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디자이너 겸 플로리스트 이상일(54). 그는 요즘 '두 집 살림'을 한다. 지난 27년 동안 가위질로 유행을 빚어낸 그다. 수많은 디자이너가 그가 머리를 만지는 대로 모델을 꾸며 패션쇼 무대에 세웠고, 그가 나뭇가지와 꽃을 잘라 주변을 장식하면 잡지사 기자들은 그걸 보며 '올해 인테리어 경향'을 논했다. 도산공원 옆 헤어살롱 '파크 뷰 바이 헤어뉴스' 원장이자 카페 '모우(MOU)' 대표. 가게 두 곳을 운영하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벅찬데, 그런 이씨가 요즘 금요일 밤만 되면 자취를 감춘다고 했다. 때늦은 바람이라도 난 걸까. 이씨는 순순히 인정했다. "맞아, 두 집 살림 중이야." 어디서? "외암리 마을이라고 아시나? 주말마다 지내지." 추적을 시작했다.
◆외암리 고택(古宅)에 반한 헤어 디자이너
토요일 오후 2시. 이상일은 땀에 젖은 셔츠에 고무신 차림으로 천천히 걸어나왔다. "뭐 하다 나오셨어요?" "풀 좀 뽑느라고."(웃음)
올해 5월이다. 늦바람이 난 건. 충남 아산시 송악면 외암리에 있는 민속마을. 고택들이 낮은 돌담을 끼고 두런두런 어깨를 맞대며 서 있다. 이 중에서도 눈에 띈 건 국가지정 민속자료 제195호로 지정된 아산 이 참판댁. 대들보는 힘이 넘쳤고, 방마다 다른 소박한 나무 문살은 고졸미(古拙美)마저 풍겼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많았다. 보수가 제대로 안 된 마당, 잡초가 무성한 뒤뜰. '조금만 손 보면 더욱 근사할 텐데' 싶었다.
이 집 3대손 이득선(65)씨를 찾아가 졸랐다. 이 집 작은 별채를 빌려 달라 했다. 아틀리에(atelier·작업실)로 꾸며보겠다고 했다. "안 된다"고 거절당했다. 포기하지 않았다. "한옥은 빈집으로 놔두면 망가지지 않나. 내가 여기 본래 멋은 살리고 약간의 윤기만 더하겠다. 돈 받고 일꾼 쓴다 생각해 달라." 결국 승낙이 떨어졌다.
금요일 밤마다 아내 김인숙(51)과 내려와 주말 내내 집 주위에 돋아난 잡초를 뽑았다. 툇마루에 들기름을 발라 광을 내고, 생콩을 갈아 방바닥 장판에 콩물을 먹이는 '콩댐'을 했다. 마구 버려진 뒤뜰은 쟁기질로 정리하고, 작은 연못을 만들었다. 물옥잠과 연꽃이 뿌리를 내렸다.
새까만 먼지만 내려앉은 광엔 한지를 새로 발랐다. 고가구 책상을 놓고 새빨간 맨드라미 꽃으로 장식하니 한층 근사했다. 농기구를 세워두던 빈 벽엔 하얀 탁자와 의자를 놓았다. 손님들이 찾아와 와인 한잔 기울여도 좋을 곳이다. 마당 한가운데 무쇠 가마솥과 옹기를 박고 그 위에 버려진 참나무 뿌리를 잘라 장식했다. 돈 주고 산 조각품처럼 보였다.
이쯤 되니 궁금했다. 직접 한옥을 짓거나 다른 집을 사들여서 개조해도 될 텐데 뭐 하러 문화재를 빌려 쓰며 고생을 자처할까. 이씨가 눈을 찡긋한다.
"입으로만 우리 것이 좋다고, 문화재를 보호하고 가꾸자고 말하는 사람이 되긴 싫었다. 그건 누가 못할까. 기왕이면 어려운 걸 해보고 싶었다. 여기서 직접 살며 우리 것이 이렇게 근사하다는 걸 보여주는 것. 물론 직접 한옥을 짓거나 사들일 수도 있었지만 그럼 욕심이 많아진다. 욕심이 많아지면 꾸밈도 과해지고. 그럼 다 망친다."
