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박광민 기자] '코리안특급'박찬호(38). 이제는 더 이상 미국프로야구(MLB)에서 그의 이름을 부를 수 없게 됐다.

박찬호는 2010시즌을 끝으로 지난 17년간 메이저리그 생활을 완전히 마감했다. 그는 통산 17년 동안 7개 팀 유니폼을 입고 476경기 1993이닝 124승 98패 평균자책점 4.36 1872피안타 1715탈삼진의 이정표를 남겼다. 비록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를 끼지 못했지만 '아시아인 최다승 투수'라는 이정표를 메이저리그에 남기고 지난해 12월 21일 일본프로야구 오릭스 버팔로스와 계약했다.

그렇다면 박찬호는 메이저리그에서 아시아 최다승 투수가 되기까지 17년간 등판한 476경기 가운데 어떤 경기가 가장 기억에 남았을까. 그는 지난 11월 귀국 인터뷰에서 "내 생애 최고의 경기는 아시아투수 최다승인 124승을 거둔 플로리다 말린스전이다"고 회상했다.

박찬호는 지난해 10월 2일 선라이즈 스타디움에서 열린 플로리다와의 원정경기에서 팀이 3-1로 앞선 5회 두 번째 투수로 구원 등판해 3이닝을 탈삼진 6개 포함 퍼펙트로 틀어막으며 시즌 4승(3패)째이자 개인 통산 124승(98패)째를 달성했다. 노모 히데오(123승)를 밀어내고 명실상부한 아시아 최다승의 자리에 올랐다.

이제 더 이상 메이저리그 마운드에서 볼 수 없는 '코리안특급' 박찬호의 메이저리그 마지막 경기, 그리고 자신에게 가장 큰 의미가 있는 플로리다전을 일구일구 되돌아봤다.

▲5회말, 세 타자 연속 삼진…선발 매커첸의 선물
박찬호의 124승에는 선발투수 다니엘 매커첸의 역할이 컸다. 매커첸은 4이닝을 1실점으로 막은 뒤 3-1로 리드하던 5회 자진해 마운드를 내려갔다. 박찬호의 대기록을 위한 특별 배려이자 선물이었다.

박찬호는 선두타자 오스발도 마르티네스를 맞아 초구 91마일(146km) 바깥쪽 포심 패스트볼을 던져 스트라이크를 잡았다. 2구째는 84마일(135km) 바깥쪽 슬라이더로 유인한 뒤 3구 79마일(127km) 낙차 큰 커브로 유리한 볼카운트를 잡았다. 이어 4구 바깥쪽 낮게 흐르는 85마일(137km) 슬라이더를 구사해 마르티네스의 배트를 헛돌게 하며 삼진을 잡아냈다.

후속타자 로간 모리슨을 상대로 박찬호는 또 다시 삼진을 잡아냈다. 초구 93마일(150km) 포심 패스트볼을 던지자 경기 해설자는 "오늘 박찬호 패스트볼 대부분이 90마일(145km) 이상을 찍는다. 조금 전에는 93마일(150km)까지 나왔다"고 칭찬했다. 2구는 82마일(132km) 바깥쪽 슬라이더로 스트라이크를 잡고 3구 88마일(141km) 몸쪽 컷 패스트볼로 헛스윙을 유도했다. 안 쳐도 스트라이크였다. 4구째 92마일(148km) 바깥쪽 높은 직구 볼을 던진 박찬호는 5구째 82마일(132km) 몸쪽 낮게 떨어지는 슬라이더로 풀카운트가 됐다. 그러자 주무기인 87마일(140km) 슬라이더로 모리슨을 헛스윙 삼진 처리했다. 해설자는 "연속타자 삼진이군요"라며 박찬호의 구위에 힘을 실었다.

