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I’m free. 그동안 고생하셨어요.”
17일 밤 11시 30분으로 막 넘어가던 순간, 네덜란드 여성을 죽였다는 혐의로 온두라스에서 재판을 받은 딸 한지수(27)씨에게 '무죄판결이 났다'는 문자메시지가 왔다. 한국에 있던 아버지 한원우(57)씨는 기도를 했다. 그는 "재판과정에서 검찰 측이 증인을 10명이나 불러 지수가 상당히 불안해했다"면서 "재판이 끝나고 딸에게 위로하는 이야기만 했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2008년 6월7일, 딸(당시 25세)은 서강대 경영학과 졸업 후 직장생활로 모은 돈으로 평소 꿈꾸던 스킨스쿠버 다이빙 강사 과정을 밟기 위해 온두라스로 떠났다. 하지만 두 달 뒤, 한씨와 같은 아파트에 살던 호주인 댄 로스(31)씨가 술집에서 만나 밤늦게 집으로 데려온 네덜란드 여성 마리스카 마스트(사망 당시 23세)씨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갑자기 죽으면서 한씨는 애꿎게 '살인 혐의'를 받게 됐다.
온두라스 경찰은 로스씨를 살인 혐의로 구금했다가 곧 석방했다. '살인'이 아니라, '사망' 사건으로 본 것이다. 첫 번째 조사에서 특별한 혐의를 받지 않았던 한씨는 1년 뒤인 2009년 8월 이집트에서 미국으로 출국하려다 공항에서 체포돼 온두라스로 이송·수감됐다. 온두라스 경찰은 한씨와 마리스카, 댄이 3각 관계이며 한씨가 댄의 살인공범인 것으로 추정하고 인터폴에 수배를 요청했다. 한씨는 카이로 구치소에 한달 가량 수감돼 있다가 9월22일 온두라스로 이송됐다.
소식을 접한 아버지는 작년 9월 25일 생업을 정리하고, 온두라스로 달려갔다. 원룸을 구하고 짧은 스페인어를 배웠다. 감옥에 있는 딸과 만날 수 있는 것은 1주일에 3번뿐이었다. 차가운 교도소에 있던 딸은 외로움이 심각했다. 면회 날은 밥을 지어 먹였다. 웃지 않는 딸을 위해 농담도 건넸다. 말이 통하지 않는 여자교도소 방장에게는 뇌물도 쥐여줬다.
그는 “오후 6시 이후에는 방장이 최고인데 딸을 지키려면 별수 있겠습니까”라면서 “제가 면회 가는 날은 파티 날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갈 때마다 교도소에 음식을 나눠줬다”고 말했다. 또 교도소의 모든 수감자에게 짧은 스페인어로 “딸을 잘 부탁한다”는 말을 꼭 남겼다.
비자가 만료되어 한국에 돌아오게 되자, 이번엔 지수씨의 언니가 휴직계를 내고 온두라스로 가 ‘옥바라지’를 했다. 변호사 선임비용, 온두라스 체류 비용이 만만치 않아 빚까지 냈다.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이들은 사기꾼에게도 속기도 했다. 눈물겨운 옥바라지에도, 온두라스 검찰은 2차 심리에서 한지수씨가 목을 졸라 네덜란드 여성을 살해했다며 징역 30년을 구형했다.
그러나 인터넷에 한지수 후원카페가 생기고 트위터를 통해 한씨 사정이 알려지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작년 11월에는 정동영 의원이 국회에서 유명환 당시 외교부 장관에게 문제를 제기했고, 외교부는 전문가팀을 온두라스 현지로 보내 진상을 파악하고 공정한 수사와 재판을 요구했다. 이명박 대통령까지 직접 나서 지난 6월 로보 온두라스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한씨 사건에 대한 공정한 재판을 요청하기도 했다.
한씨는 작년 12월15일 보석금 1만 달러를 내고 가석방됐다. 한씨는 이후 온두라스 한인교회에서 가택 연금 상태로 재판을 준비해왔다.
아버지 한원우씨는 “대한민국 어느 부모라도 딸이 그렇게 됐으면 나같이 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지수가 큰일을 겪고 보니까 남을 돕는 일을 하고 싶어하더라”면서 “저는 일단 지수가 돌아오면 우리 가족 모두 제주도 올레길을 다녀왔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