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예천에서 나고 대구에서 대학을 나온 서양화가 정관훈.

대구를 거점으로 활발한 작품활동을 벌이던 중 36살 때이던 2001년 물설고 낯설은 미국행을 선택했다. 자신의 그림에 한계를 느끼고는 스스로를 깨고 나오기 위해서였다. 세계의 수도 뉴욕에서 자신만의 색을 찾고 자신의 창(窓)으로 새로운 무언가를 막 찾아가는 중이었다. 그러나 2005년 교통사고를 당해 마흔의 나이로 고인(故人)이 되고 말았다.

고(故) 정관훈씨를 위한 전시회를 앞두고 동료 화가들이 기증한 작품을 디스플레이하고 있는 손동환(사진 오른쪽) 동원화랑 대표와 화가 권기철씨(가운데).

그와 이 세상과의 인연은 그로서 마지막이 된 듯 했다.

5년 후 그의 제2의 고향인 대구에서 '작은 기적'이 일어났다.

고인의 지인(知人)들을 비롯한 미술계 인사들이 그를 추억하기 위해 뜻을 모으고 나선 것이다. 추억의 자리는 유작전(遺作展) 및 유족들을 돕기 위한 전시회와 경매 행사로 꾸며진다. 대구·경북에서 활동하는 대표적인 작가 70여명과 미술계 관련 인사들이 그 주인공들이다. 이들은 고인을 추모하고 유족들을 돕기 위해 선뜻 작품 1점씩을 내놓았다. 이러한 일은 지금까지 없었던 일.

그 중심에 선 인물은 손동환 동원화랑 대표와, 고인의 영주고 2년 선배인 서양화가 권기철씨. 이들은 고인과 여러모로 인연을 맺고 있는 이들로, 인연의 소중함을 보여주고자 했다. 전시회를 위해 두 사람은 알음알음으로 주변의 화가들에게 행사의 뜻을 전달했다.

"모든 작가들이 선뜻 행사 취지에 찬성하고 기꺼이 작품 한 점씩을 내놓았습니다. 그리고 바쁜 와중에도 행사의 원활한 추진을 위해 몇번씩 가진 모임에 나와 준 것도 그렇고요."

그 결과 오는 21일부터 28일까지 갤러리G에서 '유작전'을, 동원화랑에서 '정관훈과 그의 화우들'이라는 타이틀로 유족돕기 전시회 및 경매행사를 펼친다.

유족돕기 전시회에서는 71명의 작가들이 기증한 작품들이 전시된다. 전시 기간 중 서면으로 응찰해 경매가 이루어진다. 경매 시작가는 20만원. 가급적이면 기증작품 모두가 팔렸으면 하는 마음에서 이렇게 소박하게 펼쳐진다.

경매로 판매돼 모여진 수익금 전액은 유가족들에게 전달된다.

이와 함께 고인의 작품들 중 20점을 추려 갤러리G에서 유작전이 펼쳐진다. 유작전에서는 고인이 어떤 예술적 궤적을 거쳐 왔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한편 전시회 개막식 당일에는 고인의 삶과 그림을 담은 '화가가 화가를 찾아 길을 떠나다'라는 제목의 책자 기념출판회도 열린다.

이 책은 대구를 중심으로 작품활동을 하는 서양화가 김향금씨가 글을 쓰고 기획해 만들어 냈다. 김씨는 고인의 얼굴 한번 본 적이 없는 사이지만 정관훈의 삶과 작품을 글로써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서 선뜻 나섰다.

추진위원장을 맡아 이번 행사를 주도한 서양화가 권기철씨는 "반듯하게 살아왔고 진정성을 가지면서 예술에 접근한 고인의 삶과 예술활동을 객관적으로 풀어볼 수 있는 시기가 됐다고 판단해 행사를 꾸리게 됐다"고 말했다.

또 다른 주역인 동원화랑 손동환 대표는 "이번 전시회에 많은 작가들이 작품을 내놓았기 때문에 컬렉터들에게도 다양한 작품을 구입할 수 있는 기회"라며 "유족들에게도 어느 정도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