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은 5일 장·차관 워크숍에서 "우리가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뤘다고 자랑하지만 원천기술이 없고, 진정한 민주주의 사회도 아직 이루지 못해 일류국가라고 하기는 어렵다"며 "일류국가가 되려면 공정한 사회가 돼야 한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소득 격차나, 일자리 문제 등(으로 파생할 수 있는 사회적 갈등)을 극복하는 방법이 공정한 사회라고 생각한다"면서 "사회 지도자급 인사, 특히 기득권자들이 공정 사회의 기준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고 했다.

대한민국은 대통령의 장기 독재(獨裁)와 같은 권력구조의 탈선을 막을 수 있는 수준의 절차적 민주주의를 이뤄냈을 뿐 아직도 정치·경제·사회 각 분야에서 민주주의의 제도화가 이뤄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총리실에서 민간인 사찰 기구를 운영하고 국회가 국회 안에서조차 법치(法治)를 구현하지 못하고 사법부는 법관 개인의 이념적 색깔에 의해 판결이 달라지는 형편이다. 산업화도 미국 유럽과 같은 선진국들은 이미 기술특허에서 과학특허로 원천기술 개발의 중점을 옮기고 있는데 우리는 기술특허 부분에서조차 아직 선진국 수준에 뒤처지는 형편이다.

후진성의 유산(遺産)인 사회적 격차와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공정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이 대통령의 인식에는 공감한다. 그러나 대통령이 생각하는 공정한 사회의 개념이 정확히 무엇이며, 그것을 이룰 수단은 또 무엇인지가 명확히 보이지 않아 궁금하다. 법이 사회의 위·아래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적용되고 기회의 균등이 보장되는 사회, 즉 형식적 법치(法治) 사회가 공정한 사회일까. 아니면 정치·사회적으로 뒤처진 사람에게 정치적·사회적 이익이 더 배당되는 사회가 진정한 공정한 사회일까. 이 문제에 대한 정치철학적 판단이 우선 제시돼야 한다.

이것이 불분명하기 때문에 정치권과 재계에선 벌써 공정한 사회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정(司正)의 칼이 동원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그럴싸하게 퍼지고 있다. 이것도 공정한 사회를 달성하기 위한 도구의 하나이지만 그것은 정권이 쓸 수 있는 여러 정책 수단 중 하지하책(下之下策)에 지나지 않는다.

이 대통령은 공정한 사회를 내걸고 각종 대중영합적 정책을 동원했던 좌파 정권에 대한 국민의 반발을 발판으로 집권했다. 그렇다면 그 정권과는 다른, 보수 정권만이 이룰 수 있는 공정한 사회가 무엇이고 그것을 어떤 방법으로 달성할 것인지를 국민에게 확실히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10년 만에 등장한 보수 정권의 실책과 실상에 대해 이미 적잖이 실망하고 있는 국민이 다시 이 정권에 희망을 걸 수 있다.

좌파 정권은 공정한 사회를 이룬다며 나라와 국민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서울 사람과 지방 사람, 특정 대학을 나온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강북 사람과 강남 사람으로 갈라 놓았다. 보수 정권은 좌파 정권의 이런 방식과 확실하게 차별화한 청사진과 수단을 내놓아야 한다. 이런 점에서 대통령 참모들이 이날 대통령의 발언문에 좌파 정권들이 보수 세력을 공격하는 무기로 써왔던 '기득권자'라는 단어를 그대로 빌려온 것은 정치적 감각을 결여한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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