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북한천안함 격침과 연평 도발 이후 보여준 특징 중 하나는 대외적으로 '천안함'과 '연평' '규탄'이란 핵심 단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북한이 도발했다는 사실을 덮어주려고 북한에 불리한 단어들을 배제하다 보니 중국 외교가 '소통 장애'를 겪고 있다는 지적이다.

다이빙궈(戴秉國)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은 지난달 28일 이명박 대통령과 만났을 때 '연평도'라는 단어를 한 번도 꺼내지 않았다. 대신 '한반도의 긴장이 완화돼야 한다. 자제해야 한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다이 위원은 지난 9일 김정일을 만났을 때도 비슷했다.

中외교부 "남북 서로 절제해야"… 장위(姜瑜)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23일 중국 어선의 서해 침몰사건과 관련해“한국측이 중국측에 여러 차례 유감을 전달해오면서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고 말했다. 그는 또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 이후 상황에 대해“서로 절제를 유지하면서 책임 있는 태도로 한반도 평화와 안정에 유리한 일을 해가기를 호소한다”는 기존 주장을 되풀이했다. 사진은 지난 7월 북한의 미사일 시험 발사 후 논평하는 장 대변인.

중국 관영언론들도 "한반도 정세와 관련해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눴다"고 말했다. 본질인 '연평도'란 단어가 없으니 논의는 핵심에 접근하지 못하고 겉돌았다.

우다웨이(武大偉) 한반도사무 특별대표도 지난달 6자회담 대표 회동을 제의하며 연평 도발을 '현재 우려되는 핵심 문제'라고 했다. 장위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23일 연평 도발 한 달에 대한 의견을 묻자 "현재 한반도 정세는 여전히 복잡하고 민감하다"고 말했다.

외교 소식통은 "연평 도발이라는 '키워드'를 배제하니 무슨 대화가 되고 메시지를 줄 수 있느냐"며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의 모습과 같다"고 말했다.

중국은 지난 19일 연평 문제를 논의한 유엔 안보리에서도 의장성명에 '북한' '연평' '규탄'이란 단어가 들어가면 안 된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아, 결국 북한을 규탄하는 의장성명은 채택되지 못했다.

중국은 천안함 안보리 논의 때도 '북한에 의한 공격'이란 핵심 구절을 빼자고 주장해 안보리 성명은 공격 주체를 명시하지 않은 채 채택됐다. 중국은 천안함 사건 때 대변인 논평을 통해 가끔 '천안함'을 언급하긴 했지만 대부분 '이 사건' '중요 사건'으로 처리했다. 천안함 침몰 이후 중국의 첫 반응은 '불행한 사건'이었다.

중국은 '천안함' '연평' '규탄' 같은 단어는 외면하면서, 대신 '인내' '대국적(大局的) 견지' '냉정과 절제' 같은 특정 단어들을 녹음기처럼 반복했다. 우다웨이 대표는 천안함 규탄 동참을 촉구하는 우리 당국자에게 "한국이 참아야 한다는 우리 입장이 대국적 관점에서 옳다는 걸 한국도 나중에 깨달을 것"이라며 훈계를 늘어놨다.

천안함 안보리 논의 때 친강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유관 당사국이 한반도 평화와 안정수호란 대국적 견지에서 냉정과 절제를 유지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안보리 논의를 찬성 또는 반대한다고 밝히지도 않고, 냉정과 절제를 요구하는 대상도 불분명하니 하나마나 한 얘기가 됐다. 중국 외교관들이 이런 추상적 단어를 사용하다 보니 상대하는 외교관들도 '소통'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한 외교관은 "현안을 얘기해야 하는데 중국 외교관들이 도덕 강의를 하고 있으니 답답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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