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전염된다
니컬러스 크리스태키스·제임스 파울러 지음|이충호 옮김|김영사|488쪽|1만5000원
2007년 여름 전 세계적으로 부동산 거품이 붕괴하면서 주택금융시장이 얼어붙었고, 영국 은행들은 금융시장에서 자금을 융통하기가 점점 어려워졌다. 특히 주택 융자 은행들이 큰 타격을 받았고, 일부는 손쓸 방도가 없었다. 9월 12일 고객들의 예금 인출사태가 벌어지자 노던록은행은 문을 닫고 국영은행인 잉글랜드은행에 긴급 자금 지원을 요청했다. 영국 정부는 "고객은 예금이나 주택 융자금에 대해 염려할 필요가 없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틀 뒤 노던록은행이 문을 다시 열었을 때 예금이 대규모로 인출되는 뱅크런(bank run)이 140년 만에 영국에서 일어났다.
신간 '행복은 전염된다'(원제 'Connected')는 이에 대해 이렇게 지적한다. "예금을 인출하려고 노던록은행 앞에 줄을 섰던 사람들 중 다수는 정말로 은행이 파산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군중의 움직임에 자극을 받아 맹목적으로 따라갔다."
저자들은 사람들이 광대한 소셜 네트워크(social network·사회 연결망)를 통해 서로 연결돼 있다고 주장한다. 어떤 사람의 행동이 미치는 사회적 영향이 아는 사람에게서 끝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가 친구들에게 영향을 주면 그들은 다시 그들의 친구들에게 영향을 주기 때문에 결국 우리의 행동은 전혀 만난 적도 없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노던록 뱅크런에서 보듯 "소셜 네트워크는 맨 처음 공포에 휩싸인 사람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작용하기 때문에(친구들이 그러는 것을 보고 자신들도 예금을 인출하기로 결정한 부부처럼) 문제를 더 악화시킬 수 있다."
'행복은 전염된다'는 우리들의 인간 관계망과 사회 관계망을 다룬다. 저자 니컬러스 크리스태키스 하버드대 의대 교수는 공중보건 분야의 저명한 전문가로 2009년 시사 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영향력 있는 100인'에 들었다. 공동 저자 제임스 파울러 캘리포니아대 샌디에이고 캠퍼스 정치학 교수는 소셜 네트워크, 사람들 간의 협력, 정치 참여를 중점적으로 연구하는 학자이다.
이들은 1961년 하버드대 심리학 교수 스탠리 밀그램 박사가 제시한 '6단계 좁은 세상 이론'('세상의 모든 사람은 여섯 사람만 거치면 모두 연관이 된다'는 주장)에 놀라워할 게 아니라, 우리 모두가 서로를 모방하고 강한 영향을 주고받고 있다는 '3단계 영향 법칙'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3단계 영향 법칙'이란 3단계 거리 안에 있는 사람들, 즉 친구(1단계), 친구의 친구(2단계), 친구의 친구의 친구(3단계)에게서 우리는 직접적 영향을 받으며, 우리 또한 3단계 거리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직접적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그 영향은 우리의 인생을 뒤바꿀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힘을 가진다."
이들은 1971년부터 2003년까지 1만2067명을 추적 조사한 결과 친구가 행복할 경우 당사자가 행복할 확률이 15% 상승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2단계 거리에 있는 사람에 대한 행복 확산 효과는 10%, 3단계 거리에 있는 사람에 대한 행복 확산 효과는 6%였다. 그리고 4단계에서는 그 효과가 거의 사라졌다.
이런 식으로 이 책은 인간이 만드는 여러 가지 사회적 네트워크가 바이러스처럼 개인의 생활과 건강, 정서, 정치, 종교, 문화, 성적 취향 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다양한 사례를 들어가며 보여준다. 사람들의 사회적 관계는 사회·경제적 지위는 물론 지리, 기술 수준 심지어 유전자 같은 요소에도 제약을 받는다. 저자들은 유전자가 소셜 네트워크에서 담당하는 역할을 알아내기 위해 청소년 9만115명의 자료를 분석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게서 친구로 거명되는 횟수를 조사했더니 학생들의 인기도 차이를 빚어내는 요인 중 46%가 유전적 요소로 나타났다. 예컨대 친구가 5명인 학생은 친구가 1명인 학생과 유전자 구성 자체가 달랐다.
소셜 네트워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저자들은 "범죄를 줄이려면 잠재적 범죄자가 가진 연결의 종류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금연이나 다이어트를 효율적으로 하려면 가족과 친구 심지어 친구의 친구까지 그 노력에 동참하게 해야 하고, 가난을 줄이려면 가난한 사람들이 사회의 다른 구성원들과 새로운 관계를 맺도록 도와야 한다. "네트워크의 주변부에 있는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추어 다시 연결을 하도록 돕는 것은 주변부에 있는 불우한 개인을 돕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 구조를 돕는 것이다."
끊임없이 인용되는 사례들이 다소 버겁지만 '우리가 누구인지 알려면 우리가 서로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절감하는 데 최적의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