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에서 도소매 식자재 유통업체를 운영하는 A씨. 매일 새벽 4시면 1t 트럭에 식재료를 싣고 서울 전역으로 배달을 나선다. 대형백화점 4곳의 식당가를 비롯해 대형마트 식당가, 시내 일반 음식점 등 40여곳이 A씨의 배달처. 고추장, 마요네즈, 밀가루, 떡국떡 등 배달물이 다양하지만 하루도 빠지지 않고 실리는 품목이 인공조미료류다. "주문이 잦거나 배달 분량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하루에 한두 군데씩은 꼭 조미료 요청이 있지요."
12일 오전만 해도 마포에서 출발해 명동 한 백화점의 식당 두 곳, 남대문 종합상가 내 분식집, 신촌 칼국숫집, 홍대 앞 중국음식점에 조미료를 배달했다. A씨가 보여준 8~9월 조미료 매출 장부를 살펴보니, 식당마다 한 달간 주문량이 300g에서 20㎏대까지 다양한 편. 사람들이 많이 찾는 대형 중국집이 28㎏으로 가장 많았다. 식당 업종도 돈가스집, 한식집, 냉면집, 비빔밥집, 오코노미야끼집, 떡볶이집, 삼겹살집까지 두루 망라했다. A씨는 "아무래도 식당 찾는 손님들 입을 첫맛에 사로잡으려면 조미료 없이는 불가능하니까 꾸준히 사용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MSG 건재한 이유는 특유의 감칠맛
방송에 소개되는 맛집은 한결같이 "우리집은 미원은 절대 안 쓰고 천연 재료로만 맛을 낸다"고 말한다. 여기에 웰빙, 그린푸드(green food) 열풍이 거세다. 하지만 '미원' 혹은 '다시다' 같은 인공조미료는 퇴출되기는커녕 오히려 사용량이 늘고 있다.
1975년 출시 후 34년간 국내 복합조미료 시장의 80%를 점유하고 있는 CJ의 '다시다'(전체 84종)는 지난해 연말 기준 국내외 판매액이 3000억원을 넘어섰다. 내수만 해도 2007년 2584억원, 2009년 2693억원, 2010년 2710억원(예상판매액)으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발효조미료로 분류되는 대상 '미원'의 경우 국내 판매량은 2007년 1만8390t, 2008년 1만8772t, 2010년 1만7680t(예상)으로 현상유지를 하고 있다. 통상 '화학조미료'라고 불리며 '반(反)웰빙'의 대표주자로 자리잡은데다 핵심성분인 MSG의 유해성 논란 때문에 거부감이 컸던 것에 비하면 '현상유지'는 우리 식탁 위에서 인공조미료가 차지하는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방증하고도 남는다.
이유가 뭘까. 요리연구가 박종숙씨는 "일반 가정 식탁에서는 질 좋은 쇠고기를 한 시간 이상 끓인 육수를 쓰는 등 천연조미료를 만들어 사용하는 게 대세지만, 그렇게 하기 쉽지 않은 외식업체들은 여전히 인공조미료를 쓸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했다. 또 "요리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화학조미료는 안 쓴다고 하면서도 MSG가 다량 포함된 굴소스, 간장, 액젓을 애용하는 이들이 있다"며 "시중에 판매되는 많은 양념소스에 MSG가 포함돼 있기 때문에 이를 피하기가 쉽지 않고, 소비량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갈빗집은 미원, 냉면집은 다시다 선호"
서울 영등포시장에서 식자재 유통업을 하는 B씨는 "거의 모든 식당이 다 쓴다고 보면 되는데 특히 갈빗집에서는 미원을, 냉면집에서는 다시다를 선호한다"고 전했다. "똑같은 한우라도 집에서 구워먹으면 식당에서 먹는 감칠맛이 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조미료 때문"이라는 것. 서울 강서구에서 호프집을 하는 C씨는 "닭발구이부터 부대찌개, 알탕, 해물탕까지 거의 모든 메뉴에서 손님들이 좋아하는 감칠맛을 내려면 미원이나 다시다를 쓰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서울 안암동에 있는 중국음식점에서 10년 넘게 주방 일을 했던 D씨는 "낮에 3㎏ 포대 한 자루, 밤에 2㎏ 포대 한 자루 등 하루 5㎏ 이상 화학조미료를 사용했다"면서 "짬뽕, 자장, 탕수육을 가리지 않고 조미료, 설탕, 소금이 다 들어가는데, '미원'은 5000원 정도 더 비싸서 '아이미'나 '미풍'을 썼다"고 말했다. 중국음식점에 주로 조미료를 배달한 경동시장 유통상인 E씨는 "자장 국수가락이 입안으로 쪽쪽 미끄럽고 맛있게 빨려 들어가려면 MSG가 내는 감칠맛은 필수"라고 말했다.
"MSG 평생 먹어도 안전하다" 식약청 효과
지난 3월 식품의약품안전청이 MSG의 무해성을 발표한 것도 인공조미료와 관련 식품업계에 큰 힘을 실어줬다. 식약청 발표의 요지는, 'MSG는 1일 섭취량을 제한하지 않을 만큼 평생 먹어도 안전하다', '세계적으로 MSG 첨가를 금지한 나라는 없다', '이른바 중국음식증후군이라고 해서 발생하는 가슴 압박, 메스꺼움, 두통 등은 MSG와 상관없다'는 것이다.
