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속 회장님들이 모두 쓰러졌다 다시 일어났다. 새삼 회장님들의 불굴의 의지와 불사신의 능력이 화제다.
국민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KBS2)의 거성식품 회장 구일중(전광렬)은 몇 회동안 손 저림 증상을 호소하더니 결국 쓰러졌다. 갑자기 쓰러진 회장님 때문에 거성식품의 후계자 구도에 큰 변화가 생겨 김탁구(윤시윤)가 대표 자리에 올라 경영수업과 동시에 주주들에게 자신의 능력을 확인시켜야하는 상황에 빠졌고 동생 구마준과도 어쩔 수 없는 후계자 자리싸움을 펼쳤다.
인기 드라마 '자이언트'(SBS)에선 만보건설 황태섭 회장(이덕화)이 쓰러졌다. 조필연(정보석)의 사주로 교사 직전에 구출됐지만 식물인간 상태에 빠졌다. 황 회장의 빈자리를 지키기 위해 황정연(박진희)이 고군분투하지만 조필연-조민우(주상욱) 부자와 오남숙(문희경)-황정식(김정현) 모자의 만보건설을 삼키려는 온갖 음모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심지어 못 움직이는 황 회장의 신변을 확보하려는 사람들의 싸움도 치열했다.
인기 일일드라마 '황금물고기'(MBC)에선 한경산 병원장(김용건)이 쓰러져 정신줄을 놓았다. 양아들 이태영(이태곤)의 복수에 대한 충격으로 뇌출혈을 일으켜 가족도 알아보지 못하고 어린아이 같은 행동만 일삼았다. 또 화제 속에 종영된 드라마 '나쁜남자'(SBS)의 해신그룹 총수 홍회장(전국환) 역시 극 막판에 쓰러져 병원 침대 신세를 졌다.
왜이리 드라마에 등장하는 회장님들은 잘 쓰러지는 것일까.
보통 회장님 역은 가족 중심인 한국 드라마에서 사회적 지위와 함께 가부장제의 핵심을 상징한다. 회장님의 병원행은 바로 극의 흐름과 이야기의 중심축을 다음 세대로 전달하는 과정에 필요한 장치로 사용된다. 이는 곧 젊은 주인공에겐 위기이자 기회가 된다.
'제빵왕 김탁구'에서도 만난지 얼마 안된 아버지 구 회장이 쓰러져 김탁구에게 갑작스런 위기로 다가왔다. 그러나 이는 탁구에게 거성식품의 후계자 자리에 올라설 수 있는 기회로도 작용했다. 또 그동안 여러 인물들에게 펼쳐져 있던 이야기가 구 회장이 쓰러짐으로써 김탁구를 중심으로 묶을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자이언트'의 황태섭 회장이 쓰러지자 역시 만보건설에겐 위기가 닥쳤지만 주인공 이강모(이범수)와 조민우에겐 또 하나의 커다란 기회가 됐다. 이 과정에서 이강모와 황정연의 오해가 불거져 갈등은 더욱 심화됐고, 젊은 세 주인공들이 만보건설을 두고 벌이는 한판 대결은 더욱 흥미진진해졌다.
KBS 드라마국의 이응진 국장은 "한국 통속극에선 회장님이 쓰러지는 장면이 자주 나오는데 주인공에겐 위기와 기회를 동시에 주는 효과가 있다. 이런 류의 사건 사고는 국면 전환용 장치로 극의 흐름을 바꿀 수 있고 극적 반전 효과도 크다"고 설명했다.
이런 극적 효과 때문인지 구 회장과 황 회장 모두 고비를 넘기고 극적으로 깨어났고, 한 원장 역시 깨어나 제정신을 차렸다.
극단으로 치닫던 상황에서 회장님들이 깨어나면 그동안 꼬이기만 했던 사건들이 일거에 해결되는 반전이 일어났다. '제빵왕 김탁구'의 구 회장은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알게 됐고, 탁구를 궁지로 몰던 한실장은 파멸됐다. '자이언트'에선 황 회장이 깨어나 부인 오남숙(문희경)의 음모를 막았지만 결국 조민우로부터 만보건설을 지키는 데는 실패했다. 그러나 강모와 정연의 오해가 눈녹듯 풀렸고, 두 사람에게 새로운 사업의 기회를 제공하며 극을 이끌었다. '황금 물고기'의 황 원장은 깨자마자 인생 최대 위기에 빠진 이태영을 찾아가 얽히고설킨 악연을 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극 막바지인 '황금 물고기'는 황 원장 역할에 따라 결말이 결정될 듯하다.
이렇듯 갈등 해결 과정에서 쓰러진 회장님의 복귀는 시청자가 큰 카타르시스를 전달한다. 회장님을 자주 쓰러트리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