄넘기' 값이 1만원이라는 거다. 김수열 줄넘기의 종류는 모두 10종이다. 5000원짜리부터 있다."

―5000원도 싸진 않다.

"줄넘기해보셨나? 줄넘기에도 퀄리티라는 게 있다. 사뿐사뿐 줄이 잘 넘어가면서 손목과 무릎관절에 무리를 주지 않는 명품이 있다. 줄에 손잡이 달렸다고 다 줄넘기가 아니다."

―좋은 줄넘기란 어떤 것인가.

"예전엔 손잡이는 무겁고 줄은 가벼워야 좋다고 생각했다. 아니다. 좋은 줄넘기는 줄이 가늘면서도 무거워야 하고, 손잡이는 길어야 한다. '쌩쌩이'라고 불리는 2중뛰기를 해보면 안다. 쌩쌩이가 바람 쌩쌩 불듯 넘어간다."

―히트상품인 '색동줄넘기'는 플라스틱 구슬들을 줄로 엮은, 꽤 무거운 줄넘기였다. 잘못 뛰어 줄에 맞기라도 하면 채찍처럼 아프더라.

"시각적인 효과 뛰어나고 땅에 부딪힐 때 경쾌한 소리가 나서 음악 줄넘기 열풍 불 때 큰 인기를 얻은 제품이다. 일상 운동을 할 땐 적당하지 않다. 일반 PVC 줄넘기로 해야 한다."

―1만원 하는 명품 줄넘기는 몸치인 사람도 단번에 씽씽 넘을 수 있다는 건가.

"그런 건 아니다.(웃음) 손잡이가 손에서 미끄러지지 않게 특수재질로 만들었다. 바둑판 문양이 예뻐서 한국디자인진흥원으로부터 굿디자인으로도 선정됐다."

―줄이 꼬이지 않아 좋긴 하더라.

"손잡이와 줄이 따로 놀게 제작한다. 줄이 길다고 조리개 대신 줄을 매듭 짓는 분들이 많은데 그러면 다시 꼬인다. 줄이 길면 묶지 말고 잘라라."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 '노다지'

―스포츠 종목이라고 할 수도 없는 줄넘기 하나로 '성공시대'를 연 셈이다. 비인기 종목이지만 우리만큼 줄넘기 많이 하는 나라도 없다더라. '블루오션'에 대한 안목이 있었나?

"내가 제일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게 줄넘기였을 뿐이다. 그걸 생업으로 연결시킨 게 비결이라면 비결이다."

단국대 체육학과를 나왔다. 하고많은 종목 중에 왜 폼 안 나는 줄넘기였나.

"줄넘기에서 1인자가 돼야겠다는 꿈이 있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이미 2중뛰기를 300개씩 하고 삼중뛰기를 40~50개씩 했으니까."

―올림픽 종목에 줄넘기가 없는 게 아쉬웠겠다.

"중1 때 신문 해외토픽에서 일본 사람이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 반까지 쉬지 않고 줄넘기를 뛰어 기네스북에 올랐다는 기사를 봤다. 그 기록을 깨고 싶다는 꿈이 아직 남아 있다."

―줄넘기의 시장성을 예측했나.

"대학 졸업하면 뭘 먹고살까 고민하다 아프리카 꿩을 사육하면 돈 번다기에 500마리 사서 키우다가 쫄딱 망했다. 키워만 놓으면 알을 매수해준다던 업자가 알만 가져가고 돈은 안 주더라. 사기를 당한 거지. 농사지어 장남에게 바친 부모님 돈 3000만원만 날렸다. 생활정보신문에도 손댔다가 말아먹었다. 광고의 ㄱ자도 몰랐으니…. 실의에 빠져 살던 어느 날 TV에 미국 줄넘기의 달인이 나오더라. 전국을 돌며 줄넘기 교육을 하는 사람이었다. 저거다, 싶었다. 아버지가 매우 우울해하시더라. 웬 줄넘기냐며. 하지만 아프리카 꿩과는 다른, 가슴 밑바닥에서 샘솟는 확신과 희망이 느껴졌다."

‘굿디자인’으로 선정되기도 한 김수열의‘명품줄넘기’.

국민 10명 중 7명이 줄넘기하는 나라

―확신대로 된 셈이다. 우여곡절이 있었겠지만.

