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추어 골퍼가 홀인원을 할 확률 1만2000분의 1, 산모가 자연임신으로 세 쌍둥이를 낳을 확률 8000분의 1. 이보다 훨씬 낮은 17만분의 1의 확률에 인생을 건 사람들이 있다. 번쩍번쩍 빛나는 황금을 캐기 위해 빛이 들어오지 않는 막장에서 땀을 쏟는 금광 광부들. 이들을 만나기 위해 국내에 하나밖에 없는 금광 '은산광산'을 찾았다.
8일 오전 7시 전남 해남군 황산면 부곡리. 누렇게 익어가는 논 사이로 나지막한 산이 하나 솟아 있다. 해발 65m의 모이산. 이곳이 24명의 은산광산 광부들의 일터다. 일터로 하나둘 모인 광부들은 국제 금(金) 시세와 환율을 묻는 것으로 아침 인사를 대신했다. 한 광부가 "오늘 금 시세가 연내 최고라며?" 하자 광부들 입이 귀에 걸린다. 금 시세가 올라가면 연말 보너스가 두둑해지기 때문이다. 국민체조로 몸을 푼 이들은 이어 안전장화, 안전조끼, 안전모로 중무장했다. 채광팀장인 김중현(46)씨가 외쳤다. "안전모, 안전조끼, 안전장화 착용 상태 좋은가?" 광부들이 한목소리로 외쳤다. "좋아, 좋아, 좋아!"
지난해 이곳에서 캐낸 금의 양은 302㎏. 국내 금 생산량의 95%다. 캐나다 광산업체가 항공촬영을 통해 금맥을 찾아냈고, 2002년부터 채굴하던 것을 대우조선해양 SMC가 지난해 11월 인수했다. 김선호(58) 대표는 "은산광산을 전초기지 삼아 캐나다, 파푸아뉴기니, 몽골로 진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장비 점검과 안전 교육이 끝나자 광부들이 막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날 해남의 온도는 29도였지만 막장 안 온도는 18도. 동굴처럼 대류현상이 적기 때문에 온도가 낮다. 너비 3.5m, 높이 3.5m의 막장이 대로처럼 뚫려 있고, 이 대로에서 옆으로 뚫린 13개의 막장(너비 높이 각각 2.5m)이 또 있다. 막장의 길이를 전부 합치면 약 5㎞. 다 돌아보려면 4시간이 걸린다.
은산광산은 마그마에 의해 데워진 금속광물이 지표면 가까이에서 침전되며 형성된 천열수(淺熱水) 광산.
2인 1조의 작업조가 하는 일은 이 광산 벽에 구멍을 뚫는 천공작업과 다이너마이트를 터뜨리는 발파 작업이다.
작업장에 도착한 광부들은 드릴의 일종인 '착암기(鑿巖機)'를 이용해 다이너마이트를 넣는 구멍을 뚫기 시작했다. 광부 한 사람이 하루 동안 15~30개 정도의 구멍을 뚫는다. 구멍 한 개의 깊이는 1.6~1.8m. 암석이 단단할 경우 구멍 하나를 뚫는 데만 10분이 넘게 걸린다. 착암기가 거대한 굉음을 내며 벽을 뚫기 시작하자 광부들의 몸이 금세 물기 젖은 돌가루로 범벅이 됐다. 기자가 구멍을 뚫는 작업을 시도했다. 뚫기는커녕 35㎏ 무게의 착암기를 들 수조차 없다. 고희(古稀)를 앞둔 정원수(68)씨가 돌가루를 뒤집어쓴 채 목소리를 높인다. "내가 나이는 많아도 착암기를 들쳐메고 갈 정도는 되지. 45년 동안 광산밥 먹으면서 아직 젊은 사람들한테 체력은 뒤지지 않는다니까. 몸 관리 잘해서 칠순 잔치는 꼭 막장 안에서 하려고."
