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익선동 종로세무서 옆 요정 '오진암'에는 굴착기와 기중기가 들락날락했다. 해체된 한옥 기와지붕 아래에는 '서울특별시 등록 1호 한국음식점업'이라는 팻말이 붙어 있었다. 오래된 식기와 의자들이 손수레에 실려 밖으로 나왔다. 이를 지켜보던 박병기(61·환경미화원)씨는 "박정희 대통령의 제3공화국 때부터 거물 정치인과 기업인들이 드나들던 곳이 이렇게 헐리니 아쉽다"고 했다.

요정 정치의 산실이었던 서울 종로구 익선동의‘오진암’을 내려다본 모습. 이달 초부터 시작된 철거 공사로 지붕 위 기와가 뜯겨 있다.

명월관·삼청각·대원각 등과 함께 1970~1980년대 '요정정치'의 근거지로 꼽혔던 오진암(梧珍庵)이 문을 연 지 57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1953년부터 운영해온 조모(92)씨가 건강상 문제로 지난달 운영을 중단하고 매각했기 때문이다.

1900년대 초에 2310㎡(700평) 규모로 지어진 오진암 건물은 해방될 때까지 가정집으로 사용되다가, 1953년 조씨에게 인수돼 한국 최초의 근대 요정이 됐다. 1990년대까지 삼청각·대원각 등과 함께 대표적 고급 요정으로 통했다. 마당에 큰 오동나무가 있어 오진암으로 지어졌다고 한다. 오진암 맞은 편에서 17년째 한복을 만들어 팔고 있는 정모(70)씨는 "이름만 대면 대한민국 사람 전부가 알만한 정치인·기업인·연예인들이 많이 드나들었다"고 했다.

오진암은 1972년 이후락 당시 중앙정보부장과 북한 실세였던 박성철 제2부수상이 만나 7·4공동성명을 논의했던 곳으로도 잘 알려졌다. 한국의 요정들이 '기생 관광'으로 외화벌이한다고 지적한 외국 언론에 이름이 거론됐고, 2006년에는 한 손님이 오진암에서 290만원을 카드로 결제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더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오진암 관계자는 "2000년대 들어 외국인 관광객이 늘어났지만 정작 술 마시러 오는 사람들이 줄어 영업이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이달 초부터 철거가 시작된 오진암 터에는 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호텔이 들어설 것으로 알려졌다. 종로구 문화공보과 나신균 주무관은 "오래된 한옥으로 가치가 있지만 문화재로 등록되지도 않은 개인 재산이기 때문에 보존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