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크!'하는 기합 소리, 덩실덩실 허리를 흔들다 흐느적대듯 내지르는 발차기. 사람들은 1983년 무형문화재가 된 한국의 전통무예 태껸을 민속공연쯤으로 여긴다. 그런데 '옛법'이란 태껸을 보면 생각이 180도 달라진다.
옛법엔 눈 찌르고 턱 잡아 뜯고 급소를 강타하는 살수(殺手)가 가득하다. 그 기술이 고수(高手)들에게만 비전(秘傳)돼왔다. 21세기의 옛법 고수는 태껸 초대 인간문화재 송덕기(1893~1987) 선생의 직계 제자 장태식(36)이다.
■'브루스 리'의 뒤를 따르다
그는 '브루스 리 신도(信徒)'였다. 이소룡(李小龍)에 열광했다는 뜻이다. "TV에서 용쟁호투를 보고 한 번에 반했어요. 그때 꿈을 무술 액션 스타로 정한 거죠." 그는 전주 해성고 시절 본격적으로 이소룡의 뒤를 따랐다.
이소룡이 고교 때 복싱을 배웠듯, 장태식도 복싱 도장에 등록해 2000년 체전 전북대표가 됐다. "철학은 무술과 가장 가까운 학문"이라고 이소룡이 워싱턴주립대 철학과에 입학한 걸 알고 전북대 철학과에 진학했다.
군 제대 후 전북대를 중퇴한 것도 "무술에 전념하겠다"고 대학을 그만둔 이소룡과 같다. 하지만 대학 입학 후 하루 6~7시간씩 탐닉했던 무술은 태껸이었다. "세계적인 무술 스타가 되고 싶은데 절권도를 할 순 없잖아요."
■배우에서 태껸꾼으로
장태식은 2001년 배우의 꿈을 안고 서울로 올라왔다. '결련택견협회' 서울 본부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사람들을 가르치며 영화계를 노크했다. 기회는 생각보다 일찍 찾아왔다. 상경 1년 만에 영화 출연 제의를 받은 것이었다.
제목은 '거칠마루', 8명의 무술 고수들이 대결을 벌인다는 내용이었다. 실제 고수들이 출연해 대역 없는 액션을 펼친 영화로, 총 제작비 7000만원에 제작 기간 3년이 걸린 저예산 독립영화였다.
장태식은 태껸 고수였던 주인공 '청바지' 역이었다. 2005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선보인 거칠마루는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사람들은 엉성하지만 뭔가 색다른 이 영화에 신선함을 느꼈다.
장태식도 10여 매체와 인터뷰를 하며 스타가 된듯한 기분을 느꼈다고 한다. 하지만 전국 10여개 극장에서 개봉한 결과는 '흥행 참패'였다. 영화계의 인연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이후 그는 유명 영화감독과 제작자들을 찾아다니며 태껸 영화를 제안했지만 반응은 "재미가 없다" "무술 영화는 투자받기 쉽지 않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장태식은 태껸 아닌 다른 액션영화 제안은 모두 거절했다. "처음엔 배우가 되려 태껸을 배웠지만 시간이 지나니 태껸을 포기하고 배우가 되고 싶진 않더군요. 태껸꾼의 자존심이 생긴 거죠."
■"옛법을 알리겠다"
태껸꾼으로 남은 그는 숨겨졌던 '옛법'을 알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태껸이 독특한 기합과 자세 위주로 홍보되면서 우스운 모양새가 됐다는 것이었다. "우리 민족의 무예가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닌데 잘못 이해되고 있어요."
그는 옛법이 어느 무술보다 약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부드러운 움직임 속에서 전광석화 같은 기술을 날리는 근거리 실전술 태껸에 당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는 것이었다.
"중국 무술이 주로 홀로 수련하는 음습한 면이 있고 일본 무술이 다소 권위적인 데 비해 태껸은 활달하고 자유분방한 멋이 있습니다. 한국인 체질엔 딱 맞는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