이어 박찬호는 댄 어글라를 상대로 초구 88마일(141km) 몸쪽 슬라이더로 헛스윙을 이끌어냈다. 2구는 84마일(135km) 체인지업으로 볼 판정을 받은 박찬호는 3구와 4구째 몸쪽 깊이 87마일(140km) 슬라이더, 91마일(146km) 싱커를 구사했으나 어글라는 잘 견뎌냈다. 그러나 박찬호는 5구째 몸쪽 85마일(137km) 슬라이더로 스트라이크를 잡고 풀카운트에서 몸쪽 깊숙히 93마일(150km) 포심 패스트볼을 던져 헛스윙 삼진 처리했다.

해설자는 "5회를 막은 박찬호가 빅리그에서 아시아 위너가 될 기회를 잡았다"고 말했다. 이들은 아시아 투수 신기록에 대해서 미리 알고 있었다.

▲6회말, 가볍게 맞춰 잡는 피칭으로 삼자범퇴
첫 타자는 개비 산체스였다. 박찬호는 산체스를 맞아 초구 가운데 높은 91마일(141km) 포심 패스트볼로 파울을 유도했다. 박찬호는 공을 던질 떄마다 "으악"이라는 기합을 불어 넣었다. 이어 바깥쪽으로 흐르는 86마일(138km) 슬라이더로 헛스윙을 유도한 뒤 3구째 93마일(150km) 싱커를 몸쪽 높게 던졌다. 제구가 되지 않았다. 4구째는 80마일(129km) 커브를 구사한 뒤 5구째 87마일(140km) 바깥쪽 슬라이더를 던져 3루수 앞 땅볼로 처리했다.

1사 후 채드 트레이시를 상대로는 초구 76마일(122km) 커브로 스트라이크를 잡았다. 이날 커브의 각도와 제구는 완벽에 가까웠다. 2구째 87마일(140km) 몸쪽 슬라이더로 파울을 유도한 뒤 3구째는 92마일(148km) 싱커를 몸쪽에 넣었다. 역시 파울이었다. 4구째 바깥쪽으로 흘러 나가는 체인지업을 던진 박찬호는 5구째 몸쪽에 꽉 찬 슬라이더를 던져 중견수 플라이로 잡아냈다.

2아웃을 가볍게 잡은 박찬호는 이어 마이크 스탠튼을 상대로 8구까지 가는 접전 끝에 루킹 삼진으로 이닝을 마감했다. 초구 바깥쪽 87마일(140km) 슬라이더로 파울팁. 2구는 85마일(137km) 가운데에서 떨어지는 체인지업이었다. 3구는 바깥쪽 92마일(148km) 포심 패스트볼, 4구는 92마일(148km) 투심 패스트볼로 역시 볼. 그러자 5구째 87마일(140km) 슬라이더로 파울을 유도한 뒤 6구째 86마일(138km) 몸쪽 체인지업으로 연속 파울이 되자 7구째 구속을 더 떨어뜨려 82마일(132km) 몸쪽 커브. 그러나 역시 파울이었다. 스탠튼의 끈질긴 승부에 화가 난 박찬호는 8구째 94마일(151km) 바깥쪽 높은 직구를 스트라이크 존에 넣으며 삼진 처리했다. 이날 최고 구속이었다.

▲7회말, 혼신의 역투로 3이닝 퍼펙트 완성

스스로 직감했던 것일까. 박찬호가 메이저리그 마운드에 선 마지막 이닝이었다. 그는 선두타자 브래드 데이비스를 상대로 초구 91마일(141km) 바깥쪽 싱커로 스트라이크를 잡았다. 2구는 84마일(135km) 체인지업, 3구는 86마일(138km) 바깥쪽 높은 슬라이더였으나 파울이 됐다. 4구째 94마일(151km) 포심 패스트볼을 바깥쪽 낮게 던진 박찬호는 5구째 바깥쪽으로 흘러나가는 83마일(133km) 슬라이더로 헛스윙 삼진을 솎아냈다. 박찬호는 일구일구 힘을 불어 넣으며 공을 던졌다.

