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학·정치학 박사, 행정·마약범죄학 석사, 미국 조지워싱턴대 대학원 수료. 어느 대학교수의 프로필이 아니다. 경기지방경찰청 청문감사담당관실 지영환(43) 경위가 지금까지 이룩한 성과들이다.
지난 10일 오전 10시 수원시 장안구 연무동 경기경찰청 1층 로비에서 만난 지 경위는 174㎝ 정도 키에 구릿빛 피부, 단단한 체구의 전형적인 경찰의 모습이었다. 시집을 포함해 11권의 책을 낸 그가 최근 조선 초 개혁정치가였던 조광조(1482년~1519년)에 대한 역사소설 '조광조 별'(형설라이프)을 출간했다. 그는 "별처럼 언어를 배치해 올바른 국가 경영을 논하는 조광조 정신을 널리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박사학위 2개, 저서 11권, 소장책 3만여권
전남 고흥 출신인 지 경위는 대학을 졸업하기 직전인 23살 때 경찰에 입문했다. 20년간 경찰에 몸 담아온 그가 본격적으로 집필과 학업에 몰두하기 시작한 것은 1999년 '국가와 도청'(그린)이란 책을 펴내면서부터다. 당시 그는 21세기 정보화 사회에는 국가 차원의 정보 보호가 중요하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1996년부터 관련 자료 수집을 시작한 그는 이 책을 쓰기 위해 500여권의 서적과 300여편의 논문을 모두 읽고 참조했다. 그는 이 책으로 2000년 정부의 '신지식인'에 선정되면서 빛을 보게 됐다. 신지식인 선정을 계기로 그는 보다 다양한 분야의 학문과 저술활동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이런 관심의 결과 가운데 하나가 서울 경찰수사연수원에 교육용 마약자료실을 만든 일이다.
그는 "2000년대 초 마약관련 업무를 맡게 됐는데 마약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어 난감했다"며 "부서에 신임 순경들이 녹차잎을 대마초로 오해해 수사를 그르치는 일도 있어 마약 자료실을 구상하게 됐다"고 했다.
마약 업무를 계기로 아예 광운대학교에서 마약 범죄학 석사까지 마친 그는 2002~2005년까지 대검찰청이나 서울시경찰청에서 전량 소각되던 마약 중 150여종 5만점을 분양받아 마약 자료실을 꾸밀수 있었다. 이렇게 그의 공부는 대부분 일상에서 마주치는 관심과 호기심에서 시작됐다.
경희대와 성균관대에서 법학·정치학 박사학위를, 고려대에서는 행정학 석사학위를 받는 8년여 동안 그는 제대로 휴가를 가본 적이 한해도 없었다.
그는 "1년에 20일 정도인 휴가를 반씩 쪼개 40일로 만들어 필요한 대학원 수업을 들었다"며 "동료들 대부분은 학위를 다 딸 때까지도 내가 공부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말했다.
주말도 반납하고 하루 4시간 정도 잠을 자며 공부를 했던 그는 지금까지 읽고 사 모은 책만 3만여권에 달한다.
그는 "책은 웬만하면 사서 읽어야 내 것이 된다고 믿고 있다"며 "책이 집에 수천권씩 자리를 차지하니 아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아 지금은 고향집 창고에 모아놓고 있다"고 했다. 이런 엄청난 독서량은 그가 11권의 책을 써 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집필 5년 걸린 '조광조 별'
'조광조 별'은 지 경위의 첫번째 소설이다. 5년 전 용인 수지의 주말농장에서 낮잠을 자다 꾼 꿈이 책을 쓰는 계기가 됐다.
그는 "2005년쯤 광교산 아래에 16.55㎡(5평) 크기 주말 농장을 분양받아 쉬는 날이면 찾곤 했다"며 "어느 날 농장 근처에서 낮잠을 자고 있을 때 꿈속에 갓 쓴 선비가 나타났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 위엄이 있었다"고 말했다.
잠에서 깨어난 그는 주말농장 근처를 둘러보다 불과 70m 정도 떨어진 곳에 조광조의 묘와 신도비(神道碑·종2품 이상의 관원 무덤이 있는 큰 길가에 세운 석비)가 있는 것을 알게 됐다.
그는 "꿈속에 나타난 선비가 조광조 선생이 아닐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며 "정치학을 공부했고 국가적 업적을 이룬 인물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조광조에 대한 관심은 자연히 집필 활동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막상 집필을 시작하자 조광조의 일생을 소설로 써내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다. 조광조가 역사 인물인만큼 작가의 상상력과 역사 왜곡 사이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이 때문에 그는 중종실록에서 중종과 조광조의 대화를 그대로 소설화하기도 했고, 조광조를 다룬 책들을 모두 참조해가며 소설에 일일이 참고문헌에 대한 각주를 달았다.
그는 "일반 소설에서 참고문헌에 대해 세세하게 각주를 표시하는 것은 드문 일이었다"며 "비록 출판사와 협의 끝에 출간 때는 각주 부분을 많이 빼긴 했지만 소설의 정확성을 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문학평론가 김재홍(63·경희대 국문과) 교수는 "'조광조 별'은 조광조의 삶과 비극을 통해 역사·진실·가치있는 삶 등에 대해 묻고 있다"며 "작가도 창조의 길로 나아가려고 노력하고 있는 진행형 인물이라는 점에서 조광조가 상징적 스승일 수 있다"고 말했다.
5년 만에 첫 소설을 완성한 그는 이미 두번째 역사소설인 '광개토대왕'을 쓰고 있다. 모두 15권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이 소설은 현재 4권까지 집필을 끝낸 상태다.
그는 "고전을 읽으면 1천여년 전의 삶과 철학이 지금도 그대로 현실을 관통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곤 한다"며 "앞으로 고고학 박사 학위에도 도전해 발굴현장에서 눈으로 본 생생한 이야기를 글 속에 담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