◆저절로 눈떠지는 새벽… 연필 그림에 취하는 아침
외암리 마을 사람들은 이씨의 직업을 '만화쟁이'인 줄로만 알고 있다. 작업실에 들어앉아 하루종일 연필 잡고 그림을 그리고 있어서다.
어쩌다 그림에 빠진 걸까. "함께 미용실을 경영하던 아내가 2003년 프랑스로 3년간 보석 세공 공부를 하러 떠났다. 홀로 남아 하루종일 손님을 받고 일을 했다. 사람들을 화려하게 치장하고, 최신 유행을 얘기하는 나날. 좋았지만 밤이 되면 견딜 수 없이 외로웠다. 이유도 없이 장이 꼬이고 몸에서 열이 났다."
헤어 스타일링 역시 점점 까다로워졌다. 지름 20㎝가량의 뒤통수. 그게 꼭 작은 우주처럼 보였다. 머리칼 만지는 일은 하면 할수록 어렵고 땀이 났다.
혼자 남은 밤. 화장대에 있는 눈썹 연필로 무심코 스케치를 시작했다. 구겨 버리려고 했는데 친한 화가가 그림을 봤다. "계속 해봐."
그림은 수십 장이 됐고 수백 장이 됐다. 이씨는 "그림을 그리다 보니 미처 몰랐던 게 보였다"고 했다. 그림을 그리고 난 다음 날엔 가위질이 빨라졌고, 공간 스타일링도 한층 더 세심해졌다. "아틀리에를 꾸민 것도 그래서다. 그림을 그리다 보니 새벽녘 눈이 저절로 떠졌고 밋밋하던 일상은 활력을 찾았다."
아틀리에 벽은 온통 그의 그림이다. 한 달이고 두 달이고 꼼짝 안 하고 주말마다 그린 연필 그림. 그림 속엔 한옥에서 아내와 와인을 마시는 그가 있다. 밥상을 들고 툇마루로 올라오는 아내가 있다. "그림에서 객관적인 내가 보인다. 그래서 좋다."
이상일은 앞으로도 10년은 더 이곳에서 주말을 보낼 생각이다. 환갑잔치도 하고 칠순 잔치도 할 생각이다. 헤어 디자이너·스타일리스트 후배들이 모여 숨을 돌릴 수 있는 공간으로도 확장하겠다고 했다. 계획을 더 캐묻자 그는 고개를 저었다. "말만 하는 건 싫다고 했지 않나. 곧 눈으로 보게 해주겠다."
●이상일은…
1956년 충남 당진 출생. 어릴 때부터 그림 잘 그리고 옷 잘 입는 소년이었다. 원래 꿈은 의상 디자이너. 1979년 '보그(Vogue)' 프랑스 판에 실린 헤어 디자이너 알렉산더 드 파리(Paris)의 작품 사진을 보고 인생의 행로를 바꿨다. 미용학원에 등록, 그해 CACF 미용대회에서 입상하고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세계미용대회에 진출했다. 1981년 프랑스 국립미용학교를 수료했고, 영국 런던에선 비달사순 아카데미를 수료했다. 1982년 서울 명동에 '헤어뉴스' 1호점을 차렸다. 현재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파크뷰 바이 헤어뉴스' 원장. 남다른 인테리어와 꽃장식이 있는 카페 '모우(MOU)'도 그가 운영한다.
고(故) 앙드레 김이 패션쇼마다 선보였던 귀 양 옆으로 땋아 틀어올린 머리모양은 이씨가 처음 연출했다. 무조건 화려한 헤어스타일보다는 고객 얼굴과 분위기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스타일을 추구한다. 그의 뒤를 잇는 후배를 여럿 길러내는 게 새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