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만에 새 앨범을 들고 귀환한 한국 헤비메탈 영웅들은 세속(世俗)에 초연했다. '크래쉬'의 세 남자 멤버는 "다른 욕심 부리면 음악을 할 수 없다. 돈, 결혼, 인기 같은 건 잊은 지 오래"라며 호방하게 웃었다. 안흥찬(38·보컬·베이스), 윤두병(36·기타), 정용욱(35·드럼) 세 멤버는 1990년대 중반 1·2집 '엔들리스 서플라이 오브 페인(Endless Supply Of Pain), '투 비 오어 낫 투비(To Be Or Not To Be)'로만 수십만장의 판매고를 올렸다.
"마침내 한국에 등장한 세계 수준의 헤비메탈 밴드"라며 록 팬들은 열광했다. 지난 3일 광화문 한 카페에서 만난 이들은 얼굴 곳곳에 세월의 흔적이 팬 '아저씨'가 돼가고 있었지만, 야박한 현실에 맞선 패기는 여전했다.
"음악을 하기 위해 돈이 필요한 거지 돈 때문에 음악을 하는 건 아니잖아요. 그래도 이렇게 20년 가까이 한 우물만 파는 게 쉽지는 않습니다. 후배들 보면 음악하려고 막노동, 식당 배달까지 안 하는 일이 없어요."(윤)
"록과 헤비메탈 마니아는 아직도 많아요. 대부분 외국 밴드에만 관심 갖는 게 섭섭하죠. 해외 아티스트 내한공연에는 객석이 터져나갈 듯한데 한국 밴드 공연장은 썰렁해요. 정작 외국 팬들이 우리를 더 알아준다는 느낌을 받기도 하죠."(안)
6번째인 새 음반 '더 파라곤 오브 애니멀즈(The Paragon of Animals)'는 정교한 연주력과 둔중한 힘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이들의 최고작이다. 매섭게 내달리기만 했던 초기작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적절한 완급 조절이 백미(白眉). 세계 헤비메탈의 거목 메탈리카(Metallica)와 슬레이어(Slayer)가 고루 연상된다. 끓어오르다 폭발하는 안흥찬의 보컬은 여전히 모골을 송연케 한다. 전성기에 탈퇴했다가 12년 만에 돌아온 윤두병의 기타는 스래시 메탈(thrash metal)의 정석에 충실하다. 3집 이후 전자음과 메탈을 접목해왔던 크래쉬 사운드에 다시 날이 선 느낌이다. 그는 "흥찬이형이 최신 스타일을 두루 섭렵하려 했다면 저는 정통 스타일을 지키려고 했다"며 "그러면서 음악적 대립이 생겨 밴드를 떠났었지만 이젠 서로 완전히 마음을 연 상태"라고 했다. 정용욱은 "인위적으로 소리를 가다듬지 않고 멤버들의 에너지를 고스란히 전달하는 데 주력했다"며 "원년 멤버가 다시 모이면서 초심을 찾을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세 사람은 90년대 초반 서울 남영동의 음악학원 겸 라이브클럽 '송설'에서 처음 만났다. 이들은 이곳에서 역설적으로 냉엄한 현실을 깨달았다. "주말에는 블랙신드롬, 백두산 같은 대선배들이 공연을 했어요. 무대에 비가 새고 쥐들이 돌아다녔죠. 그 선배들은 공연 후에도 라면을 끓여 먹고 가셨어요. 일찌감치 그런 모습을 봐서인지 허황된 꿈을 버렸던 것 같습니다."(윤)
서태지와 아이들 노래 '교실이데아'에 참여한 것은 크래쉬를 대중적으로 알리는 결정적 계기였다. "서태지씨측에서 제의가 왔었죠. 꽤 단단한 록음악이었기에 우리가 흔쾌히 응했고요. 이후로는 서태지씨와 연락한 적이 없어요. 적시(適時)에 서로의 장점을 한껏 이용한 뒤 관계를 정리한 셈이죠. '윈·윈(win·win)'이었던 셈입니다. 하하."(안)
세 사람은 "밴드를 결성하고 데뷔 앨범을 내놓기까지 3년이 걸렸는데 이번 음반을 발표하는 데는 7년이 걸렸다"며 "그만큼 지금 신인 같은 결의에 차 있는 상태"라고 했다. 이들의 가슴을 가장 벅차게 하는 건 해외진출. 이미 많은 팬들이 있는 일본을 비롯해 대만·홍콩·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 등을 도는 동아시아 투어가 예정돼 있다. 10대 걸그룹들의 귀여운 '아이돌 한류' 한쪽에서 30대 중후반 아저씨들의 육중한 '메탈 한류'가 첫발을 떼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