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헌 최민식이라는 걸출한 두 남자배우가 극을 이끌어가는 영화 '악마를 보았다'(감독 김지운)는 두 차례나 심의가 반려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인육을 먹는 등 국내에선 보기 드물게 잔혹한 장면들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 눈에 띄는 여배우가 한 명 있다. 바로 이 작품을 통해 스크린에 데뷔한 오산하(28)다.
극중 수현(이병헌)의 약혼녀 주연 역으로 출연한 오산하는 경철(최민식 분)에 의해 토막 살해되며 수현이 복수에 나서는 모티프를 제공한다.
영화 데뷔작부터 너무 '쎈' 역할을 맡아서일까. 그동안 '우리 동네' '진짜진짜 좋아해' 등 수 편의 뮤지컬과 시트콤 '크크섬의 비밀'(MBCㆍ이하 '크크섬')에서 연기 내공을 쌓아온 그녀이지만, 그 어느 작품보다 힘들고 어렵게 촬영에 임했다.
"처음으로 노출신도 있었고.... 잔인하게 살해 당하는 장면을 가장 마지막날 촬영했는데요. 정말 현장에 가는 게 두렵더라고요. 딱 한 장면 남기고 포기할 생각도 했어요. 약속 시간보다 4시간 정도 늦게 어렵게 현장에 갔는데, 감독님이 혼내지도 않고 따뜻히 맞이해주셔서 너무 고마웠어요."
얼핏 보면 오산하의 극중 비중이 크지 않아 보이지만, 주연이 살해당한 뒤에도 계속 주연의 이야기가 등장할 뿐 아니라 수현의 복수가 시작되는 계기가 되는 만큼 스토리상으론 여주인공이나 다름없다.
그녀는 이번 작품을 통해 팬들에게 얼굴을 알리고 있지만 사실 '크크섬'을 통해 스타등극을 꿈꿨었다.하지만 그건 정말 일장춘몽에 불과했다. 이외수의 딸로 출연하며 화제가 됐던 '크크섬'에서의 비중은 처음에 비해 속절없이 줄어들었고, 마음의 고향인 뮤지컬 쪽에서도 '계속 방송하지, 왜 돌아오려 하느냐'며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이 와중에 전 소속사와 갈등까지 불거져 거액의 금전적 손해까지 입었다.
"당시엔 뭘해도 자신이 없더라고요. 다행히 신앙(천주교)을 통해 마음을 다잡고 장애인복지관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지냈어요. 홀로 어렵게 연예활동을 이어가고 있을 때 지인의 소개로 '악마를 보았다'의 오디션을 보게 됐고 운좋게 붙었죠."
지난 2년간 영화 제목 만큼이나 안타까운 삶을 살았던 오산하. 이 영화를 통해 제목과 반대인 '천사를 본 거나 다름없다'는 그녀의 다음 변신은 무엇일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