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문란한 그녀, 남자들의 순정을 독차지한 이유

2. 남자들이 '잘 주는' 그녀에게 순정을 바친 이유

3. 인심 좋은 그녀에게 남자들이 순정을 바친 이유

처녀였을 적, 그러니까 남자를 전혀 경험하지 못한 순도 100%의 처녀였을 때. 나는 신상으로 치장을 하며 멋을 부리고 다녔지만, 정작 남자들에게 대시는 받지 못했다. 귀여운 척, 예쁜 척도 열심히 해봤지만 다가오는 남자는 없었다. 그래서 탄식했다. '아! 세상은 왜 나를 몰라주나. 남자는 처녀를 좋아한다더니, 그것도 다 거짓인가 봐.'

친구 정양은 나와는 전혀 달랐다. 그녀는 외모나 스타일이 뛰어나지 않았지만 주변에 남자들이 끊임없이 득시글거렸다. 그녀와 자본 남자들은 말했다. '그녀는 말하고 있으면 안고 싶고, 안고 나면 또다시 생각나는 여자야.' 정양은 남자들의 유혹을 거절하는 법이 없었다.

"처음 해본 건 열 아홉 살 때였어. 아는 오빠랑 술 먹다가 그 오빠가 먼저…."

정양은 원래 사장 아빠를 둔 부잣집 따님이었으나 IMF 때 집이 망했다. 그때부터 그녀의 방황이 시작되었다. 무분별한 성관계를 통해 스스로를 망가뜨리는 것 같았지만, 실상은 망가진 인생을 성행위를 통해 위로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거의 섹스 중독 수준이었다. 사실 사생활이 지저분하면 좋은 말은 못 듣기 때문에, 정양은 친구들 사이에서 '아무에게나 잘 주는 인심 좋은 여자'로 통했다. 나도 걔가 '남자들이 즐기다 버리는 노리개'일 뿐이라고 여겼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 김군이 강물에 투신한 사건이 생겼다. 이유인즉, 정양에게 자신만 만나줄 것을 요구했는데 거절당한 것이다. 김군은 정양에게 자신의 진심을 증명해보기 위해 강물에 뛰어든 것이다. 뿐만 아니었다. 정양이 다른 남자와 관계를 맺는 것을 알면서도 그녀만을 바라보는 순애보도 있었고, 서로 정양을 갖겠다고 육탄전을 벌이는 남자애들도 있었다. 예상외로 남자들은 그녀에게 하룻밤의 욕구가 아닌 '순정'을 바치고 있었던 것이다.

남자는 '놀아본 여자'보다 '순결한 여자'를 더 선호할 것이라는 편견이 있었던 나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한때 처녀성을 자부심으로 여겼다. 그것은 어떤 '떳떳함'이고 남자에게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충분한 자격이 될 만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용감하게 들이댔던 상대에게 거절당하며 들은 말은 평생 잊을 수 없을 정도였다.

"넌 좀 계산적일 것 같아. 남자의 조건을 제일 많이 따지잖아."

딱 정곡이 찔렸다. 침대에 향하기 전, 나는 상대에게 선언했을 것이다. "일단 앞으로 30평대의 아파트와 3천 이상의 연봉 정도는 있어야 돼. 그리고 애 낳으면 일 못해." 사실 여자라면 미래를 보장해 주는 믿음직한 남자를 마다할 리 없다. 그게 뭐 어때서? 그게 무슨 잘못인가?

"그럼, 정양, 그 애는 어디가 그렇게 좋니?" "그 여자한테는 다른 여자들에게는 없는 게 있어." "그게 뭔데?" "그늘 말이야. 그늘."

사랑받는 데 열중하는 철부지 여자들이 흔해빠졌다면, 남자의 말에 귀 기울이고 동조해주는 여자는 흔치 않다. 이른 바 그녀는 남자들과 '말이 통하는 여자'였던 것이다. 남자들은 그녀를 사랑을 받으려고 하지 고집부리지 않고 남자를 사랑해주는 여자라고 기억한다. 정양은 남자에게 데이트 코스나 외식 메뉴, 기념일과 선물에 대해서 떠드는 일이 없을 것이다. 그녀는 남자가 속으로 울고 있을 아픈 곳을 맨몸으로 어루만져 줄 것이다. 그녀의 부담없음은 또다시 남자로 하여금 그녀를 찾게 한다.

남자의 심금을 울리는 정양의 따뜻한 말투와 진솔한 눈빛은 그녀의 불행한 어린 시절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여자의 아픈 추억은 남자가 쉴 수 있는 어떤 그늘이 되는 것일까? 문득 강물에 빠졌던 김군의 말이 생각난다. "그녀와 자면 그녀와 교감하는 게 참 좋았어."

이 정도 능력이라면 그녀의 연애 기술은 가히 특허감이다. 그녀의 그늘은 남자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다. 쉼터가 된다. 나는 문득 생각했다. 나에게도 남자가 쉬어갈 어떤 그늘이 있을까. 다른 건 몰라도 정양이 남자의 마음을 먼저 헤아려주는 그 태도만은 진정 배울 점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