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근 SK 감독의 상대 허를 찌르는 작전이 돋보였다. 5-4로 쫓긴 6회말 공격서 1사후 정근우가 안타를 치고 출루한 후 다음타자 박재상 타석 때 초구에 도루를 성공시킨 대목은 어떻게 보면 평범한 작전이지만 그 속에 숨은 의도가 있다. 박재상이 좌타자로 1루 땅볼 타구가 나올 경우에 대비해 1루주자 도루를 시킨 것이 적중했다.
박재상은 1루 베이스를 타고 넘어가는 적시 2루타를 날렸다. 정근우가 1루에 있었으면 삼성 1루수 강봉규의 수비에 막혀 아웃될 수도 있는 타구였다. 주자를 묶어두기 위해 강봉규가 1루 베이스에 붙어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강봉규는 오른손 잡이 수비로 베이스 근처 타구 처리에 유리, 다이빙 캐치로 막아낼 수 있다. 타구가 빨랐지만 최소한 막아놓고 주자를 1, 2루로 묶어놓을 수는 있었다. 이점을 간파한 김성근 감독의 한 수 위 작전야구였다. 타석은 좌타자에 1루주자가 있을 때와 없을 때를 감안한 수비수의 위치가 달라지는 점을 파고든 작전이었다. 병살타를 막는 효과도 있다.
물론 작전을 수행해준 정근우와 박재상의 능력도 뛰어났다. 감독의 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정근우의 도루는 어느 때보다 값졌다. 무조건 도루를 성공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꼭 필요한 시점에 해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또 5회말 공격서도 김성근 감독의 선수단 파악 능력이 빛났다. 2-3으로 뒤진 5회말 2사 만루에서 김강민 대신 베테랑 박재홍을 대타로 기용해 성공을 거뒀다. 박재홍은 컨디션이 좋지 않아 선발에서는 제외됐지만 큰 경기 경험이 풍부한 선수임을 파악하고 김 감독은 승부처에서 기용한 것이다. 박재홍은 차분하게 볼을 골라내 밀어내기 볼넷을 이끌어냈고 다음타자 김재현이 역전 2타점 적시타를 날리는데 발판을 놓았다.
반면 삼성은 투수 교체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플레이오프에서도 드러났지만 역시 불펜에 문제가 있었다. 3-2로 앞선 5회말 수비서 좌완 구원 권혁의 등판시점이 좋지 않았다. 선발 레딩이 첫 타자 정근우를 볼넷으로 내보내자 삼성 벤치는 곧바로 권혁을 불러올렸다.
상대 좌타자 박재상을 겨냥한 교체였으나 권혁은 어이없게 스트레이트 볼넷으로 화를 키우고 말았다. 플레이오프 때부터 컨트롤 난조를 보인 권혁은 심리적으로 위축된 탓인지 제기량을 보여주지 못했다. 삼성 벤치가 이 점을 좀 감안했어야 했다. 권혁보다는 차라리 뒤에 등판한 권오준이나 오승환을 먼저 투입하는 편이 나을 뻔 했다. 둘은 경험도 많고 구위도 나쁘지 않았다. 권혁은 승패와 상관없는 상황에서 구위 점검 및 자신감 회복을 위해 투입하는 것이 한 방법으로 여겨진다.
삼성은 1차전서 비록 패했지만 그동안 타격부진에 빠져있던 박석민과 강봉규가 홈런포를 날려 다음 경기를 기대케 했다. 박석민과 강봉규가 타격감이 살아나고 있음을 보여준 좋은 타구였다.
◆김일권(54) 해설위원은
한국 프로야구 1세대 스타 플레이어 출신이다. 1982년 프로야구 원년부터 도루왕 3연패를 비롯해 총 5차례 도루왕을 차지하는 등 '원조 대도'로 명성을 날리며 그라운드를 주름잡았다. 호타준족의 대명사로 국가대표를 거쳐 프로야구 올스타로 화려한 현역생활을 보냈다. 해태 타이거즈 전성기 멤버로 한국시리즈 우승의 일등공신 중 한 명이었다. 쌍방울-현대-해태-삼성에서 지도자 생활을 하며 후배들을 스타로 이끌었다. [편집자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