2㎞를 더 들어가자 '막장의 막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새 갱도를 내야 하는 곳이다. 새로운 통로를 만들기 위해 정현동(56)씨가 소형 굴착기를 개조한 장비인 점보드릴 위에 앉았다. 정씨가 16개의 레버를 능숙하게 조작하자, 로봇의 팔처럼 생긴 점보드릴이 마치 정씨의 팔이라도 되는 것처럼 매끄럽게 움직이며 벽에 구멍을 뚫었다. 정씨는 20년간 도로·철도 터널 공사와 석유비축기지 공사 현장에서 근무했다. "금광의 미래가 밝을 것 같아 건설회사를 나와 3년 전 광부로 변신했다"는 게 그의 얘기다. 바로 옆 막장엔 주은택(54)씨가 작업을 하고 있었다. 고향이 강원도 태백인 주씨는 석탄광에서 일하다 10년 전 금광으로 일터를 옮겼다. 주씨는 "석탄광에 비해 금광은 먼지가 덜하다"며 "기왕이면 석탄보다는 값진 금을 캐는 게 일하는 보람이 크지 않으냐"고 했다. 주씨의 둘째 아들은 은산광산 분석실에서 일하고 있다. 아버지가 채굴을 하면 아들이 분석을 하는 부자(父子) 간 '콤비 플레이'가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오전 내 막장에 구멍을 뚫는 천공(穿孔) 작업이 끝나자 오후에는 그 구멍들에 2~4개의 다이너마이트를 넣는 작업이 시작됐다. 위험성이 높은 만큼 막장 내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다이너마이트 장약에 오색빛깔의 전기선이 연결됐다. 채광팀장 김씨는 "색깔이 다른 전선에 연결된 다이너마이트는 폭발 시간이 각기 다르다"며 "막장 밖으로 나오는 소음을 최소화하기 위해 시간차를 두고 폭발이 되도록 한다"고 말했다. 다이너마이트와 전기선이 모두 연결되자 광부들은 안전지대로 몸을 피했다. 대구에서 20년 동안 일간지 지국을 운영하다 2년 전 광부가 됐다는 이인석(49)씨가 검전기(檢電器)로 전선에 전기가 통하는지 검사한 후 발파기(發破器)를 조심스레 연결했다. 이씨는 기자에게 "(고막 터지지 않게) 귀를 꼭 막고 입을 벌려. 안 그러면 병신돼"라고 반농담했다. 이씨가 "발파"라는 구호와 동시에 발파기의 버튼을 눌렀다. "꾸르르릉"하는 거대한 소리와 함께 막장이 진동했다. 이씨는 "이 짓을 매일 하다 보면 소리만 듣고도 발파가 제대로 됐는지 알 수 있다"며 "지금처럼 방귀 소리가 나면 발파가 제대로 된 것이고, 총소리가 나면 문제가 생긴 것이다"고 말했다.
오후 3시 30분 금광 광부들의 일과가 끝났다. 막장에서 나오니 황금처럼 눈 부신 햇살이 온몸으로 쏟아진다. 광부들이 깨고 부순 광석들이 금으로 탄생하기 위해서는 몇 단계의 과정을 더 거친다. 막장 내 전용 운반차량(LHD)이 막장 안으로 들어가 부서진 광석을 2.5t 트럭에 실어 담는다. 이 트럭은 막장 밖에서 대기하고 있는 15t 트럭에 광석을 옮겨 싣고 15t 트럭은 광석을 인근 분쇄장(粉碎場)으로 옮긴다. 2차에 걸친 분쇄 작업을 거쳐 거대한 광석 덩어리는 밀가루처럼 잘게 변한다. 이후 약품을 섞어 금·은·동의 금속만이 거품에 달라붙게 한 후 그 거품만 따로 모아 말리는 부유선광(浮遊選鑛) 작업을 거친다. 38년째 선광 작업을 하고 있다는 양만석(63)씨는 "광부들이 힘들게 캐온 광물에서 조금이라도 금을 더 얻기 위해 온 신경을 집중한다"며 "금목걸이나 금반지를 한 사람들을 볼 때면 동료들의 고생이 떠올라 가슴이 뭉클하다"고 말했다.
은산광산에서 일하는 광부들의 나이는 평균 50대 중반, 광산에서 일한 경력은 평균 20년에 달한다. 평균 연봉은 약 3500만원 정도이고, 금 생산량에 따라 추가로 보너스를 받는다. 채광팀장 김씨는 "경험이 없는 젊은이들도 언제나 환영인데 일이 고되다는 편견 탓에 젊은이를 찾을 수 없다"며 "막장에 들어가는 막내 광부의 나이가 마흔을 넘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또 "금광 광부들은 돌가루를 장시간 마시면 발생하는 규폐증(硅肺症)의 위험이 있긴 하다"면서도 "매년 건강검진을 실시해 아직 발생한 환자는 없다"고 말했다.
은산광산에서는 매일 150t 정도의 광석이 채취된다. 1t의 광석 중 최종적으로 금으로 탈바꿈되는 양은 평균 6g 정도. 하지만 광부들은 자신들이 캔 광석이 번쩍번쩍 빛나는 황금으로 탈바꿈하는 모습을 볼 수 없다. 다만 그들은 알고 있다. '귀한 것은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는 진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