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web)’과 ‘카툰(cartoon·만화)’을 합친 ‘웹툰’은 인터넷에서 연재되는 만화입니다. 조선닷컴은 개성 넘치는 작품으로 ‘인터넷 스타’로 떠오른 인기 웹툰 작가를 만나보는 시리즈 인터뷰를 마련했습니다.
그는 1990년대 초반에 고등학교를 다녔다. 그때 고교생들 사이에서는 록과 헤비메탈 음악이 대유행이었다. '머릿속에 온통 록음악뿐이었던' 그도 친구들과 밴드를 결성하기로 의기투합했다. 하지만 기타가 너무 비쌌다.
재수생 시절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아 겨우 전자기타를 구입했다. 그러자 이번엔 밴드를 만들기로 했던 친구들이 모두 군대에 갔다. 밴드는 '삼총사'가 모두 제대한 후에야 겨우 만들어졌다. 하지만 의욕만 넘쳤던 그들은 연습을 핑계로 모여 술판을 벌이기 일쑤였다.
'뮤지션'이 되지는 못했지만, 그는 그대로 음악을 손에서 놓아버리지는 않았다. PC통신에 음반 평이나 언더그라운드 밴드에 대한 글을 꾸준히 썼다. 이 글이 잡지사의 눈에 띄어 대학 졸업도 하기 전에 잡지 기자가 됐다.
2008년부터 올해 8월까지는 음악과 음악인에 얽힌 이야기를 만화에 담은 '음악의 재발견'을 조선일보 주말매거진에 연재했다. 네이버에서 웹툰 '생활의 참견'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김양수(37)씨의 이야기다.
◆뮤지션을 꿈꾸던 기자 출신 웹툰 작가 '생활의 참견' 김양수
김씨는 1997년부터 12년동안 월간지 '페이퍼'에서 기자로 일했다. 음악 부문을 주로 취재하며 쌓은 '내공'으로 2005년부터 지난해까지 한국대중음악상 심사위원을 지내기도 했다. 대중문화 전문 웹진 '조엔'에 '영화적 수다'라는 제목의 영화평도 연재했다.
하지만 서울 삼성동의 카페에서 만난 김씨는 "만화를 오래 해서 그런지 지금은 글쓰기가 어렵다"며 "본업은 만화가"라고 했다.
그의 대표작 '생활의 참견'은 1998년 '페이퍼'를 통해 처음 선을 보였다. 지금까지 단행본 3권이 나왔고, 2008년부터는 네이버에도 연재되며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제목처럼 그의 만화는 생활 속에서 늘 일어나는 일들을 다룬다. '동광', '윤주' 등 만화에 이름이 나오는 인물들은 모두 김씨의 친구 등 주변 사람들이다. 이소룡처럼 되고 싶어 주먹을 불끈 쥐며 '우두둑' 소리를 내는 연습을 했던 에피소드처럼, 누구나 한 번쯤 겪었을 법한 평범한 일에서 재미와 감동을 찾아낸다는 평가를 받는다.
"약간의 연출을 더하기도 하지만 모두 제가 겪었거나 주변에서 '제보'한 경험담이에요. 직접 경험한 얘기여야 더 힘이 있고,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는 것 같아요."
김씨는 자신의 만화가 가진 매력으로 '범용성'을 꼽는다. 자극적이거나 마니아적이지 않은 대신 누구나 공감하며 웃을 수 있는 만화라는 것이다. 그는 "20년이 지난 뒤에도 독자들이 문득 '아 그래, 그때 김양수가 그린 그 만화 있었지'하고 떠올릴 수 있는 작품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자칭 "대한민국에서 가장 그림 못 그리는 만화가"
지금은 인기 작가가 된 그도 만화를 그만두려 한 적이 있었다. 1998년부터 한 달에 한 번씩 잡지를 통해 만화를 선보였지만, 독자들의 반응이 느껴지지 않았다.
"폭발적인 반응이 느껴지는 인터넷과 달리 별다른 반응이 없었어요. 그렇게 여러 해를 하고 나니까 지친다는 느낌을 받았죠."
연재를 그만두려던 그에게 용기를 준 것이 인터뷰 상대로 만나 친해졌던 '순정만화'의 강풀 작가다. "난 그래도 형 만화 팬이다"라는 강 작가의 말에 용기를 얻었다. 김씨는 "한국 최고 만화가가 나의 팬이라는데, 설사 그게 입에 발린 말일지라도 굉장히 큰 힘이 됐다"고 했다.
김씨는 스스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그림 못 그리는 만화가"라고 한다. 그림을 전문적으로 공부하지 않아 '그림체'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미술학원에라도 다녀야 하나 생각도 했다.
"하루는 '누들누드' 작가 양영순 선배가 '난 김양수 네가 참 부럽다'면서 '넌 뭘 그려도 사람들이 네 그림인 줄 다 알잖아'라고 하는 거예요. 일본 만화를 따라 그리면서 자기 개성을 잃는 것을 '손을 버린다'고 하는데, 아직 손을 버리지 않았다는 거죠. 자기 필체를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을 해 주셨어요. 그렇게 발전한 것이 지금 제 만화인 셈이죠."
◆어린 딸이 주인공으로… "나중에 결혼할 때 선물로 주고 싶어"
김씨는 두 딸의 아빠다. 첫째 시우(6)는 그의 만화 '시우는 행복해'에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둘째 시영은 이제 생후 8개월이다.
그가 운영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미투데이에는 시우와 관련된 내용이 자주 나온다. “공연에 못 간 대신 시우의 숙제를 도와줬다”, “골목에 서서 시우의 유치원 차를 기다린다”, “시우가 피아노 배울 때가 돼서 누나가 쓰던 바이엘 책을 가져왔다” 등이다.
하지만 그는 독자들의 기대와는 달리 “자상한 아빠는 아니다”라고 했다. 딸들과 놀아줄 시간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김씨는 본가에 마련한 작업실로 1주일에 4~5번 ‘출근’한다. 작업을 하다 밤 10시쯤 집으로 돌아오면 딸들은 자고 있거나, 자기 직전이다. 그는 “다른 아빠들에 비해 딸들과 보내는 시간이 많지 않은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라고 했다.
‘시우는 행복해’는 현재 연재가 중단된 상태다. 그는 “내년 봄 단행본 출간을 목표로 재개를 준비하는 중”이라고 했다. 재개되는 만화에는 둘째딸 시영도 등장할 예정이다.
“당분간은 아무래도 시우가 계속 주인공이 될 것 같아요. 시영이가 커서 주인공인 언니를 질투할 때쯤 되면 바꿀 수도 있겠죠. 나중에 아이들이 커서 결혼할 때가 되면 선물로 주고 싶어요. 자기들의 어린 시절이 담긴 만화인데, 정말 기뻐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