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총각 '국보(國寶)기사' 이창호(35)가 '주례 없는 결혼식'을 치르겠다고 선언했다. 가족, 친지 외의 외부 인사는 일절 초대되지 않는다. 신접살림은 최근 전세 계약한 일원동의 한 아파트에 차리고, 신혼 여행지는 제주도일본 두 곳 중 하나로 좁혀졌다. 결혼식을 70여일 앞두고 이창호 九단이 조선일보에 털어놓은 새로운 사실들이다.

이창호가 2년 남짓 교제해 오던 인터넷 바둑기자 출신 이도윤(24)씨와 함께 한국기원에 나타나 "오는 10월 28일을 결혼한다"고 밝힌 것이 지난 6월. 하지만 당시엔 예식 날짜를 제외한 모든 것이 미정인 상태였다. "바둑에 비유하자면 일단 저질러놓고 수습한다는 생각"이라던 이창호는 이제 실감이 나는듯 싱글벙글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국수(國手)의 결혼식에 가장 '충격적'인 결정은 역시 주례(主禮)가 없다는 점. "두 사람 모두 거창하고 형식적인 건 질색인 성격이거든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의견 일치를 봤어요." 피앙세 이도윤씨의 말이다. 주례에게 진행을 의존할 경우 신랑 신부 중심의 파티형식이 어렵다고 판단했다는 것.

지난 주 강원도 정선 하이원리조트에서 열린 제38기 명인전 행사 때 자리를 함께한 이창호와 이도윤씨. 10월 결혼을 앞둔 두 사람은“가족 중심으로 주례 없이 결혼식을 치르기로 했다”고 밝혔다.

철저하게 가족과 친척들만 초대된다. 주말 아닌 평일로 잡은 것, 청첩장을 200장 정도만 찍기로 한 것, 예식 장소를 끝까지 비밀에 부치기로 한 것도 모두 '간소화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다(예식 장소가 서울이란 사실만 공개했다). 약 2~3시간 동안 참석자들이 저녁식사를 함께하며 감회(感懷)와 덕담을 나누는 시간으로 꾸밀 예정. 요즘 가끔 소개되는 '하우스웨딩' 개념과 통하지만 요란한 이벤트도 생략하기로 했다.

"바둑계 어른들, 프로기사 동료들을 초청 못 해 죄송합니다. 하지만 일생에 한 번뿐인 결혼식을 경건하고 차분하게 보내고 싶어 내린 결정이란 걸 이해해 주실 줄 믿습니다(이창호)." 축의금도 절대 사절이다. 각종 매스컴들도 '바둑황제'의 혼례사진이 필요할 경우 현장 기획팀으로부터 얻어써야 할 판이다.

신혼살림 집이 양가 모두와 이웃이어서 둘 모두 만족스러운 표정. 현재 이창호는 강남구 일원동, 이도윤씨는 개포동에서 가족들과 살고 있다. '예비 고부(姑婦)' 두 사람이 함께 물색한 끝에 36평 아파트를 지난주 계약했다. "놀러 갈 때마다 어머니가 너무도 자상하게 챙겨주셔서 송구해 죽겠어요(이도윤씨)". 두 사람은 그 뒤에도 가구와 가전제품 구입을 위해 매일 함께 붙어다닌다.

대국과 신접살림 준비로 각자 바빠 데이트도 자주 못 하는 편. 며칠 전 도윤씨는 큰 맘 먹고 명인전 행사가 열린 강원도 정선을 찾아 먼저 가 있던 이 九단과 오붓한 시간을 가졌다. 식전 행사 때 사회자의 주문에 따라 이창호가 "도윤아, 따랑해"를 외쳤다는 얘기를 전해들은 이씨는 "원래는 그런 거 시킨다고 하는 분이 아니어서 굉장히 감동했다"고 했다.

아직 유일하게 '다음 수(手)'를 결정하지 못한 게 신혼 여행지다. 이 九단의 대국일정이 워낙 빡빡해 멀리 갈 형편은 못 된다. 예비 신부는 제주도, 신랑은 일본을 생각 중이다. 11월 초에 국제대회가 잡힐 가능성 때문에 상황을 보고 며칠 연기할 각오도 하고 있다.

요즘 이창호가 대국 때면 향나무로 만든 지압기(指壓器)를 주물럭거리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띈다. 프로기사들이 마음을 다스릴 때 쓰는 필수용품인데, '예비 장모'가 지방에 들렀다가 사윗감 주려고 사온 귀한 물건이다. 그 정성에 대한 보답인지 요즘 이창호의 기보가 더욱 안정감이 넘친다고 바둑계에선 평한다.

'천재 소년'을 지나 '노총각'에 편입된 5~6년 전부터 이창호의 결혼은 바둑계 최대 관심사 중 하나였다. 결혼식 초읽기 돌입 후 특유의 형세 판단과 끝내기 솜씨로 마무리 수순(手順)을 밟아가는 이창호가 '새신랑'으로 승격(?)할 날도 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