"96년 처음 전국 교육청 돌면서 무료로 줄넘기 가르쳐 드릴 테니 교사들을 모아달라고 부탁했다. 150명 선생님을 대상으로 한 첫 연수가 성공을 거둔 이후 15년째 방학이면 전국을 순회하면서 교사 연수를 한다. 물론 지금은 강사료가 비싸다.(웃음)"

―성인 여성들 사이에서도 돌풍을 일으킨 '음악 줄넘기'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일본에 '리듬줄넘기'라는 게 있다. 그걸 우리식으로 안무하고 동작을 만들었다. 단조롭고 지루한 줄넘기를 대중화시키는 데 음악 줄넘기만한 게 없더라. 덕분에 줄넘기 시장이 10배 이상 커졌다. 국민 10명 중 7명이 줄넘기를 한다."

―결혼도 줄넘기 덕분에 하게 됐다던데.

"교사 연수하는 데 왔더라. 줄넘기 배우러 온 사람이 정장에 구두 신고 와서 눈에 띄었다. 어느 날 묻더라. 결혼했느냐, 나이가 몇이냐. 미혼에 서른두 살이랬더니 굉장히 좋아하더라. 가난한 줄넘기 강사였던 나야말로 감지덕지였다."

―줄넘기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은 왜 하게 됐나.

"우리 줄넘기의 질이 너무 떨어져서. 줄은 두꺼워 잘 넘어가지 않고, 손잡이는 떨어뜨리기만 해도 깨졌다. 처음엔 집에서 아내랑 둘이 만들었다. 가늘지만 무게감 있는 PVC 통줄 끊어다 손잡이에 끼우고 예쁘게 말아 포장하고. 완전 가내수공업이었다."

―첫 제품이 당시로서는 고가인 5000원이었다. 판매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

"연수 현장 통해 저절로 홍보가 됐다. 문방구에서 아이들이 찾으니 도매상에서 연락이 오고. 사업 1년 만인 97년에 IMF가 터졌지만 끄떡없었다. 해마다 100%씩 성장했다."

―줄넘기로 한라산 오르고, 마라톤 뛰고, 국토종단 한 것도 홍보차원이었겠다.

"내 줄넘기 홍보가 아니라, 줄넘기가 얼마나 재미있고 유익한 운동인지 알리려는 이벤트였다. 개인적으로는 도전이자 모험이었고. 조선일보가 주최한 춘천마라톤대회에 나가서는 발톱이 두 개나 빠졌다. 그래도 4시간 만에 완주했다."

많이 하면 엉덩이가 처진다?

―TV에 광고까지 할 정도면 돈을 꽤 벌었겠다.

"2009년 경영혁신형 중소기업으로 선정돼 정부의 지원을 받는 광고다. 광고비의 70%를 정부가 지원한다."

―요즘엔 대학교 리더십 강사로도 초청을 받는다던데.

"내 인생에 꿈과 도전이 있다고 해서. 자기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이라면 그것이 아무리 허황된 꿈이라도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해준다."

―낼모레 쉰인데 30대처럼 보인다. 줄넘기 덕분이라고 말하겠지?

"하루에 잠을 5시간 잔다. 일 때문에 날밤도 자주 새운다. 그래도 피로를 느껴본 적이 없다. 건강식, 보양식 안 먹는다. 스포츠의학자들이 괜히 줄넘기를 예찬하는 게 아니다."

―하루 몇 번 뛰어야 줄넘기로 다이어트가 될까? 3000번?

"줄넘기는 횟수로 하는 운동이 아니다. 자신에게 맞는 운동강도를 찾는 게 우선이다. 예를 들어 내가 1분에 최대한 빨리 150번을 뛸 수 있다면 그 80%인 120회를 기준으로 삼아 1분 뛰고 2분 쉬기를 한 세트로 만들어 한 달간 한다. 그러다 뛰는 시간을 1분30초, 2분, 3분으로 늘려나간다. 하루 30분만 뛰어도 충분하다."

―줄넘기 많이 하면 가슴과 엉덩이가 처진다던데.

"세상에 뛰지 않고 하는 운동 있나? 그렇게 믿는 사람은 아무 운동도 못한다."

―지루한 줄넘기 재미있게 하는 법은.

"음악 틀어놓고 해라. 휴대폰, 스마트폰에 음악 들어 있지 않나. 리듬감이 있으면 훨씬 쉽게 운동 효과를 얻는다."

―생업을 떠나, 줄넘기가 왜 그리 좋은가.

"조깅할 때에도 줄이 없으면 달리지 못한다. 싱거워서 못 달린다. 근 10년 동안 줄 넘으며 달린 길이 1만5000㎞는 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