깊은 심호흡을 한 박찬호는 후속타자 대타 스캇 커슨스마저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초구는 77마일(124km) 몸쪽 커브로 헛스윙. 2구와 3구째 87마일(140km) 슬라이더와 84마일(135km) 체인지업이 연속해서 볼이 됐다. 4구째 87마일(87km) 커터로 스윙을 유도한 박찬호는 5구째 혼신의 93마일(150km) 포심 패스트볼을 몸쪽에 던졌으나 볼이 됐다. 그러자 풀카운트에서 80마일(123km)의 낙차 큰 커브로 헛스윙 삼진을 유도했다.

박찬호의 위력적인 공에 해설자는 "내년에도 위력적인 공을 던질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자 이제 박찬호의 투구를 보면서 해설할 수 있는 기회는 사라졌다.

박찬호가 메이저리그에서 대결한 마지막 타자는 에밀리오 보니파시오였다. 박찬호는 보니파시오를 상대로 초구 93마일(150km) 포심 패스트볼을 바깥쪽에 던졌다. 발이 빠른 보니파시오는 눈치 없게 번트를 시도했다. 다행히 파울이었다. 이어 87마일(135km) 몸쪽 슬라이더를 깊게 찌른 박찬호는 볼카운트 1-1에서 3구째 85마일(138km) 바깥쪽으로 떨어지는 체인지업을 던져 유격수 플라이 아웃을 잡아냈다. 그러자 해설자는 "박찬호가 이닝을 마쳤다"고 그의 이름을 다시 불렀다.

경기 해설자들은 경기 중간 중간마다 박찬호의 메이저리그 추억 속 이야기를 풀었다. 해설자는 박찬호가 다저스 시절 메이저리그 클럽하우스 신고식 때 자리에 있었다. 그러면서 그는 "난 지금도 기억난다. 동료들이 박찬호의 정장을 가위로 마구 잘라 논걸 발견한 박찬호는 의자를 집어 던지며 거칠게 화를 냈었다"고 말하며 웃음을 지었다.

텍사스에서 이야기도 빠지지 않았다. 이들은 "박찬호가 LA 다저스에 입단해 통산 123승을 거두고 있으며 텍사스 레인저스 유니폼을 입고 난 뒤 상당히 실망스러운 성적을 보였다"는 말로 박찬호의 메이저리그 스토리를 정리했다.

피츠버그는 8,9회 구원투수 이반 미크와 조엘 한라한이 무실점으로 막으며 박찬호의 통산 124승 대기록 완성에 완벽하게 도왔다.

특히 자신의 메이저리그 1승을 포기하고 박찬호에게 양보한 매커첸은 "오늘은 박찬호의 야구인생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날이다. 그는 압도적인 피칭을 펼쳤고 하나의 역사를 썼다. 그와 그의 조국에게는 큰 업적"이라며 기쁨을 함께 나눴다.

지난 겨울 우승의 꿈을 안고 뉴욕 양키스에서 시즌을 시작한 박찬호. 그러나 지난 8월초 성적 부진으로 웨이버 공시된 뒤 피츠버그에 새둥지를 틀었다. 피츠버그가 비록 최하위팀이지만 박찬호는 심적인 여유를 찾으며 대기록을 달성했고 여기에는 피츠버그 러셀 감독과 팀 동료들의 도움을 빼놓을 수 없다.

존 러셀 감독은 경기 후 "매커첸이 강판을 원했다"며 "우리는 박찬호를 도와주고 싶었다. 오늘 아주 훌륭한 공을 던졌고 내가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그가 정말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서 며칠 후 그는 성적부진의 이유로 해임됐다.

경기 후 MLB.com과의 인터뷰에서 박찬호는 "124승이 메이저리그에서는 큰 의미가 없을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매우 특별하다. 17년 전 미국에 처음 온 뒤 지금까지 여기서 나를 도와줬던 많은 사람들이 생각난다"며 "123승 이후 더 이상 올해 승리를 거두는 게 어려울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난 해냈다. 비록 힘든 한해인 것은 틀림없지만 지금은 의미가 있고 특별하다. 나와 가족들에게 영광이고 한국에 있는 팬들에게도 영광이 될 것"이라며 기뻐했다.

이것이 박찬호가 메이저리그 매스컴과 마지막 경기 후 인터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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