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 사는 최영철(54) 시인은 중학생 때 큰 교통사고를 당했다. 세 번이나 수술을 해야 할 만큼 상처가 컸고, 어른들은 "어린애가 큰 수술을 받는다"고 걱정했다. 그런데 시인은 "수술대에 누워서도 내 몸보다는 나를 걱정하는 그분들이 걱정돼 혼났다"고 했다. 그는 시도 그런 마음으로 쓴다. 최 시인의 9번째 시집 '찔러본다'(문학과지성사)에는 세상사를 남의 자리에 서서 바라보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마음으로 쓴 시 72편이 실려 있다.
먼저 그는 아내의 자리에 서 본다. '참 염치없는 소망이지만/ 다음 생에 딱 한 번만이라도 그대 다시 만나/(…)/ 내가 그대의 아내였으면 합니다/(…)/ 그래서 그래서 지금의 그대처럼/ 사랑한다는 말도 한 번 못 듣고/ 고맙다는 말도 한번 못 듣고/ 아이 둘 온 기력을 뺏어 달아난/ 쭈글쭈글한 배를 안고/(…)/ 내가 그대의 쓰린 속 어루만지는/ 쑥국이었으면 합니다.'(수록시 '쑥국')
아내의 아내가 되어 보고 싶다는 고백은 "사랑한다"는 말의 최영철식 표현법이다. 그 고백은 이윽고 자신의 몸을 아내의 입에 들어갈 쑥국으로 만든다. 그의 역지사지 시학은 이처럼 입에 들어가는 먹을 것의 이미지로 표현되곤 한다. 배고픈 이의 허기를 달래주기 위해 고기가 되겠다는 돼지의 결심을 담은 시 '돼지 예수'는 역지사지가 남에게 내 살을 떼어주는 종교적 헌신의 경지와 다르지 않음을 보여준다. '저기 예수 간다/ 꽥꽥 단말마 비명으로/(…)/ 다 안다 다 안다 조금만 기다리라며/ 늙은 몸뚱이 마지막 바치러 간다/(…)'
세상이 경기장이라면 그 경기에 참가하는 생명들이 따라야 할 규칙이 있다. 최 시인은 그 규칙이 '역지사지'이기를 바란다. 그런데 그 규칙을 표현하는 방식이 전에 없이 발랄하고 경쾌하다. 수록시 '게임의 법칙'은 인간이 모기에게 살충제를 뿌리더라도 모기의 처지를 헤아려 미리 피할 수 있게 선전포고 정도는 해줘야 한다는 규칙을 제안해 웃음을 유발한다. 진지하고 무겁던 이전의 시들과 달라진 "최영철 시의 색다른 발랄성"(문학평론가 이숭원)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놈들 등살에 참다 참다 약국 가기 전/ 나는 잠시 후 대대적인 소탕작전이 있을 것이므로/ 죽든지 도망가든지 알아서들 하라고/ 이 방 저 방 장롱 냉장고 신발장 아래/ 엉금엉금 틈 많은 내 인정사정을 향해/ 몇 번이고 중얼중얼 외고 다녔다/(…)/ 그것이 공명정대한 게임의 법칙'(수록시 '게임의 법칙'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