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 프로그램 자막의 열독(熱讀)률은 얼마나 될까. 방송에서 영상만큼이나 시청자들의 눈을 끄는 것은 ‘자막’이다. 프로그램에서 자막은 상황을 설명하거나 발음이 부정확한 출연자들의 말을 옮겨 적는 방식으로 시청자들을 보조해왔다. 하지만 이제 자막은 보조자의 역할뿐만 아니라 출연자, 시청자, 제작진의 입장을 모두 대변하는 ‘제 3의 역할’을 해내고 있다.

어떠한 상황이 발생하면 제작진들은 출연자가 그 상황에서 느꼈을 법한 감정을 토대로 자막 처리를 해 출연자의 감정을 극대화시킨다. 일반적으로 소리 효과와 함께 느낌표나 물음표, 또는 ‘당황’, ‘두려움’ 등의 감정 표현으로 효과를 준다. 글자의 크기나 색, 형태도 감정에 맞게 조절되고 시청자들은 마치 만화를 보는 것처럼 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다.

시청자의 입장에서 자막을 삽입하는 경우도 있다. 제작진들은 함께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입장에서 시청자들이 공감할 만한 자막을 넣는다. 얄미운 행동을 하는 멤버에게 ‘밉상’, ‘비호감’ 이라는 자막 처리를 하기도 하고 멤버들의 행동에 ‘역시 ○○’, ‘○○다운 발상’과 같은 자막을 띄우기도 한다.

제작진 입장의 자막에서는 그들의 ‘센스’를 엿볼 수 있다. 제작진들은 자막을 통해 평소 멤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표현하거나 시청자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한다. 지난 9월 가수 신정환의 해외 도박설이 붉어졌을 때 신정환이 고정 출연을 하고 있던 MBC ‘황금어장-라디오스타’에서는 MC들의 오프닝 멘트를 통해 신정환에게 ‘정신차려’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이날 멤버들의 오프닝 멘트는 순서대로 ‘신나는 명절, 정이 넘치는 한가위, 환상의 연휴, 정말 꿈만 같으셨죠?, 신나는 휴일도 오늘로 끝, 차분한 일상을 위한 마지막 추석 파티, 여기는 고품격 추석 특집 방송 라디오스타’였다. 앞머리 글자만 따면 ‘신정환정신차여(려)’가 된다. 이에 시청자들은 ‘제작진들의 기지가 놀랍다’, ‘따끔한 충고, 감동적이었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MBC ‘무한도전’은 자막으로 시청자들에게 풍자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으로 이미 유명하다. 지난 7월 무한도전은 김미화가 진행하는 MBC 라디오 ‘세계는 그리고 우리’의 대본을 경찰이 사전검열하려 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노홍철이 진행하는 라디오 ‘친한 친구’ 스튜디오에 박명수가 들어오자 ‘스튜디오 난입’, ‘대본 검열?’이라는 자막을 띄웠다. 또 최근에는 프로그램 관련 일부 기사와 관련해 기사 제목을 패러디한 자막으로 불편한 감정을 표현했다는 의혹이 일기도 했다.

제작진들의 시기적절한 자막 삽입은 시청자들의 이해를 돕고 프로그램의 재미도 배가시킨다. 하지만 주(主)시청자층이 청소년인, 파급력 있는 예능 프로그램들이니만큼 자막이 오용·남용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할 필요가 있다. 시청자들을 혼란에 빠뜨리는 자막 실수가 심심찮게 일어나고 있고, 자막의 과한 사용으로 시청자들이 생각할 기회를 사전에 박탈당하는 경우도 있다. 재미도 좋지만 제 3의 역할이 그릇된 방향으로 흐르지 않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