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목

인간은 오직 인간에게만 마음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영안(靈眼)으로 세상을 보면 무수한 생명체의 마음을 볼 수 있다. 특히 나무는 매우 민감한 식물이다. 슬픔과 기쁨, 분노와 환희 등의 감정을 표현한다.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나무를 신성시했다. 신단수(神檀樹)의 예만 봐도 알 수 있다. 신단수는 단군신화에서 환웅이 처음 하늘에서 내려온 신성한 나무다. 넓은 의미로 해석하면 고대 제정일치 사회에서 제사 장소였던 성역을 상징한다.

원시시대 사람들은 돌무더기와 흙 등을 쌓아 신단을 만든 뒤 반드시 신을 표상하는 신수(神樹)나 신림(神林)을 심었다. 소도의 상징인 솟대 역시 이 신수(神樹)에서 비롯된 것이다. 성황당, 당집 등 신을 섬기는 장소에는 항상 나무가 있었다. 우리 민족에게 나무는 단순한 차원을 넘어 신앙이요, 문화였다. 예로부터 오래된 고목이나 마을을 지키는 당산나무에는 수호신이 있다고 믿었다. 절기마다 제사를 올렸고 혹 나무가 벼락을 맞거나 고사하면 재앙의 징조라고 생각해 이를 막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런데 현대화의 거센 바람이 불면서 수목을 신성시하는 풍습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이에 따라 인간은 목신의 분노를 사고 있다.

몇 년 전 유성 계룡산 옥녀봉에 있는 성황당에 관한 이야기다. 인근 골프장에서 성황당 앞에 서 있는 큰 고목을 벤 뒤 비극이 잇따라 일어났다. 고목을 벤 청년은 그 즉시 교통사고로 죽고 함께 있던 인부도 아무 이유 없이 피를 토하고 즉사한 것이다. 모두 성황당 신수(神樹)의 저주라고 쑥덕거렸다. 얼마 전 나를 찾아온 O씨의 부친도 같은 이유로 목숨을 잃었다. 그녀는 강릉 출신으로 부친이 돌아가신 뒤 제주도에서 살고 있었으나 부친의 사고를 아직까지 잊을 수 없었다. “아무래도 500년 된 백일홍 나무의 저주입니다.”

강릉의 한 고택에는 500년이 된 큰 백일홍 나무가 있었다. 밑동의 둘레만도 2m가 넘는 고목이다. 공식적으로 지정받지 않았을 뿐, 천연기념물이나 마찬가지였다. 동네 주민들도 백일홍 나무를 신성시했다. 고택을 지키는 수호신이라 여겼다. 그런데 고택이 팔리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새로운 주인은 백일홍 나무를 베어내거나 옮기고자 했다. 하지만 아무도 선뜻 일을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백일홍 나무를 건드리면 목신의 저주를 받게 된다고 굳게 믿은 탓이었다.

결국 주인은 사람을 수소문하다 오씨의 부친을 큰돈에 고용했다. 처음에는 거절했으나 일당이 높아지자 마침내 소주 2병을 단숨에 마시고는 백일홍을 옮기는 작업에 착수했다. 우선 뿌리 쪽의 땅을 파내어 나무가 잘 뽑히게 한 뒤 백일홍 나무에 밧줄을 단단히 동여맸다. 여기까지는 일이 잘 진행됐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기중기로 밧줄을 들어 올리는 순간, 두꺼운 밧줄이 뚝 끊어지면서 그는 그대로 나무에 깔려 목숨을 잃고 말았다.

구명시식에 나타난 오씨의 부친 영가는 “일을 시킨 사람은 따로 있는데 왜 제가 죽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라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러자 마침내 500년 된 백일홍 나무의 목신(木神)이 구명시식에 나타났다.

목신은 일을 착수하기 전 목신을 달래는 어떠한 제의도 올리지 않은 것을 무례하게 여겼다. 나무에 해를 가한 인간을 용서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가 인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았으나 직접 해를 가한 이에게 저주가 내려지는 법이라고 잘라 말했다.

“인간에게만 마음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은 모든 생물체의 마음을 다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500년 된 백일홍 나무의 목신은 자연 훼손을 경고하는 메시지를 남기고 떠났다.

