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연승! 서울 신암중 하키부가 달성한 기록이다. 신암은 13일 열린 제39회 소년체전 준결승에서 김해서중을 4대0으로 눌러 국내 스포츠에서 드문 '역사'를 만들었다. 상승(常勝) 신암은 14일 아산중을 상대로 46연승에 도전한다.

"일단 3골 넣고 시작한다"

"작년엔 아슬아슬한 승부가 꽤 있었어요. 올해는 상대와의 전력 차이가 6:4나 7:3 정도는 되는 것 같네요. 당분간은 연승 기록이…." 배흥순(46) 감독의 말처럼 올해 신암중의 전력은 압도적이다.

신암중은 소년체전 3경기에서 13골을 넣었고 단 2점만 허용했다. 전반전에만 보통 3골 차 리드를 잡는다. 오른쪽 미드필더 정다운(15)은 "계속 이기니까 자신감이 많이 붙었고, 선수들끼리 손발도 더 잘 맞는다"고 했다.

‘절대강자’로 군림하는 신암중 하키부의 연승행진은 언제까지 이어질까. 배흥순 감독과 선수들은“경기를 하면 할수록‘우리는 지지 않는다’는 자신감이 더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2학년 김호민(14)은 "대회 때만 되면 다른 학교 애들이 '또 우승하겠네!'라며 부러워한다. 우리가 세니 상대가 싸우기도 전에 긴장을 하는 것 같다"고 했다. 하키 관계자들은 "고교생들과 맞붙어도 대등할 것 같다"고 말하고 있다.

조성준 전 남자 국가대표팀 감독은 "중학교 팀은 선수들이 어려 경기력에 기복이 심할 수밖에 없는데 신암중은 공수에서 완벽한 조직력을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독보적인 경기력은 새로운 고민거리를 낳았다.

장영서 코치는 "실력 차이가 커서 다른 팀들이 연습경기를 꺼린다. 7월 중고연맹회장기를 앞두고는 연습경기 딱 1번 하고 대회에 나갔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신암중은 자체 청백전을 하는 것으로 실전 감각을 익히고 있다.

두꺼운 선수층이 연승 비결

전국 남중 하키팀은 16개로, 대개 출전선수(11명)를 채우는 정도지만 신암중은 20명이나 된다. 두꺼운 선수층이 바로 연승 행진의 비결이다.

배 감독은 "초등학교에서 좋은 선수를 발굴하려고 발품 판 결실을 보고 있다"고 했다.

신암중이 처음부터 강팀은 아니었다. 1983년 하키부가 창단됐지만 작년 초까지 우승 경험이 없었다. 신암중이 강팀으로 변모한 데엔 강선희 교장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 3년 만에 선수 수를 3배로 불린 배 감독의 공이 컸다.

배 감독은 2007년 처음 팀을 맡은 때를 떠올리며 "암담했다"고 말했다. "선수가 7명뿐이었어요. 경기에 나갈 머릿수도 못 채우는데 무슨 훈련이 되고, 성적이 나오겠어요."

팀을 재건하기 위해서는 선수 보충이 시급했다.

배 감독은 수업이 없는 시간이면 어김없이 주변 초등학교를 돌아다니면서 하키 꿈나무를 찾았다. 하키가 어떤 운동인지를 초등학생들에게 설명하기 위해 하키 경기 장면이 담긴 동영상 CD를 늘 가지고 다녔다.

그는 "점심때나 방과 후에 운동장이나 교무실을 얼쩡거리니까 외판원 취급도 많이 당했다"고 했다. 체격이 크고 달리기가 빠른 아이들이 모이는 초등학교 육상대회는 월척을 낚는 배 감독의 '어장(漁場)'이었다.

그는 쓸 만한 재목(材木)이 눈에 들어오면 절대 놓치지 않았다. 이 대회 7골을 넣은 미드필더 심재원(15)도 배 감독의 끈질긴 노력이 맺은 결실이다. "재원이도 그렇고 부모님도 처음엔 축구를 하려고 했었죠. '얘는 반드시 국가대표 된다'고 설득해 하키 스틱을 잡게 만들었죠."

"열악한 하키 저변 안타까워"

인천체고-경희대를 졸업한 배 감독은 원래 아이스하키 선수였다. 대학 졸업 후 경희초·중 아이스하키팀을 지도하던 배 감독은 1992년 송곡여중 교사로 발령나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하키 명문인 송곡여고 재단이 여중 하키팀을 만들었고, 배 감독이 팀을 맡게 된 것이다. 그때부터 초등학교를 훑으면서 하키 유망주들을 선발하는 것이 배 감독 '제1의 임무'가 됐다.

그는 "세계 올스타팀에도 뽑힌 박미현을 비롯해 여자 국가대표팀의 절반 정도는 내가 발굴해낸 선수"라고 했다. 한국은 FIH(국제하키연맹) 세계랭킹 남자 5위, 여자 11위에 올라 있는 하키 강국이다.

그러나 국내 초등학교엔 하키팀이 없고 실업팀이 남녀 합쳐 9개일 정도로 저변이 약하다. 배 감독은 "하키가 뭔지도 모르던 아이들이 1~2년만 지나면 그 매력에 푹 빠진다. 그러나 아이들이 성인이 돼 진로를 걱정해야 할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