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택시 운전기사가 여중생을 성추행 했다는 신문기사를 보았습니다. 동료입장에서 참으로 난감하고 부담스러운 상황인데요. 택시를 운행하다보면 이와 비슷한 ‘위기’의 순간들이 가끔 생깁니다.
왜 위기의 순간이란 표현을 하느냐구요? 남자들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조심해야 될 것 3가지에 대한 교육을 받지 않습니까. 첫째가 남자의 심벌, 둘째가 돈, 셋째가 말(言). 이 세가지 중에 남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심벌’입니다. 이것을 함부로 휘두르다가 패가망신한 사람이 한 둘이 아니지 않습니까. 최근에는 타이거우즈가 그러고 있고요. 간혹 택시운전자들에겐 늦은 밤부터 새벽까지 거의 ‘유혹의 소나타’에 빠져 있는 시간이 되기도 합니다.
제 집이 중랑구 신내동이어서 마지막 손님을 태우기 위해 새벽 3시쯤 마지막 단골 잠복지인 학동사거리의 씨네시티 앞 횡단보도 건너편에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술이 적당히 취한 20대 후반의 여자 손님이 제 택시를 탔습니다. 제 옆에는 검정색 모범택시(디럭스택시)가 함께 나란히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모범택시를 지나쳐 일반 중형택시인 제 택시에 승차 하는 것은 자신의 집을 정확하게 설명할 정도는 정신이 있다는 것이기에 일단 안심했습니다. 손님이 분당을 가자고 합니다. 손님이 중간에 잠들 것에 대비해서 정확하게 분당 어디로 가는지 확인한 후, 손님을 기다리면서 듣던 송대관의 노래 ‘분위기 좋고’의 볼륨을 살짝 올렸습니다.
그런데 손님이 전화통화를 합니다. 손님 통화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라디오 소리를 살짝 줄이고 본의 아니게 통화내용을 대충 듣게 되었습니다. 이 손님은 오늘 남친에게 상처를 받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나는 왜 그 남자가 그렇게 좋았을까?” “진작에 느꼈어야 되는 일을 왜 그리 못 느끼고 이제야 깨닫게 되었을까?”
제가 상관할 바는 아니지만 제 차에 탄 손님의 그런 탄식 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좋지 않습니다. 듣고 있던 음악의 분위기가 영 아니기에 분위기 확 바꿔서 백지영의 ‘사랑 안 해’ ‘잊지 말아요’ ‘총 맞은 것처럼’이 들어있는 폴더(제 차는 음악이 폴더에 담겨있음)로 바꿨습니다. 그러기가 무섭게 손님이 음악 볼륨을 높여 달라고 합니다.
음악소리를 좀 높이고 목적지에 거의 다 도착할 즈음, ‘악!’ 뒤에서 이런 목소리가 들립니다. “감자탕 드실래요?” 저는 손님이 통화를 하는 줄 알고 아무런 대꾸를 안 했는데, 한 번 더 “감자탕 함께 드실래요?” 하는 소리가 나오기에 놀라서 뒤를 돌아봤습니다. “지금 저한테 한 소리입니까? 했더니 “예” 합니다.
으매~~ 이런.(이 글 쓰면서 자세 다시 고쳐 잡았음) 40대 후반의 나이에 20대 후반의 여자한테 이런 소리를 들으니 진정이 되겠습니까. 다행인 것은 제가 당황해서 대답을 못하자 손님이 “아저씨 됐어요. 그냥 아는 사촌오빠 가게에서 감자탕 먹어야겠어요” 하더군요. 그래서 손님의 집 근처 감자탕 집으로 모셔다 드리고 돌아왔습니다.
바로 이런 순간에 크고 작은 사건들이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한 번은 새벽 2시쯤, 방배동 골목에서 중학생이나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여학생 둘이 다가와 묻습니다. “아저씨, 저희 집이 길동인데요. 거기까지 얼마나 나와요?” “대략 1만5000원쯤 된다”고 말하니 “저희가 집 나온지 며칠 됐는데요. 집에 돌아가고 싶어도 차비가 없어서 그러는데 아저씨가 그냥 데려다 주면 집에 가고, 아니면 안 가려고요. 그냥 데려다 주시면 안돼요?”합니다. 황당한 일이기에 좀 머뭇거리다가, 한 가지 방법이 떠오릅니다. “집 전화번호를 알려주면 내가 집에 계신 부모님하고 통화를 할테니 그리고 나서 가자”고 했습니다. 여학생 둘은 그냥 가버렸습니다.
한 번은 목적지에 다 왔는데, 뒷좌석에서 처녀가 술이 취해 아예 누워서 자고 있는 겁니다. 아무리 깨워도 안 일어나기에 바닥에 떨어져 있는 손님의 핸드폰을 주워서 가장 최근에 통화한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손님의 남자친구가 받더군요. 자초지종을 이야기하니 “거기가 어디냐”고 묻습니다. 상계동이라고 하니 자기는 지금 수원에 있다면서, 여자의 집은 석촌동이니 석촌동으로 데려다 줘야한다는 겁니다. 그럼 이 여자분이 왜 상계동에 가자고 했느냐고 물으니 자기 집이 상계동인데 여친에게 수원에 친구 만나러 간다고 이야기를 안 해서 그렇답니다. 그러면서 제 차에 시체가 되어있는 여성의 집 전화번호를 알려 줍니다. 그래서 여차저차해서 시체가 된 여성의 집으로 다시 돌아가 내려줬습니다.
동료 기사들 중에는 가끔 여자관련 사건·사고에 대한 무용담을 늘어놓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마 그 건(件) 하나를 만들기 위해 다른 승객분들에게 수없이 추근대고 성희롱으로 보이는 행동을 했을 것입니다. 아무튼 사건사고 없이 택시운전을 잘 하려면, 어지간한 내공 가지고는 어렵다는 얘깁니다.
추신 : 이 글을 쓰면서 제일 걱정되는 것은 동료들로부터의 항의입니다. “난 택시운전 30년 하도록 여지껏 그런 비슷한 일도 겪어 본 적이 없는데!” 죄송합니다. 그런 뜻이 아니라….
◆ 이선주는 누구?
이선주(47)씨는 23년 경력의 택시기사다. 2008년 5월부터 차 안에 소형 카메라와 무선 인터넷 장비를 설치해 택시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동영상 사이트인 ‘아프리카(afreeca.com/eqtaxi)’에 ‘감성택시’란 이름으로 실시간 생방송하고 있다. 택시 뒷좌석에는 무선 인터넷이 가능한 카피씨(Car-PC)를 설치해 무료로 승객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조선일보를 비롯해 미 ABC 방송, YTN, SBS 등에 소개된 바 있다. 1999년에는 교통체계에 대한 정책제안 등의 공로로 정부가 선정한 신지식인으로 선정됐다. 조선닷컴에서 ‘eqtaxi’라는 아이디로 활동하고 있다. ‘만만한게 택시운전이라고요?(1998)’ ‘종로에서 뺨맞고 한강에서 배꼽잡고(1999)’ 등 두 권의 책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