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6월항쟁의 불씨가 됐던 박종철 고문치사 은폐조작 사건의 ‘딥 스로트(Deep Throat·내부고발자)’가 23년만에 처음으로 월간조선 10월호에 공개됐다.
두 고문경찰관의 입에서 나온 진실을 알린 사람은 당시 영등포교도소의 간부급 교도관이었다. 그해 1월 서울대생 박종철이 물고문으로 숨진 사실이 밝혀지자, 경찰은 애초 2명의 경찰관(조한경·강진규)를 책임자로 지목해 구속했다. 그러나 사실은 3명의 경찰관(황정웅·반금곤·이정호)이 더 있었으며, 이 과정에 전두환 정권이 조직적으로 개입했다는 것이 은폐·조작 사건의 본질이다.
그런데 결정적인 정보를 제공한 딥 스로트가 누군지는 여태껏 미스터리였다. 지금까지 알려진 것으로는, 영등포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이부영(전 열린우리당 의장)씨가 우연히 박종철 사건의 축소·은폐 사실을 알아내, 그 사실을 비밀 편지에 적어 교도관을 통해 밖으로 전했다는 정도였다.
당시 수형자(受形者) 신분이었던 이부영씨가 어떻게 이런 엄청난 정보를 입수하게 됐을까. 최근 영등포교도소 황용희(53) 교도관이 쓴 ‘가시울타리의 증언’이라는 수필집 속에 그 내부고발자가 처음 등장한다. 1987년 당시 영등포교도소 보안계장으로 근무하던 안유(66)씨다.
박종철 은폐·조작 사건의 시발점은 1987년 1월 19일 밤이다. 그날 밤 9시 40분쯤 박종철 치사 사건의 주범으로 붙잡힌 조한경·강진규 경찰관이 영등포교도소에 들어왔다. 고문경찰관들은 특별 사동의 13㎡가 넘는 큰 방에 따로따로 수감됐다. 그들에겐 하루가 멀다하고 치안본부(현 경찰청) 사람들이 찾아왔다.
1월 24일쯤 특별사동 내에 “억울하다”는 통곡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치안본부의 사자(使者)들은 두 사람에게 “만약 말을 안 들으면 가족들 생활이 어려워지고, 두 사람 역시 밖에 나와도 살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협박했다. 경찰 수뇌부와 두 고문경찰관과의 갈등과 반목이 깊어지면서, 나머지 3명의 경찰관 이름이 불거져 나온 것은 그즈음이었다.
교도소 내 1차 보안 책임자였던 안유 계장은 처음부터 끝까지 박종철 사건을 둘러싼 경찰 내부의 음모와 갈등을 고스란히 지켜볼 수 있었다. 고문 경찰관들의 면담기록 등 극비사항은 가장 먼저 그의 손을 거쳐 상부로 보고됐다. 그는 남영동 대공 수사단장 등이 조한경·강진규 두 고문경찰관들에게 2억원이 든 입금통장을 제시하는 것도 목격했다.
안유 계장은 밤이 되자 당시 특별사동에 수감돼 있던 이부영씨를 보안과로 불렀다. 두 사람은 이씨가 1970~80년대 서울구치소에 수감됐을 당시부터 신뢰관계를 쌓은 사이였다. 한 전직 교도관은 “안유 계장은 밤이 되면 이씨를 보안과로 불러 커피도 마시고 이야기를 나눴다. 보안계장이라면 그만한 권한이 있다”고 했다.
안유 계장이 털어놓은 내용은 메가톤급이었다. 이부영씨는 “안유 계장은 두 고문경찰관과 경찰 간부들이 만나는 과정을 지켜봤다며 ‘세상에 이럴 수 있느냐’며 공분을 참지 못했다. 그리고 내게 일부를 이야기했다”고 말했다.
이부영씨는 안유 계장으로부터 ‘폭발력 있는’ 정보를 들은 뒤, 평소 알고 지내던 교도관(2007년 이 교도관이 한재동씨로 밝혀졌다)에게 종이와 펜을 달라고 부탁했다. 한재동씨도 안유 계장처럼 ‘의식화된’ 교도관이었다. 그는 이씨에게 몰래 근무용지와 볼펜을 건네줬다.
이튿날 퇴근 무렵 한재동 교도관이 다시 이부영씨를 찾아갔다. 이씨는 한 교도관에게 쪽지를 건네며 이렇게 말했다. “(다른 사람에게) 걸리면 위태롭다. (뭐냐는 물음에) 박종철 사건이 조작됐다는 내용이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조선 10월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