업계의 주장은 보다 구체적이다. 대상 청정원 관계자는 "MSG의 안전성은 1978년, 1980년 2회에 걸쳐 미국 FDA가 발표했으며, EU 식품과학위원회가 쥐·개를 대상으로 한 독성실험에서도 MSG로 인한 독성효과가 없음이 이미 밝혀졌다"면서 "한국의 일부 식품업체들이 MSG 무첨가를 마케팅 전략으로 삼으면서 유해성 논란이 우리나라에서 계속 재현되고 심화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CJ 제일제당 관계자는 MSG를 '화학조미료'라고 호칭해온 것도 유해성 논란을 낳은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소비자들이 '화학'이라는 말을 선호했던 1980년대에 MSG를 화학조미료라고 명칭했던 것이 잘못된 출발이죠. 석유에서 추출한 화학합성제품이라는 오해를 받은 셈이니까요. 일본에서는 MSG를 아미노산 조미료라고 표시합니다." MSG의 나트륨 함량에 대해서도 크게 우려할 사항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MSG의 나트륨 함량이 12% 수준인데, MSG는 맛이 느끼해 많은 양을 사용할 수 없으므로 나트륨 또한 과다섭취할 가능성이 적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느글거리고 가슴이 답답하지?
흥미로운 것은 정부기관의 '무해 인증'에도 불구하고 MSG에 대한 일반인들의 의구심은 가시지 않는다는 데 있다. 취재 중에 만난 식자재 유통업자들은 물론, 대부분의 식당 주인들은 자신의 이름과 식당명을 밝히기를 극구 꺼렸다. 인터넷 댓글만 봐도 "그런데 왜 식당에서 밥만 먹으면 속이 불편하고 느글거리는 걸까?", "특히 중국 음식만 먹으면 왜 피부가 가렵고 어지럽고 속이 답답해지는 걸까"하는 류의 내용들이 수두룩하다.
2007년 '어린이가 먹지 말아야 할 식품첨가물 5' 중 하나로 MSG 품목을 선정했던 '환경정의' 신권화정 부장은 "식약청이 무해 판정을 내렸다고 해서 100% 안전한가"라고 반문하면서 "유해 논란이 끊이지 않은 식품첨가물이라면 매우 보수적으로 접근해야 하며 예방 차원에서라도 아이들에게는 먹이지 않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환경정의는 국제소비자연맹(IOCU)이 정한 '화학조미료 안 먹는 날'(10월16일) 캠페인을 수년째 지속해오고 있다.
안전성이 공인됐지만 해외에서도 여전히 MSG를 경계하는 분위기는 비슷하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프렌치 식당에서 일하는 고병욱 셰프는 "성분의 유해성보다는 중국·베트남·캄보디아 같은 값싼 아시아 음식에 MSG가 많이 들어간다는 선입견이 미국인들에게 강해서 웬만하면 피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MSG는
무슨 뜻?
글루타민산나트륨(Monosodium Glutamate)의 줄임말.
발명자는?
1908년 도쿄대학교 이케다 기쿠나에(池田菊苗) 교수가 일본인이 좋아하는 육수를 연구하던 중 다시마 추출물에서 발견했다. 일본 아지노모토사(社)는 1909년 이케다 교수가 발견한 MSG를 맑고 반짝이는 가루형태로 만들었다. 이 가루가 '아지노모토(味の元)'다.
위험하다 vs. 안전하다
1960년대 말, 중국계 미국인 의사가 한 저널에 '중국 음식을 먹고 나면 몸이 저리고, 심장이 두근대고, 어지러운 증상이 있다'는 글을 기고하면서 논쟁 시발. 미국 올니(Olney) 박사는 쥐에게 체중 1㎏당 4~8g의 MSG를 피하 주사한 결과, 시신경 장애가 일어났다고 주장(이 실험은 과장됐다는 게 일반적 평가). 미국 조지워싱턴대의 케니(Kenney) 박사가 1985년 '중국음식증후군'이 있다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MSG 6g이 든 음료수와 무MSG 음료수를 마시게 해 증상을 비교해, MSG와 '중국음식증후군'은 관련이 없다고 발표(그러나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음).
법적으로는?
미국에서는 1977년 FDA안전성 기준인 GRAS(Generally Recognized As Safe/일반적으로 안전한) 물질로 분류됨. 일본에서는 1948년, 우리나라에서는 1962년에 각각 식품첨가물로 지정됨.
MSG는 어디에?
MSG 대신 '가수분해 콩 단백질(hydrolyzed soy protein)'이나 '자기분해 이스트(autolyzed yeast)' 이름으로도 다양한 식품에 쓰이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빵에 발라 먹는 영국의 이스트 추출물 마마이트(Marmite), 태국 요리에 들어가는 골든마운틴(Golden Mountain) 소스, 남미의 고야사존(Goya Sazon), 코스타리카의 살사리자노(Salsa Lizano) 소스, 일본의 큐피 마요네즈(Kewpie mayonnaise)에도 이 성분이 들어 있다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