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모씨(41)는 지난 6일 오전 자석에 이끌리듯 서울 영등포구의 한 여고 쪽으로 향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등굣길 인근 골목에 숨어있던 노씨는 토요일 아침 가벼운 발걸음으로 등교하는 여고생들 앞을 갑자기 가로막고 바바리코트 안에 감춰졌던 자신의 알몸을 내보였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짜릿함을 즐기는 노씨와 달리 신체 특정부위를 드러낸 40대 남성에 여고생들은 비명을 질렀다.
학생들은 곧 "(지난달)골목길에 서 있던 변태아저씨가 지금 있다"며 112에 신고했다. 노씨는 한달 전에도 여고생들에게 못된 짓을 일삼아 악명을 떨친 '영등포 바바리맨'이었던 것이다. 인근 영등포공원으로 달아난 노씨는 곧바로 출동한 영등포경찰서 신길지구대 경찰관들의 손에 붙들리고 말았다.
검거 후 노씨는 경찰관들에게 "나도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저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 경찰관은 "노름꾼이 노름하다가 잡힌 뒤 하는 말과 비슷한 것 아니겠냐"는 반응을 보였다.
지난 9월 충북 단양에서 붙잡힌 경북 모 시청 7급 공무원 A씨(50)도 노씨와 사정은 마찬가지.
단양읍의 한 공원에 도착한 A씨는 목욕가운을 입고 나타나 여중생 9명 앞에서 엉덩이를 노출시킨 뒤 춤을 추다가 경찰에 검거됐다.
A씨는 낮에는 평범한 공무원 생활을 하고 가끔 충동을 이기지 못할 경우 출장지에서 음란행위를 한 것으로 드러나 주변을 경악케 했다.
청주에 사는 B씨(23)의 행각은 더 엽기적이다.
B씨는 지난 7월 오후 청주시 한 학원 앞에서 학교를 마치고 귀가하던 9세 여아에게 신체 특정부위를 보여주며 음란행위를 하다 쇠고랑을 찼다.
이처럼 여성 앞에서 자신의 특정부위를 드러내 성적 만족을 느끼는 소위 '바바리맨'들이 도심을 공포로 떨게 만들고 있다.
바바리맨들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한 관련 통계에 따르면 바바리맨의 70% 이상이 야외에서 노출을 감행하며 겨울보다는 봄철에, 평일보다는 일요일에 노출을 즐겨한다. 시간대는 오후 3시에서 5시 사이가 가장 많다.
피해자와의 거리는 3.5m 정도가 보통이다.
신경정신과 전문의들은 이같은 행위을 하는 이들을 노출증 환자로 간주한다.
정신분석학자 소커라이즈에 따르면 노출증 환자들은 어릴 때 모친으로부터 보살핌을 받지 않아 어려움을 겪은 경우가 많다고 한다. 버림받거나 학대받은 기억이 많다는 것이다.
소커라이즈는 자신의 노출증 환자 중 가운데 말을 더듬는 이들이 많다는 점을 지적했다. 언어적으로 자신의 욕망을 표현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말보다 한결 수월한 노출을 감행했다는 것이다.
바바리맨을 조사한 경험이 있는 경찰들에 따르면 이들은 대부분 수줍음을 많이 타고, 유약해 보이기까지 하단다.
하지만 바바리맨들의 타킷이 어린 여학생들을 대상으로 집중되고 있는 상황에 비춰볼 때 더 큰 피해도 우려된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노출증 환자의 95%가 또다른 성도착증을 보인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아동성애자, 강간, 관음증, 근친상간 등은 바바리맨의 심리 이면에 숨겨진 잘못된 정신질환인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외국의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노출증 환자의 32%가 강간, 남색 등 심각한 성범죄를 저질러 유죄판결을 받은 바 있다. 이들은 바바리맨을 통과의례처럼 거쳐 강간 같은 강력 성범죄를 저지른다고 한다.
1991년 시간(屍姦)을 일삼고 희생자의 신체 일부를 먹어 미국을 충격에 휩싸이게 만들었던 연쇄살인마 제프리 다머도 처음에는 바바리맨이었다.
바바리맨들은 적발이 되더라도 대부분 경범죄로 처리되는 게 현실이다. '영등포 바바리맨'으로 악명을 떨친 노씨도 공연 음란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 노씨에게는 최대 1년 이하의 징역형이 내려질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벌금형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외국의 전문가들은 피해여성의 10명당 약 1.5명이 바바리맨의 음란행위로 큰 충격을 받는다는 조사결과를 내놓은 바 있다. 피해양상은 웃음, 충격, 공포, 무시 등으로 다양하다. 하지만 절반이 넘는 여성들이 트라우마(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갖게 된다고 한다.
과거 후미진 골목길에서 이따금 벌어지는 '해프닝'으로 치부하던 이들도 바바리맨들의 음란행위가 급격히 늘면서 우려를 금치 못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바바리맨에 대한 조사나 연구는 전무에 가까운 실정이다. 이에따라 더 큰 피해를 예방하기 이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 조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