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층빌딩 화재에 대비해 개인이 탈출용 낙하산이나 행글라이더를 준비하는 것은 과한 것일까. 영화에만 있을 것 같은 각양각색의 첨단 대피장비들은 외국에 실제로 있다. 2001년 9·11 테러 후 충격에 빠졌던 미국에서 이런 장비들이 많이 개발·판매됐다.

미국의 낙하산 제조사 프리시전 에어로다이나믹스는 2001년 말 빌딩 탈출용 개인 낙하산을 내놓았다. '탈출할 때 아낄 수 있는 귀중한 몇 초가 당신의 모든 것을 바꿔놓을 것'이란 설명이 붙은 이 낙하산은 10층 이상이면 사용할 수 있다. 8가지 사이즈에 한 벌 가격은 1575달러(179만원)다.

아프코항공이란 이스라엘 낙하산 제조회사도 10층 이상 건물 탈출에 사용할 수 있는 소형 행글라이더를 개발했다. 평소 벽에 붙여놓았다가 유사시 메고 뛰어내리면 저절로 날개가 펴진다. 이 회사는 "용기를 내 뛰어내리기만 하면 된다"고 설명한다.

역시 이스라엘 회사인 이스케이프 레스큐 시스템스는 임시용 접이식 엘리베이터를 만들었다. 평소 건물 옥상에 접어 고정 설치해뒀다가 비상시 작동시키면 접혀 있던 천 재질 의 엘리베이터 여러 층이 줄줄이 펴지며 건물 외벽을 따라 내려온다. 창문을 통해 이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을 수 있는데, 한 번에 150명까지 이용 가능하다.

이스라엘 회사가 개발한 임시용 접이식 엘리베이터가 건물 외벽에 부착돼 내려온 모습. 평소 납작하게 접혀 옥상에 설치·보관되는 이 엘리베이터는 비상시 펴지면서 천천히 아래로 내려와 고층 입주자가 타고 탈출할 수 있게 해준다.

이런 장비들이 있어도 고층에선 무서워 사용하지 못할 것이라는 지적도 있지만, 9·11 테러 당시 불길에 궁지로 몰린 사람들이 맨몸으로 수백m 높이에서 줄줄이 뛰어내려 사망한 것을 보면 위기상황에서는 큰 도움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