우리는 살다보면 뜻하지 않게 기이한 도인과 만날 때도 있다. 그들은 “3년 후에 장사를 할 것이다” 혹은 “슬하에 자식이 두 명 있겠다”라고 말한 뒤 조용히 사라진다.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다가 몇 년이 지난 뒤 생각해보면 정말 도인의 말대로 이뤄졌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얼마 전 지인들과 유성컨트리클럽에 골프를 치러 갔다. 유난히 날씨가 좋아 즐거운 마음으로 홀을 도는데, 재미있는 사연을 가진 남자와 만났다. 그는 33년간 유성컨트리클럽에서만 일하다가 이번에 정년퇴직하는 그 곳 토박이였다.

별다른 사고 없이 무사히 퇴직하게 돼서 기쁘다며 순박한 미소를 짓던 그는 내가 영능력자라는 얘기를 듣고는 놀라운 비밀을 알려줬다. 유성컨트리클럽이 위치한 곳은 계룡산의 명당터로 보통 기가 센 곳이 아니다. 세계적인 골프스타 박세리 선수가 골프 여왕의 꿈을 키웠던 바로 그 곳이다.

“40~50년 전인가요. 골프장이 들어서기 훨씬 전의 일입니다.” 그는 그동안 말 못했던 사연을 털어놓았다. 그는 어린 시절 열다섯 가구 정도가 사는 클럽 반대편의 오지 마을에 살았다. 그런데 어느 날 정자나무에 모여 있던 주민들 앞에 괴이한 차림의 도인이 등장했다.

계룡산에서 오랫동안 도를 닦았는지 행색은 볼품없었지만 눈에는 광채가 돌았다. 그는 한동안 마을 사람들을 노려보더니 “앞산에 불이 들어오면 그 즉시 마을을 떠나라”고 말했다. 그러나 모두 그를 비웃었다. 이 벽촌에 전기가 들어올 리 만무했기 때문이다.

미친 사람 취급을 받은 도인은 홀연히 자취를 감췄다. 도인에 대한 기억이 사라질 무렵 앞산에 골프장이 생긴다며 공사를 하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전깃불이 들어왔다. 주민들은 그제야 옛 도인의 말을 떠올렸다. 그리고 도인의 말대로 앞산에 불이 들어왔으니 모두 이사 가야 하는 게 아니냐며 호들갑을 떨었다.

하지만 뜬금없이 나타났다 사라진 도인의 말을 듣고 대대로 살아온 생활 터전을 떠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오직 한 사람 그의 부친만은 서둘러 이삿짐을 쌌다. 비록 가까운 이웃 동네로 가는 이사였지만, 동네 사람들의 비웃음은 끝이 없었다. 그 사람도 도인의 말을 듣고 이사 가는 부친이 정말 창피했다.

그날 이후 잠잠했던 마을에 괴이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열다섯 가구가 살았던 동네에 40대, 50대의 대주들이 차례로 죽어나가기 시작했다. 비명횡사 내지는 급사로 인한 원인불명의 사망이었다. 연이어 장례를 치르자 마을 사람들은 비로소 그 옛날 도인이 왜 이사를 가라고 했는지 알게 됐다. 그래도 '설마'하며 머뭇거렸다. 대신 마을 굿을 올리며 무사 안녕을 기원했다. 그러나 소용없었다. 결국 열다섯 가구의 대주들이 모두 죽었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대주는 그의 부친이었다. 도인의 말을 믿고 과감하게 이사를 감행했던 그만이 생명을 건진 것이다. 아마 그의 부친은 진짜 도인을 알아보는 눈과 운을 갖고 있었던 모양이다. 아직까지도 도인의 말은 마을 사람들에게 전설처럼 내려오고 있다. 그러나 의견은 분분하다. 왜냐하면 열다섯 가구의 대주들이 세상을 떠난 뒤 비극이 반복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도인의 말대로 “앞산에 불이 들어오는” 때는 마을에 비극이 시작되는 시기를 상징할 뿐, 풍수상 대주들이 죽어나가는 터로 마을이 변한다는 것을 말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유야 어찌됐건 그는 이웃동네로 이사를 간 부친 덕분에 건강히 성장했다. 그리고 유성컨트리클럽에서 33년간 무사고로 퇴직을 하게 됐다.

후암미래연구소 대표 www.hooa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